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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걸음 뒤에 따라오는 온기

함께 바라봐주는 시선이 만들어준 작은 안심

by 자모카봉봉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부터 학교는 혼자 잘 왔다 갔다 했다. 혼자 등교하는 일에는 별 어려움이 없는 아이였다.

하지만 학원은 달랐다. 학원까지 가려면 반드시 찻길을 하나 건너야 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신호등 앞에서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어른들의 빠른 발걸음에 휩쓸려 조급하게 건너려 하지는 않을지 걱정됐고, 신호를 지키지 않는 오토바이나 전동 킥보드가 순식간에 튀어나오는 장면도 자꾸 떠올랐다.

게다가 둘째는 어려서부터 내가 너무 조심시키며 키워서인지, 차 소리만 나도 긴장하고 오토바이 소리만 들려도 깜짝 놀라 옆으로 피하느라 바쁜 아이였다. 그런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혼자 보내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늘 내가 데려다줬다. 비 오는 날이면 우산을 맞춰 들고, 바람이 부는 날이면 둘째의 목도리를 고쳐 매주며 함께 걸었다. 하지만 일을 다시 시작하고 나서는 그마저도 쉽지 않은 날이 늘어갔다. 출근 시간이 겹치는 날이면 생활의 리듬이 뒤엉켰고, 시간이 조금만 어긋나도 마음속의 부담이 하루 종일 가시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고민이 반복될 때마다 마음 한쪽이 살짝 접히는 느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떠올랐다. “첫째에게 부탁해볼까?”

그 순간 마음속이 스르륵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내가 할 일을 넘긴다는 미안함과 혹시나 위험에 처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래도 결국 부탁하기로 했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 중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첫째는 기쁜 얼굴로 대답했다. “응, 내가 데려다줄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작지만 단단한 자신감이 담긴 목소리였다.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이 놓이는 동시에, 아이가 이렇게 빨리 자라는 모습에 뭉클해졌다.


그날부터 두 아이는 나란히 걷는 짧은 길 위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둘째는 누나 손을 잡고 걷는 걸 좋아했고, 신호등 앞에서는 누나의 표정을 살피며 맞춰 서 있었다. 첫째는 동생을 챙기는 자신이 더 단단해 보이는지 걸음걸이가 조금씩 달라졌다. 어깨가 펴지고, 신호가 바뀌면 동생의 손을 살짝 더 꽉 잡아주는 모습이 화면 너머로도 선명하게 보였다.


가끔은 동네 지인분들이 메시지를 보내주시기도 했다. “두 아이 같이 걷는 모습이 너무 귀엽더라.” “누나가 너무 듬직하던데요? 기특해요.” “둘이 깔깔대면서 걸어가던데요.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하던지요.”

어떤 날은 비 오는 날 우산을 같이 쓰고 건너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주시기도 했다. 큰 우산 한쪽이 둘째 키에 맞춰 조금 내려가 있고, 첫째는 그만큼 어깨를 기울여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문장이 온몸으로 실감났다.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동네가 필요하다.”


생각해보면, 내가 혼자 용기를 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늘 ‘혹시나…’라는 걱정이 먼저였고, 일을 다시 시작하면서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는 건 아닌가 하는 미안함도 있었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이 아이들을 지켜보고, 응원해주고, 작은 칭찬이라도 건네주는 그 분위기가 나를 안심시켰다. 아이들이 걷는 그 길에는 나 혼자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많은 손길이 함께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첫째가 동생을 데려다주며 시작된 이 작은 역할은 단순한 ‘임무’가 아니었다. 누군가를 챙기고 함께 걷는 마음이 아이 안에서 천천히 자라고 있었다. 둘째는 누나의 손을 잡는 법을 배우며 세상을 더 안전하게 느끼기 시작했고, 첫째는 책임감이라는 감정을 몸으로 익혀갔다.

내가 아이에게 넘긴 일은 미안함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자라나는 두 아이의 모습과 동네의 따뜻한 손길이 나를 더 큰 믿음으로 이끌었다.


아이들이 서로를 챙기며 걸어가는 그 길 위에서, 나 역시 두려움을 조금씩 내려놓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엄마인 나도 조용히 성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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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작은멈춤>

1. 주변에서 아이를 따뜻하게 지켜봐 준 사람이 있나요?

2. 누군가의 작은 칭찬이나 눈길이 내 아이에게 힘이 되어준 순간은 언제였나요?

3. 혼자 키우지 않아도 괜찮다고 느꼈던 '작은 안심'의 순간이 있나요?



“동네가 함께 만들어준 안전함 속에서 두 아이는 조금씩 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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