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하루가 넓어질수록, 나에게도 생긴 여유
아이들이 어릴 때, 나는 놀이터의 필수 장비 같은 사람이었다. 미끄럼틀 아래에서 받아주고, 그네를 밀어주고, 한 번 넘어지기라도 하면 금세 달려가 안아주던 시절이었다. 아이들은 하루에도 열 번씩 나를 불렀고, 나는 하루에도 열 번씩 몸을 일으켰다. 잠깐 벤치에 앉아 있어도 한쪽 귀는 늘 아이들의 목소리를 향해 열려 있었다. 놀이터는 아이들의 공간이었지만, 내 시간도 그곳에 묶여 있는 느낌이었다. 내가 그 자리를 비우는 순간 무언가 큰 사고라도 날 것 같은 불안이 늘 나를 따라다녔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장면이 조금씩 달라졌다. "엄마, 그냥 벤치에 앉아 있어!" 아이들은 친구들을 만나면 나보다 친구들이 더 중요한 얼굴로 뛰어갔다. 나는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다. 처음엔 그 조용함이 어색했다. 내가 할 일이 사라진 것 같아 손이 허전했고, 벤치에 편안히 앉아 있는 내가 낯설기도 했다. 아이가 넘어지면 바로 달려가던 습관이 몸에 남아 있어서, 가만히 있는 게 오히려 더 긴장되는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나를 찾지 않는 그 시간은 생각보다 평화롭고 생각보다 안전했다. 내가 나서지 않아도 아이들은 스스로 일어나고, 스스로 친구와 조율하며 놀았다. 나는 멀리서 그 장면을 보며 깨달았다. 아이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의 개입이 없어도 괜찮은 순간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이 변화는 놀이터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키즈카페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있었다. 아주 어렸을 때는 키즈카페에 갈 때마다 나와 남편이 함께 들어갔다. 아이 하나 데리고 가는데 어른 둘의 비용까지 지불해야 했지만, 앉아서 쉴 시간조차 없었기에 그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안에 들어가면 나는 아이 뒤를 따라다니느라 바빴다. 방방이에서 뛰고, 새로운 장난감을 찾아 쥐여주고, 소꿉놀이 테이블에 앉아 손님 역할을 해주고, 중간중간 "엄마 이거 같이 해줘!", "이거 안 빠져!", "화장실!"이라는 호출에 뛰어가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이가 그곳에서도 친구를 사귀기 시작했다. 조심스레 다가가 “같이 놀래?”라고 묻던 아이가 시간이 지나자 어느새 친구 무리에 섞여 자연스럽게 뛰어다녔다.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는 아예 유치원 친구들과 약속해 키즈카페에 갔다. 그때부터 나는 아이 곁에서 놀아주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엄마들과 커피를 마시며 잠깐 숨을 돌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흐르자 아이들은 아예 “엄마는 안 와도 돼!”라고 말하며 키즈카페로 향했다. 어느새 내가 없어도 되는 시기가 온 것이다. 얼마 전에는 가족여행을 가서 리조트 내 키즈카페에 아이들을 보내놓고 남편과 둘만의 산책을 다녀오기도 했다. 2시간 동안 주변을 천천히 걷고, 오랜만에 아이 이야기가 아닌 우리 이야기를 나누었다.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말했다. “이런 날도 오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정말, 이런 날이 오긴 오는구나.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많이 컸구나.
집 앞 놀이터에서도, 키즈카페에서도, 학교에서도 아이들은 혼자 혹은 친구들과 점점 더 넓은 공간으로 나아가며 자연스럽게 엄마의 빈자리를 만들어주었다. 처음엔 그 빈자리가 불안했고 허전했지만, 시간이 흐르자 그 공간이 나를 안심시키기 시작했다. 아이가 성장해서 생긴 시간이지, 엄마가 덜 필요해져서 생긴 시간이 아니라는 걸 조금씩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이가 혼자 노는 시간이 늘고, 밖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학원에서 배우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나에게도 조용한 틈이 생겨났다.
나는 그 틈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했고 무엇을 미뤄두고 있었는지 하나씩 떠올릴 수 있었다. 그 틈은 처음엔 작고 불확실했지만, 어느새 나의 하루를 다시 들여다볼 여유이자 나를 다시 채워 넣을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아이의 빈자리는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나를 다시 채워 넣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 조용한 틈에서 나는 다시 나에게 돌아가는 길을 천천히 찾고 있었다.
<잠시, 작은멈춤>
1. 아이가 스스로 보내는 시간 속에서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나요?
2. 아이가 자립하면서 생긴 나만의 시간은 언제였나요?
3. 오늘 하루, 나만의 시간은 어떻게 쓰고 싶나요?
“아이의 세계가 넓어질수록, 나에게도 작은 시간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