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걸 내 손으로 해야 한다고 믿던 나에게 찾아온 변화
아이들이 어릴 때, 나는 ‘엄마는 항상 곁에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누가 잠깐 봐준다고 해도 마음이 불편했고, 남편이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는 모습조차 어쩐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남편이 서툴러서가 아니라, 내가 그 자리에 없다는 사실 자체가 불안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잠깐 바람 쐬고 와,” “내가 애들 잠깐 봐줄게”라고 말했지만, 나는 한 번도 편하게 나온 적이 없었다. 아이들이 울면 그 울음이, 아이들이 불안해하면 그 불안이 모두 나의 책임처럼 느껴졌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이들이 분리불안을 크게 겪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아이들과의 분리불안에 가까웠던 것 같다.
실제로도 아이들의 분리불안보다 엄마들의 분리불안이 더 크고 오래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이보다 엄마가 더 힘들어하고, 아이보다 엄마가 더 오래 불안해하는 것. 그 말이 나에게는 참 익숙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처음 갔을 때도 그랬다. 낯선 공간에 남겨지는 아이가 울면 당연히 마음이 아팠지만, 사실은 아이가 울기 훨씬 전부터 내가 먼저 불안해하고 있었다.
첫 등원 날, 아이가 선생님 품에 안겨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돌아서는데, 아이보다 내가 더 많이 울었다. 아이가 나 없이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되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유난히 무거웠다. 아이는 예상보다 빨리 적응했다. 일주일쯤 지나자 등원길에 웃기도 하고 친구들과 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렇지 못했다. 아이는 괜찮아 보이는데도 마음이 계속 흔들렸다. 혹시 싫은 티를 참는 건 아닐까, 혹시 내가 없어서 불편한 건 아닐까, 별일 없다고 말하는 선생님의 말이 진짜일까. 끝없이 의심하고 걱정했다.
그래서 한동안은 어린이집 주변을 서성였다. 수업이 한창일 시간에 괜히 건물 근처를 돌기도 하고, 필요하지 않은 크고 작은 상황을 떠올리며 전화를 망설이기도 했다. 아이는 일주일 만에 적응했는데, 엄마인 나는 한 달 동안이나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시기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아이가 독립하는 시간을 받아들이는 건 아이보다 엄마에게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결혼 전의 나는 멋진 워킹맘을 꿈꿨다. 커리어도 놓치지 않고 육아도 유연하게 해내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아이가 태어나고 보니 나는 생각보다 아이 옆을 떠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누군가에게 맡긴다고 해서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아니었고, 일을 하러 나가도 마음 한구석이 항상 아이에게 묶여 있었다. 그래서 한동안 일을 쉬며 아이 곁을 지킨 시간도 어쩌면 선택이 아니라, 그 순간의 나에게 가능한 유일한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내가, 어느 순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주 사소한 변화였지만, 나에게는 큰 전환이었다. 남편에게 “오늘은 당신이 좀 챙겨줘”라고 자연스럽게 말하게 된 나. 예전의 나는 이 한마디를 하기까지 수십 번의 고민과 미안함을 지나야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 문장이 망설임 없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이들이 친구 엄마로부터 “제가 애들 좀 볼게요”라는 말을 들으면 예전처럼 부담부터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고맙다’는 마음이 먼저 떠올랐다. 시부모님께 부탁드리는 것도 더 이상 죄책감과 부담만 남는 일이 아니었다. 함께 나눌 수 있어 다행이라는 마음, 아이가 더 넓은 사랑을 경험할 수 있다는 안도감도 함께 느껴졌다.
출장 때문에 외박을 해야 하는 날도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마음이 무너져 내릴 만큼 불안했을 텐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마음이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아이들이 잘 해낼 거라는 믿음이 나를 조금씩 편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해야만 한다’는 부담이 ‘함께 해도 괜찮다’는 여유로 바뀌고 있는 걸 느꼈다. 이 작은 변화들이 마음의 무게를 서서히 덜어주었다.
육아가 갑자기 쉬워진 건 아니다.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많았고, 하루는 여전히 분주했다. 아이들의 감정 변화는 예측하기 어려웠고, 나는 여전히 수십 가지 역할을 동시에 해내야 했다. 그런데도 마음이 예전과는 다르게 가벼워졌다. 누군가에게 맡긴다고 해서 내가 부족한 엄마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몸으로 이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 손을 잠시 떼어도 괜찮다는 감각, 다른 손길과 함께 키워도 아이는 충분히 잘 자란다는 감각이 내 삶에 조금씩 스며들었다.
돌이켜보면, 달라진 건 육아가 아니라 그 육아를 대하는 내 마음이었다. 예전의 나는 ‘엄마니까 내가 꼭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하루를 채웠다면, 지금의 나는 ‘엄마지만 나도 숨 쉴 공간이 필요하다’는 마음으로 하루를 바라본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여전히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이지만, 그 자리가 내 모든 영역을 다 차지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여유는 아이가 자랄수록 더 자연스럽게, 더 넉넉하게 나에게 찾아왔다.
이 모든 변화는 아이의 성장만큼이나 엄마인 내가 성장한 흔적이었다. 아이들만 자란 것이 아니라, 나 역시 조용히, 단단하게 내 마음을 다시 세우고 있었다.
<잠시, 작은멈춤>
1. '내가 해야만 한다'고 느꼈던 일들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2. 지금은 누군가에게 기꺼이 맡길 수 있게 된 일이 있나요?
3. 오늘 하루, 부담 대신 '여유'로 바라볼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