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어 사람이야? 한글 사람이야?

by 강점코치 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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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물었다. 우리 딸은 이 세상에 오직 두 인종만 있는 줄 안다. 호주 사람인 아빠처럼 영어를 쓰는 서양인들과 한국 사람인 엄마처럼 한국어를 쓰는 동양인들. 그래서 딸은 러시아 사람들도 서양인 외모를 갖고 있으니 영어를 쓸 것이라고 생각하고, 중국인들이나 일본인들은 동양인 모습을 하고 있으니 한국어를 쓸 것이라고 생각한다.


"엄마, 나는 영어 사람이야? 한글 사람이야?"


나는 잠시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주춤했다. 딸이 듣고 싶어 하는 대답은 뭘까 생각해봤는데 딸은 아마 한국 사람(한글 사람)이라는 대답을 듣기를 원할 것 같았다. 대부분 자기가 속한 사회의 주류가 되고 싶어 하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아이가 모든 걸 이해하기는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혹은 이 순간에 일단 딸을 안심시키려고 아이가 듣고 싶어 하는 답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오히려 다문화 가정 자녀인 아이가 정체성의 혼란을 갖기 시작한 아주 초기부터 자기 자신과 가족에 대해 명확하게 인지할 필요가 있고, 그 작은 머리로 '과연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에 대해 나름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아이가 혼란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야 자신만의 특이한 개인사나 가족사에 대해 보다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근간을 만들 수 있고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단단한 아이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몇 초 간, 이 수많은 생각을 한 뒤에 대답했다.


"너는 한글 사람도 되고 영어 사람도 되지. 너는 영어랑 한글을 둘 다 할 수 있잖아."


그랬더니 아이가 또 묻는다.


"그럼 엄마도 한글 사람이랑 영어 사람 둘 다 되는 거야? 엄마도 한글, 영어 둘 다 할 수 있잖아."


"음... 아니 엄마는 한글 사람만 돼. 왜냐면 엄마는 부모님이 두 분 다 한글 사람이잖아. 그런데 너는 한글 엄마 1명, 영어 아빠 1명이니까 영어 사람도 되고 한글 사람도 되는 거야."


딸은 여전히 혼란스러워 보인다. 언어만으로 설득하는 것은 실패다. 좋은 생각이 났다. 딸에게 묻는다.


"아! 너 여권이 몇 개야?"


"2개. 초록색 1개 있고 남색 1개 있어."


"그지? 초록색은 한글 사람만 받을 수 있고 남색은 영어 사람만 받을 수 있어. 엄마는 무슨 색을 갖고 있지?"


"엄마는 초록색만 가지고 있지."


"그렇지? 아빠는?"


"아빠는 남색만 있지."


"그것 봐! 엄마는 한국사람만 되고 아빠는 영어 사람만 되는 거야. 그런데 너는 한글 사람, 영어 사람 둘 다 되니까 다 갖고 있는 거야! 한글 사람도 되고 영어사람도 되는 건 정말 좋은거지. 우리 딸 완전 럭키네! 우리 딸은 다 가질 수 있네!"


"우와! 나는 다 가질 수 있네! 나는 한국사람도 되고 영어 사람도 되니까 너무 좋아!"


동생이 태어나서 동생도 초록색 여권과 남색 여권까지 2개가 있는 것을 보니 딸은 자신이 속한 특이한 영역에 동지가 생긴 것에 아주 든든해했다. 딸은 6세가 되어 처음 겪은 정체성 혼란 이슈를 잘 넘겼다.


그러나 종종 위기는 찾아온다. 온 가족이 놀이터에 나와 놀던 날, 우리 아이를 처음 보는 초등학생 남자아이가 짓궂게 장난을 걸었다.


"야! 너 머리가 왜 이래? 머리카락이 왜 노란색이야? 어? 너 미국 사람이야? 야, 영어 해봐. 헬로, 헬로!"


평소에 낯가림이 심한 우리 딸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고, 이를 본 아이 아빠가 딸에게 다가가자 그 남자아이가 자신의 무리 친구들에게 달려가며 크게 소리쳤다.


"야! 얘 아빠 미국 사람인가 봐. 헬로, 헬로. 저기 미국 아빠 좀 봐! 대박 뚱뚱해. 배불뚝이야. 하하하."


아이는 곧 울 것 같은 얼굴로 나에게 다가와서 오빠들이 우리 아빠가 뚱뚱한 미국 사람이라고 놀리기 때문에 앞으로는 놀이터에 엄마랑만 같이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속상해하는 딸을 달래주었지만 동시에 단호하고 건조하게 말했다.


"아빠는 미국 사람이 아니라 호주 사람이야. 미국은 네가 제일 좋아하는 유튜브 '라이언 토이 리뷰'에 나오는 라이언이 사는 나라이고, 호주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는 나라야. 우리 아빠처럼 호주 사람이 아빠일 수도 있고 한글 사람이 아빠일 수도 있는 건데 그게 잘못되거나 이상한 일은 아니야. 옆 아파트에 사는 줄리 알지? 줄리도 아빠가 영어 사람이잖아. 영어 사람이 아빠일 수도 있어. 원래 그럴 수 있는 거야.


그리고 우리 아빠가 뚱뚱하지만 그건 부끄러울 일이 아니야. 사람은 뚱뚱할 수도 있고 날씬할 수도 있는데 뚱뚱한 게 잘못은 아니야. 저기 지나가는 저 아저씨 좀 봐. 저 아저씨도 엄청 뚱뚱하시지? 세상에는 우리 아빠처럼 뚱뚱한 사람도 많아. 뚱뚱한 게 잘못이 아니라 뚱뚱하다고 다른 사람을 놀리는 아까 그 오빠들이 잘못인 거야."


딸에게 '다름'에 대해 어떻게 인지시키고 앞으로도 종종 겪을 이 날과 비슷한 상황에서 부모로서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에 대해 늘 고민해왔다. 남들의 시선이 불편해서 나의 '다름'을 감추는 것으로 그 불편한 상황을 피하게만 해서는 안된다.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아 아빠의 존재가 부끄럽게 느껴지고 혼란스러운 아이에게 아빠의 존재를 숨기는 것으로 그 상황을 모면하게 되면, 엄마로서 아빠는 부끄러우니까 숨겨야 되는 존재라고 아이 앞에서 인정해버리는 꼴이 된다. 불편했을 아이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이럴수록 아이에게 잘 설명해주어 아이의 혼란을 정리해주어야 한다.


우리 동네 아이들도 우리 딸이 아빠와 함께 있는 모습에 꾸준히 보게 된다면 '저 친구 집 처럼 외국인 아빠나 외국인 엄마를 가진 가정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 저 친구 가족이 '특이' 또는 '특별'하지만 그냥 원래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사고에 침습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우리 딸이 이 동네에서 사는 것이 더 편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덧붙여 딸에게 말해주었다.


"엄마는 날씬한 한글 아빠가 온다 해도 아빠랑 바꿀 생각이 없어. 엄마는 뚱뚱한 영어 사람인 아빠가 제일 좋아. 그래서 엄마는 아빠랑 결혼한 거야."


"나도 우리 아빠가 제일 좋아! 아무랑도 안 바꿔!"


우리 딸이 자신이 속해있는 사회의 주류 혹은 다수와 내가 다르다고 해서 의기소침해지거나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의 '다름'을 누군가가 콕 찍어 지적해도 주눅 들지 않고 '다름'은 잘못이 아니며 놀림거리가 아니라고 당당하게 대응할 수 있는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아이에게 무어라 대답해 주어야 할지 몰라 말문이 턱턱 막힐 순간이 또 올 것이고, 더 자주 올 것 이란 것도 안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아이와 함께 성장할 준비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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