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점코치 모니카 Oct 09. 2021

엄마에게 집을 사주었다.

新소녀가장 1

엄마가 식당에서 일하시다가 쓰러졌다고 했다. 복통이 너무 심해 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를 정도가 되어 식당 문을 닫고 병원에 갔다고 했다. 긴급수술이 결정되었고 엄마는 담낭 전체와 주변 장기 세 곳에 퍼진 염증을 제거하기 위해 복강경 수술을 받았다. 


엄마 말로는 배를 네 군데나 째고 쓸개 없는 여자가 되었다고 했다.


평소에 자주 통화를 하는 모녀 사이가 아닌데도 엄마가 오랫동안 배가 아프다 말다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한 번은 음식이 잘 넘어가지 않아서 후루룩 넘길 수 있는 국수와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다고도 했었다. 그럴 때마다 제발 병원에 가서 제대로 검사를 받아보라는 자식들의 설득이 있었지만 엄마는 듣지 않았다. 병원에 가면 큰 일이라도 나는 사람처럼 고집스럽게 병원을 거부하더니, 정말로 병원에서 큰 일을 겪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학교에도 못 가고 노동에 노동을 이어온 엄마의 몸은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최화정보다 겨우 한 살이 많은, 아직 한창나이인데도 우리 엄마는 지금 당장 노동을 멈추지 않으면 곧 죽을 것처럼 보였다. 


엄마의 입원기간 3주 동안 나는 마음이 분주했다. 드디어 닥칠 일이 닥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엄마가 식당 문을 닫는 순간 노후파산 고속도로를 타게 되는 부모님인데, 지금 고속도로 톨게이트에 진입하는 느낌이었다. 

대비가 필요했다.


엄마 몸이 더 이상의 노동을 버텨내기 힘들 것이란 생각은 진즉에 하고 있었기에 2018년부터 부모님의 노후준비 대책을 세우고 있었다. 부동산 투자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월소득을 늘릴 방법을 궁리했다. 


이번에 엄마가 퇴원하면 다시 식당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식당을 하지 않는데 굳이 시내에 위치한 식당 주변에 살 이유는 없었으므로 우리 고향인 읍면지역에 작은 아파트를 사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은퇴하면 어디서 살고 싶으시냐고 미리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고 부모님은 은퇴를 한다면 내가 12년 동안 초. 중. 고를 나온 읍면지역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다고 하셨다. 부모님이 현재 살고 계신 월세집 보증금 2500만 원에 대출을 조금 얹으면 연식이 20년 넘긴 했지만 멀끔한 25평 아파트를 고향에 마련할 수 있었다. 


공시 가격 1억 이하 투자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 내 고향 촌구석에도 투자자가 들어와 아파트 가격이 찔끔찔끔 오르는 것이 보였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언니와 상의해서 우리 고향에 매매가 8천만 원의 25평 아파트를 7천만 원 전세를 안고 갭 1천만 원으로 샀다. 


부모님과 상의를 하면 분명히 하지 말라고 말씀하실 것이 뻔하기 때문에 미리 상의하지는 않았다. 20년이 넘은 복도식 25평 아파트이긴 하지만 그 아파트 등기필증을 손에 들고 보니 약간 한풀이를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학창 시절 내내 그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을 부러워했었던 기억 때문이다. 


현 세입자의 전세기간이 만료되는 내년 초에 전세자금 퇴거 대출을 받아 세입자를 내보내고 부모님을 입주시킬 생각이었다. 대출금 5천5백만 원에 대한 원리금 상환액은 큰 부담이 없었고 수리가 싹 되어있는 집이라 리모델링 비용으로 따로 추가 현금이 들어갈 일이 없는 집이었다. 


입주 전까지 남은 기간 동안 엄마도 식당과 기존 집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시면 딱이라고 생각했다. 혹시 엄마가 식당을 더 하시겠다고 하면 2년이나 4년 더 전세를 돌릴 계획이었다. 어차피 사야 할 집이라면 집값이 더 오르기 전에 미리 사두고 싶었고 아니나 다를까 추석 이후 해당 아파트는 16년 전고점이던 1억 초반 가격에 가까워졌다. 


부모님 집을 사고 나니 이제 시작이라는 실감이 확 났다. 노후 파산이라는 짐이 마흔이 안된 내 어깨에 들려 메졌다. 집은 해결했는데 월 생활비는 어떡하나. 월 2백만 원은 드려야 될 텐데. 무엇을 해서 월 소득 이백을 더 늘려야 되나. 이즈음부터 새벽 3시 정도만 되면 눈이 떠지기 시작했다.   


돈을 벌려고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 되는 고통을 알기에 기왕이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소득도 더 늘리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고 돈도 되는 일'을 못 찾는다면 어쩔 수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돈이 되는 일'로 월소득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 뚜렷한 대책을 찾기 전에 엄마가 식당 문을 닫는 상황이 온다면 꾸역꾸역 중. 고등학생 영어 과외를 해야 된다. 


추석에 직접 뵙고 부모님께 집을 샀다는 이야기를 드리기로 했다. 엄마, 아빠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언니와 남동생 우리 삼 남매는 행복한 상상을 했다. 


그런데 엄마가 싫다고 했다. 25평은 좁고 복도식 아파트인 것도 싫다고 했다. 물론 '싫다.'라는 직접적인 표현을 쓰지는 않으셨고 '고맙다. 잘했다.'라는 말씀도 하셨지만 일단 전세를 더 돌리라고 하셨다. 돈을 떠나서 당신은 아직 너무 젊은데 일을 놓고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을 수는 없기에 식당을 더 할 거라고 하셨다. 


우리 집은 몇 평인지, 언니네 집은 몇 평인지, 어느 지인 집은 몇 평인지 물으셨고 대다수가 34평에 살고 있다는 사실도 재차 확인하셨다. 대화 중에 고향 동네에 내가 매수한 아파트 정도는 엄마 혼자서도 큰 도움 없이 살 수 있을 정도의 약간의 예금을 엄마가 갖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엄마의 무미건조한 반응이 적잖이 당황스러웠지만, 애초에 달라고 한 적도 없는 호의를 베풀어놓고 감사와 환호의 반응을 기대했던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엄마에게 34평 계단식 아파트를 다시 사드렸다. 졸지에 한 달 동안 아파트 2채를 매수한 적폐가 되었다. 


추석에 엄마의 월세집에 머무르고 있는데 갑자기 천장에서 물이 줄줄 샜다. 은퇴 전까지 일단 이 월세집에 살면서 천천히 다시 생각하자고 했던 우리 대화의 마무리를 비웃든 엄마는 당장 이사를 나가야 할 처지에 놓였다. 


주변에 다른 셋방을 얻어 나가기엔 갑자기 마땅한 집도 없을뿐더러, 어차피 부모님께 집을 해드리기로 마음먹었던 터였더라 엄마께 이 동네에서 유일한 아파트 단지인 S 아파트를 매수하자고 했다. 우리 엄마가 올해 드림하우스를 겟할 운명이었나 보다. 


시내이긴 해도 재개발이 시급한 낙후지역이라 20년 넘은 아파트 가격이 1억-1억 5천만 원 정도로 매매가 형성되어 있었다. 나와있는 매물들의 평형은 30평, 31평, 34평 대로 다양했고 방향 역시 동향, 남향, 남서향, 남동향으로 다양했다. 엄마는 마침 공실인 남향 34평 매물을 원했고 아파트 준공 이후 단 한 번도 수리를 하지 않은 기본 집이었기에 1억 1천만 원으로 가격협상을 했다.


대출금이 늘었고 34평 올수리 비용으로 현금 4천을 더 밀어 넣어야 되는 상황이 왔지만 너무 좋아서 밤에 잠이 안 온다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니 이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몇 년 후 은퇴해서 내가 사놓은 25평 아파트에서 산다고 하더라도 사는 내내 '집이 좁아서~ 집이 좁아서~.' 푸념하며 사실 수도 있고 그걸 눈치챈다면 나 역시 해주고도 욕먹는 것 같은 느낌에 유쾌하지 않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은퇴하고 계속 시내에 사시는 게 병원과 편의시설이 가깝고 부모님께 더 나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목요일에 계약금 선금을 보내고 3일 후 월요일에 계약서 작성과 동시에 계약금 잔금과 매수 잔금 전액을 치르고 집 열쇠를 넘겨받았다. 엄마와 전 과정에 동행했던 언니는 전화로 부모님의 반응을 생생하게 전달해주었다. 우리가 고향 동네에 아파트를 사놓고 상상했던 부모님의 반응을 이번에 원 없이 다 보았다고 했다. 


가난하다고 해서 취향도 못 가지란 법은 없다. 돈이 없어도 국민 평수인 84 제곱미터와 계단식을 선호할 수 있다. 가진 돈의 크기만큼만 꿈을 꿀 수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잔인한가. 


2편에 계속...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친정부모님, 시부모님 혹은 남편과 자식들의 생계를 홀로 책임지는 친구들이 많다. 나는 이런 우리를 新소녀가장이라고 부른다. 서로 힘들어할 때 '힘내! 네가 힘내야 해! 우리 소녀가장이잖아!'라고 파이팅을 나누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이전 01화 新소녀가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