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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점코치 모니카 Oct 10. 2021

외벌이 가장이 여자일 수도 있지.

新소녀가장 2

꿈에 내 친구 재은이가 나왔다. 재은이가 엉엉 울면서 남편이 자기에게 이혼을 요구한다고 했다. 남편이 내 친구더러 "너는 잘 나가는데 내가 너한테 짐만 된다." 라며 놓아줄 테니 떠나라고 했다고 했다. 


다음 날 재은이에게 톡으로 꿈 얘기를 했더니

"소름~~!! 어케 알았어?"

라고 답이 왔다.


이 부부의 갈등 원인은 단 하나. 여자인 내 친구 재은이가 외벌이 가장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 중 외벌이 가구가 거의 반을 차지하므로* 재은이 가정이 외벌이 가구라는 것 자체는 전혀 특이한 일이 아니다. 


단지, 외벌이 가장의 성별이 여자라는 점.


그 차이점이 15년이 넘게 매일 저녁 하루 3시간 이상 수다를 떨고야 잠자리에 드는 이 소울메이트 같은 부부를 갈라놓을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여고시절부터 튀지 않고 묵묵하고 성실한 타입이었던 내 친구 재은이는 결혼하면 아이 낳고 내 집 마련하고 열심히 살다가 또 더 큰 평수로 옮겨가는 식의 전형적이고 평범한 미래를 꿈꿨다. 그런데 여자인 자신이 외벌이 가장이라는 이유로 이런 미래계획을 세우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남자가 외벌이인 주변 가정을 보면 한 사람은 밖에서 돈을 벌고 한 사람은 집에서 살림하고 육아하며 자연스럽게 분업을 이루어서 집 사고 아이 낳고 잘 먹고 잘 사는데, 아내가 외벌이인 재은이네 가정은 항상 위태로웠다.


남편은 집을 사거나 아이를 낳거나 하는 미래를 계획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고 관련 주제의 대화는 항상 회피했기 때문이다. 


재은이 커플은 20대 초반에 작은 회사에서 만나 오랜 연애를 이어오다가 서른이 다 되어 결혼을 했다. 같은 업계에서 비슷한 처우와 연봉 조건으로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내 친구 재은이는 이직과 이직을 거듭하고 야무지게 석사까지 따서 커리어를 진화시켰고 결혼 직전 업계 상위 대기업으로 이직을 했다. 


하지만 사양산업에 속했던 남편의 주력 분야는 현재는 아예 직종 조차도 사라져 버리게 되었고 업계에서 서로 스카우트해가고 싶어 하던 남편의 주 무기는 하루아침에 쓸모가 없어져버렸다. 


비슷한 직종으로 이직을 했을 때도 남편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 자신의 분야가 없어진 후 뚜렷하게 커리어 전환을 못한 사이 한 해 한 해 나이만 차올라서 이직을 할 때마다 관리직을 맡게 되는 것도 문제였다. 차라리 실무를 하면 일 자체에만 더 집중할 수 있을 텐데 재은이 남편에게 관리직은 감당하기 힘든 자리였다. 원래도 외곬 성향인 데다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황이니 새로운 회사에서 동료들과 마찰이 있었고 이런 스트레스를 감당하기 힘들어했다. 이렇게 남편은 일을 하다 말고 하다 말고 하게 되었다.


남편이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남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며 사소한 일에도 피해의식을 갖게 되었고 자존감이 낮아져 심리적으로 점점 위축되어 갔다.


여자들이 활발하게 직장생활을 하다가 전업주부가 되어 경단녀가 된 경우에도 비슷한 심리 변화와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여자가 육아와 살림을 담당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여자들이 전업주부의 삶을 살면서 경력이 단절되고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를 숨길 정도로 수치스러워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같은 경우에 성별이 바뀌어 남자가 전업주부인 경우 이를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숨기려고 든다. 당사자가 당당하지 못하게 된 데에는 개인적인 사유도 있겠지만 우리 사회가 이런 경우를 자연스럽게 수용해주지 못한 탓도 있다. 


남편이 죄책감과 자괴감에 이혼을 원할 때마다 재은이는 남편이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배우자의 자격이 없는 것이 아니며 가족이자 소울메이트로서 자신에게 남편이 꼭 필요한 사람임을 주기적으로 구구절절 설득시켜 부부관계를 이어왔다.


2년마다 전세금을 올려주는 것에 지쳐서 초기 결혼자금에 대출을 얹어 공동명의로 아파트도 마련했고 아이도 낳았다. 맞벌이를 할 경우 양가 어른들 모두 지방에 계시는지라 육아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믿을만한 베이비시터를 구하기도 어렵기에 남편이 전적으로 육아와 살림을 맡기로 했고 출산을 앞두고 남편은 몇 개월째 다니던 n번째 회사에서 퇴사했다. 


이 가정이 외벌이를 택해야 된다면 영세업체를 다녔다 말았다 하는 남편보다 안정적인 대기업에서 더 많은 연봉을 받는 내 친구가 직장을 유지하는 것이 누가 봐도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친구 부부는 아이를 낳은 뒤 한참이 지나서까지도 양가 어른들께 부부 모두 육아휴직 중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내 친구 재은이가 복귀할 즈음에 남편의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남편이 아이를 돌보기로 결정되었다고 자연스럽게 흘릴 생각이었다. 그때가 되면 당장에 아이를 볼 사람이 없는데 남편더러 어떻게 해보라고 어른들도 종용할 수 없는 상황일 것이기 때문이다.   


배우자와 자식을 먹여 살리는 가장의 무게 자체만으로도 녹록지 않은데 내 친구 재은이는 소녀가장이라는 이유로 여러 사람의 눈치를 다 떠안고 살고 있다. 


혹시 남편이 어디 가서 또 속상한 일을 당하지는 않았을까, 시부모님이 괜히 나에게 미안해하지 않으실까, 친정부모님이 괜스레 속상해하시는 것이 아닐까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소녀가장의 삶이 더 힘겹다.


생각해보면 여느 외벌이 가정과 재은이의 가정은 똑같은 모습인데 모든 것이 조금 더 어렵다.


남녀가 바뀌어 아내가 전업주부의 길을 선택할 때는 전혀 시끄러울 일이 없는데... 남들처럼 그냥 외벌이 가정일 뿐인데 왜 이렇게 복잡해야 되는 건지 모르겠다는 재은이의 한숨이 휴대폰을 타고 넘어온다.




3편에 계속......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0년도 대한민국 전체 가구 중 맞벌이 가구 비율이 45.4% 다. 

/사진출처=Magnus Liam Karlsson/imagebank.swede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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