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점코치 모니카 Oct 11. 2021

담배를 부르는 친정엄마.

新소녀가장 3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나겠구나. 나는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갑자기 숨이 턱턱 막혔어. 가슴이 너무 답답해져서 신랑 담배를 들고 뛰쳐나가서 담배를 한 대 태웠어. 담배 한 대가 다 타들어가는 동안 손이 계속 덜덜 떨리고 눈물이 계속 났어.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할 걸 생각하니 내 처지가 너무 불쌍했어."


내 친구 현정이는 여고시절부터 공부를 잘해서 인서울 좋은 대학에 갔고, 휴학 없이 스트레이트로 졸업해서 바로 외국계 대기업에 취직했다. 사내커플로 결혼해서 타 광역시에서 뿌리를 내렸고 아들 둘의 엄마가 된 지금도 여전히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있다. 친구들 중에 취업도, 결혼도, 출산도 제일 빨리한 친구. 막히는 것 하나 없이 인생이 술술 풀려 잘 살고만 있는 줄 알았던 차장님 현정이. 오랜만에 만났는데 현정이가 감정이 없는 밀랍인형 같은 얼굴로 저런 말을 했다.


"엄마가 나만 쳐다보고 있어. 집이 감옥 같아.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나만 졸졸 따라다녀. 아이들 이야기로 시작해서, 온 동네 사람들 험담에, 아빠 험담까지 똑같은 레퍼토리가 매일 반복되는데 반응해주는 것도 정도가 있지. 그날은 씻으려고 옷 벗고 안방 욕실에 들어서는데 욕실 문 앞까지 따라와서 이야기를 하는 거야. 좀 씻자고 소리를 빽 질렀더니 그제야 나가셨어. 나 진짜 미쳐버릴 것 같아."


현정이 친정부모님은 우리가 초. 중. 고를 같이 다녔던 지방 소도시인 고향을 떠나 광역시 현정이 집에 함께 사신다. 현정이가 첫째 아들을 낳았을 땐 고향 친정집에서 친정어머니께서 아들을 키워주셨고 현정이와 남편은 주말마다 아이를 보러 갔다. 


둘째를 고민하고 있을 때 마침 친정아버지가 정년퇴직을 하셨고 출근하는 '아빠 밥'을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자 어머니가 현정이에게 둘째를 권하셨다. 둘째의 출산시기에 맞추어 친정부모님은 현정이가 사는 광역시 집에 합가 하셔서 두 외손자를 돌봐주셨다. 


워킹맘으로 고군분투하다가 아이들 돌봄 문제로 끝내는 퇴사를 결정하는 동료 여직원들을 보며 현정이는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선택지에 '퇴사'라는 옵션을 넣을 수 있는 그들의 처지가 부러웠다. 현정이에게 퇴사라는 선택은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현정이의 부모님은 7천만 원짜리 고향 아파트와 아버지의 퇴직금 1억 외에는 따로 노후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더 어려운 사람이 많다고 할지 모르지만, 가족 구성원 중 2명이 장애인인 현정이의 친정이 어느 날 갑자기 병원비 폭탄을 맞을 수 있는 처지인 것이 문제였다. 


하나뿐인 남동생은 군대를 다녀온 뒤 심각한 녹내장을 앓게 되어 운전면허도 갱신이 되지 않을 정도의 시각장애인이 되었고 평생 시끄러운 공장 환경에서 일하시다 은퇴한 아버지는 TV 시청이나 전화통화가 불가능한 청각장애인이 되었다. 


첫째를 낳고 고향 친정집으로 아이를 보냈을 때만 해도 어차피 현정이도 일을 계속하고 싶었고 또 자신이 그다지 모성애가 뛰어난 타입도 아닌 것 같아서 친정부모님께 아이 양육에 대한 수고비를 드리고 자신도 커리어를 유지해나가는 그 상황이 여러모로 윈윈이라고 생각했다.


첫째가 돌이 지나고 친정 가까이 가정어린이집에 다니게 되면서 친정어머니도 갓난쟁이 육아로부터는 조금 여유가 생기셨고 동네 친구들과 운동도 다니고 모임도 다니며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셨었다. 


그렇게 시간이 더 흘러 이제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같은 보육기관의 도움만으로 충분히 현정이가 첫째를 케어할 수 있는 시기가 왔을 때 친정어머니는 둘째 이야기를 꺼내셨다. 둘째까지는 본인이 봐줄 수 있다고 혼자 자라는 아이는 너무 외롭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둘째 출산과 동시에 친정부모님 두 분과 현정이 가족이 같이 살게 되었다. 


친정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니 아이들 케어뿐 아니라 저녁식사까지 친정어머니가 다 챙겨주시고 현정이는 설거지와 밀린 빨래, 청소 정도만 하면 되었다. 갑자기 회식이나 야근을 하게 된 경우에도 늘 집에 친정부모님이 계시니 걱정이 없었다. 베이비시터를 급하게 구하기 위해 발을 동동거린 적도 없고 평생 아동학대에 대한 걱정이라고는 없이 아이들을 키울 수 있었다. 


회사의 모든 여직원들은 현정이를 부러워했고 친정부모님이나 시부모님의 도움 없이 워킹맘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기에 진심으로 친정부모님이 고마웠다.    


하지만 현정이는 정신적으로 무너졌다. 


연고가 없는 타 광역시로 이주한 뒤 외부활동은 전혀 없이 하루 종일 집에서 아이들만 돌보는 친정어머니는 현정이에게 지나치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친정아버지와는 원래도 금슬이 좋은 부부가 아니었던 데다 청각장애인인 아버지와는 대화 자체가 불가능했다. 꼭 필요한 대화를 할 때도 엄마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야 했다. 같은 말을 몇 번이나 크게 반복해줘도 "뭐라고? 뭐라고?"라고만 하는 아버지와의 불통 끝에는 속에서 천불이 난 엄마의 욕지기가 항상 따라왔다. 세상과 고립된 아버지는 하루 종일 방에서 홀로 바둑, 장기, 고스톱 같은 컴퓨터 게임만 하며 시간을 보내셨다. 


하루 종일 집에서 말 못 하는 손주들과 말을 듣지 못하는 남편과 씨름을 하다가 딸이 퇴근하고 집에 오면 어머니는 현정이가 너무 반가우시다. 딸이 TV를 보면 같이 보고 싶고 딸이 누워있으면 옆에 같이 누워있고 싶고 딸이 집안일을 하면 같이 하고 싶고 모든 걸 같이 하고 싶어 하신다. 이 집에서 딸이 유일하게 소통 가능한 인간이라 딸이 집에 있을 때 만이라도 같이 놀고 싶은데 딸은 늘 짜증 섞인 말투인 것이 어머니는 못내 섭섭하셨다.


현정이가 친정어머니와 대화를 하다가 짜증을 내게 되는 데는 엄마의 대화 내용이 모두 다른 사람에 대한 험담 아니면 불평, 불만 같은 부정적인 것뿐이라는데 있다. 


일전에는 엄마가 서울 이모 댁에 살고 계시는 외할머니와 통화를 한 내용을 들려주었다. 대화의 요지는 학교 선생님인 이모가 평생 일하는 동안 아이들 2명을 외할머니가 같이 살면서 다 봐줬는데 그 공을 모르고 며칠 전에 이모와 이모부가 결혼기념일이라고 싸가지 없이 지네 부부 둘만 식사를 하러 갔다는 내용이었다. 엄마는 이모를 부모 공경하지 않은 불효녀 취급을 하며 욕을 했다.


현정이는 엄마의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앞으로 평생 동안 남편과 둘이서는 식사를 할 수 없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실제로 현정이는 모든 외식이나 가족 휴가를 친정부모님과 함께 한다. 친정부모님을 모시고 가지 않는 경우는 회사 워크숍이나 계모임 같은 단체 활동일 때뿐이다. 


한번은 주말에 현정이가 혼자 마트에 간 적이 있는데 부모님을 집에 남겨두고 혼자 외출했다고 친정어머니가 일주일 동안 말을 안 해서 괴로웠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같이 사는 처지에 일주일 동안 감정적 고문을 당하느니 그냥 모든 외출에 친정부모님을 동반하는 것이 편한 쪽이 되었다. 


다시 시간을 돌린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친정어머님이 고향을 떠나시고 자신과 합가 하는 선택을 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현정이는 만날 때마다 낯빛이 더 탁해져만 갔다. 



"어느 날 갑자기 보니까 우리 집에 장애인이 2명이고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 내 밖에 없드라."

"니 졸지에 소녀가장 됐네."

"ㅋㅋ맞다. 내 소녀가장 맞다. 비유 찰지네."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우리가 서로를 소녀가장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 


  


 


사진출처 : https://www.pexels.com/photo/silhouette-of-woman-smoking-cigarette-3361154/

이전 03화 외벌이 가장이 여자일 수도 있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