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공포증 1
아스퍼거 신드롬을 가진 남자 '아담'과 이웃 여자 '베쓰'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영화 '아담' 은 우리의 이야기와 똑 닮았다. 영화 초반에 베쓰가 바퀴가 달린 무거운 손수레에 짐을 가득 실어 끙끙대며 아파트 입구 계단을 오르는 장면이 나온다. 계단에 앉아 컴퓨터를 하고 있던 아담은 베쓰와 가볍게 인사한다. 베쓰가 무거운 짐을 나르고 있는 상황을 봤으면서도 아담은 자기가 하던 일에만 열중한다.
처음 보는 사이라도 이런 상황에서는 도와주기 마련이다. 심지어 구면인 이웃 아담이 모른 척하니 베쓰는 황당해한다. 이런 경우들 때문에 실제로 아스퍼거 신드롬을 가진 사람들은 배려심이 없는 사람, 무심한 사람, 눈치 없는 사람으로 종종 인식된다.
라이언과 영화를 같이 보다가 내가 말했다.
"You are not that bad. You help people all the time. Even too much." 너는 저 정도는 아니잖아. 너는 항상 딴 사람들을 도와주잖아. 심지어 너무 도와줘서 탈인데."
"I used to be like that." 나도 옛날에 저랬어.
"Really? How come?" 진짜 왜?
"I was too afraid to be rejected. It hurts too much if I get rejected when I just offer a help to others with a good intention." 거절당하는 게 너무 두려웠어. 내가 좋은 의도로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려고 했는데 거절당하면 그게 너무 상처가 돼.
"So you don't take any action at all because you are afraid to get hurt?" 마상 입을 게 두려워서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Yes, I would rather do nothing than being rejected and getting hurt. I have phobia of rejection." 거절당하고 상처받는 거보다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나아. 거절공포증 이지.
"But you are not like that anymore, right? What has changed you?" 근데 이제는 잘 도와주잖아. 어떻게 바뀌게 된 거야?
"I learned what to do from my parents and school and all... but it was really hard for me to actually do it at first but I got better as I realised by a few experinces people actually appreciate me."
학교나 부모님이 어떻게 하라고 가르쳐주잖아... 그래도 처음에는 실천하는 게 엄청 힘들었지. 근데 여러 번 경험으로 사람들이 내가 도와주면 고마워하는 걸 알게 되니까 점점 나아진 거 같아.
처음 보고 홀딱 반했다면서 마음에 드는 카페 아르바이트생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는데 3개월이나 걸린 것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생각해볼게." 라며 한 번 튕겨본 밀당 멘트가 그에게는 얼마나 큰 상처로 다가왔을지도 느껴져 미안함이 몰려왔다.
아스퍼거 신드롬에 대해 모르면 의도치 않게 그에게 상처 주는 일이 생길 것 같았다. '수집' 강점을 가진 나는 무언가 관심 분야가 생기면 한동안 그 주제에 대한 정보를 닥치는 대로 수집하는 경향이 있다. 이즈음 아스퍼거 신드롬에 대한 책, 영화, 다큐멘터리 등을 찾아지는 대로 다 본 것 같다. 아스퍼거 신드롬에 대해 더 알면 알수록 이 남자의 미스터리 한 행동들이 하나씩 하나씩 이해되었다. 내가 보고 들은 것에 대해 그와 함께 이야기 나누는 것도 재미있었다.
한 번은 KBS 스페셜이었나, MBC 스페셜이었나. '아스퍼거'라는 검색어 결과로 추천된 '무슨 스페셜' 다큐멘터리를 유튜브에서 보았다. 아스퍼거 신드롬을 가진 여고생의 일상을 취재한 내용이었다.
이 소녀는 아스퍼거 신드롬으로 인해 엄마 외에는 어느 누구와도 대인관계를 원만하게 이루지 못했다. 학교에 친구가 한 명도 없는 것은 당연하고 심지어 딸의 특이한 행동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버지와도 갈등을 겪고 있었다.
카메라는 이 소녀의 학교 생활 모습을 찍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학생들이 삼삼오오 그룹을 지어 도시락을 같이 먹었다. 왁자지껄한 아이들 틈에 주인공 여학생은 조용히 혼자 자기 자리에서 도시락 가방을 연다. 그런데 이 여학생이 밥을 먹지 않고 갑자기 이상 행동을 보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뭐라고 중얼중얼 대며 2미터 정도 되는 거리를 계속 왔다 갔다 왕복하며 서성이는 것이다. 카메라가 계속 찍고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상 행동은 지속되었다.
보다 못한 카메라맨이 같은 반 아이에게 소녀에게 말을 걸어보라고 시킨 것 같다. 같은 반 아이가 소녀 곁에 다가가 물었다.
"00야, 왜 그래? 왜 밥을 안 먹고 이러고 있어?"
이 소녀가 왜 밥을 못 먹고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