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도국 개발협력 현장이야기 #27
"우리는 어떤 국제개발협력 생태계를 남길 것인가"
지난 8월 13일, 국제개발협력 분야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논의의 장이 열렸습니다.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일자리 생태계를 물려주기 위해 마련된 이번 토론회에서는, 연구, 공공, NGO, 컨설팅 등 각 분야를 대표하는 시니어 활동가들이 모여 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날카롭게 진단하고 지속 가능한 해법을 모색했습니다.
토론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먼저 각자의 위치에서 바라본 문제점을 공유하고, 이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세션 1: 무엇이 문제인가?
각 패널은 자신이 속한 분야의 시각에서 생태계가 가진 뿌리 깊은 문제들을 지적했습니다.
김철희 박사(한국직업능력연구원 선임연구원)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개발협력 분야는 수요와 공급이 자율적으로 만나는 '시장'이 아니라, 정부 예산에 의해 좌우되는 '일방적 시장'이라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민간의 자율적 성장이 어렵고, 심지어 '산업'으로도 인정받지 못해 체계적인 인력 양성 정책조차 부재한 현실을 꼬집었습니다. 이는 결국 활동가들의 경력이 파편화되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분석했습니다.
노대영 과장(한국국제협력단 사업전략기획실)은 제도를 운영하는 공공기관의 입장에서 한계를 고백했습니다. 인턴, 봉사단, 코디네이터 등으로 이어지는 경력 '사다리'는 있지만, 그 끝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현재 시스템은 ODA 예산이 없으면 스스로 인력을 키우지 못하는 '재생산 불가능' 구조이며, 그 책임의 중심에는 예산을 집행하는 공공기관이 있다고 자성했습니다.
윤보애 대표(원더스 인터내셔널)는 현장에서 겪는 재정적, 구조적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기부금품법상 15%로 묶인 인건비 규정은 NGO가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으며, 소수의 거대 단체가 자원을 독식하는 구조는 새롭고 혁신적인 소규모 단체들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은샘 이사(공적인사적모임)는 청년 활동가들이 겪는 현실을 가장 날카롭게 고발했습니다. 영 프로페셔널(YP) 제도는 기관의 '공짜 인력 수급 창구'로 변질되어 청년들을 소모시키고 있으며, 프로젝트 수주는 기관의 역량이 아닌 '개별 전문가의 이력서'에 의존해 기관이 '인력 기획사'로 전락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현재의 경력 경로를 '안전망 없는 정글짐'에 비유하며, 한번 실패하면 재기할 수 없는 잔혹한 구조가 생태계 전체를 병들게 하고 있다고 역설했습니다.
세션 2: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문제 진단에 이어, 패널들은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구체적이고 과감한 해법들을 제시했습니다.
김철희 박사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촉구했습니다. 개발협력을 반도체처럼 '육성 산업'으로 지정해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하고, 공공기관과 대학이 독식하는 구조를 깨기 위해 민간 기관에 사업을 할당하는 '쿼터제' 도입과 같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노대영 과장은 시장의 체질 개선을 강조했습니다. 개발협력을 '본업'으로 하는 전문 컨설팅펌과 NGO를 육성하는 방향으로 사업 발주 구조를 바꾸고, 프로젝트 관리자(PM)는 기술 전문가가 아닌 '개발협력 관리 전문가'가 맡도록 입찰 자격부터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윤보애 대표는 평가 기준의 변화를 요구했습니다. 기술 중심의 평가에서 벗어나 현지 문화와 맥락을 이해하는 '현장 전문성'을 제대로 인정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청년들이 실질적 경력을 쌓을 수 있도록 YP 제도의 기간을 1년으로 현실화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은샘 이사는 가장 근본적인 '책임의 전환'을 주장했습니다. 이제 개인에게만 역량 강화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고용 주체인 '기관'이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지를 평가하고 압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수주 실적 같은 양적 지표가 아닌, 사업 수행의 질을 평가하는 '기관 평가 시스템'을 도입하고, 기관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예산을 '기관 관리비'와 '전문가 활용비'로 나누는 이원화 구조를 제안했습니다.
결론: 시스템의 실패를 넘어, 연대를 통한 재구성으로
결론적으로 이날 토론은 국제개발협력 일자리 생태계의 문제가 개인의 역량 부족이 아닌, 정부 주도의 왜곡된 시장 구조, 잘못된 평가 및 보상 시스템, 단절된 경력 경로라는 총체적인 '시스템의 실패'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리고 그 해결책은 개인의 노력을 넘어, 제도 개선을 통해 전문 민간 기관을 육성하고, 기관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와 압박을 가하며, 활동가들이 서로 연대하여 목소리를 내는 것에 있음을 강조하며 마무리되었습니다.
특히 이은샘 이사가 던진 "외부의 기준에 맞추기보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을 찾고, 지칠 때 서로를 지지해주는 '동료 간의 연대'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는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