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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답'을 주는 시대

우리의 역량은 '올바른 질문'을 할 때 상승한다.

by 라이프파인

르완다 사업 총괄자로 일하며 깨달은 가장 아이러니한 사실 중 하나는, 공들여 만든 20여 페이지짜리 업무 매뉴얼보다 현지 직원들과 마주 앉아 나눈 대화가 더 큰 변화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뭘까요?"

이런 질문을 하면 여러 의견이 나오고 결국 그 과정에서 해결할 문제와 해결 방안이 도출되어집니다.

매뉴얼을 배포하는 것은 제가 '지시하는 사람'이 되지만, 함께 대화를 하며 질문을 던지는 것은 우리를 '함께 길을 찾는 파트너'로 만들었습니다. 지시에는 수동적인 실행이 따르지만, 좋은 질문에는 능동적인 고민과 주체적인 해답이 따라왔습니다.

이는 비단 르완다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인공지능(AI)이라는 역사상 가장 완벽한 매뉴얼 도구를 손에 쥐었습니다. AI는 우리가 시키는 일은 놀랍도록 완벽하게 해내지만, 정작 우리가 ‘무엇을’ 시켜야 할지 스스로 결정하지 못합니다. AI는 우리가 던지는 질문의 수준을 결코 넘어서지 못한다는 명백한 한계를 가지고 있죠.

협동조합원끼리 마음이 맞지 않아 서로 싸운 상황이 있어 AI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지 묻는다면, 굉장히 뻔한 답변을 해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활동가들은 직접 조합원들을 만나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싸움의 원인이 무엇이며, 또 화해하기 위한 방안과 앞으로 이러한 류의 일이 재발하는 것을 막을 단초는 무엇일지 질문을 하며 해결할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AI와 인간 전문가의 역할이 갈립니다.

저는 이것이 미래 국제개발의 핵심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이제 '사업 계획서(Business Plan)'를 넘어 '질문 계획서(Question Plan)'로 프로젝트를 시작해야 합니다.

과거에는 사업 목표와 상세한 실행 계획을 미리 짜고 현장에 적용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AI가 계획서 작성을 더 잘하는 시대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사업이 해결하려는 진짜 문제는 무엇인가?', '우리가 놓치고 있는 현장의 숨겨진 맥락은 없는가?', '이 프로젝트가 5년 뒤 이 커뮤니티에 어떤 예상치 못한 나비효과를 가져올까?' 와 같은 본질적인 질문들을 설계하고, 그 질문들을 현지 파트너와 함께 풀어가는 능력입니다.

이는 곧 현지 파트너를 위한 역량 강화 교육의 패러다임 또한 '답을 찾는 교육'에서 '문제를 정의하는 교육'으로 전환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들에게 코딩이나 데이터 분석 기술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앞서 그들이 자신의 현실에 맞는 올바른 질문을 스스로 던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AI라는 강력한 도구를 현명하게 사용할 '운전자'를 키워내는 일입니다.

미래의 국제개발은 '최고의 솔루션'을 외지에서 가져와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최고의 질문'을 함께 찾아가는 여정이어야 합니다.

AI는 그 여정의 훌륭한 나침반이 될 수 있지만, 어느 방향으로 걸어갈지, 왜 그 길로 가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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