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style) 살리는 법 - S : short & simple
글은 짧게 써야 한다고 한다. 여기서 짧음은 글 전체의 길이가 아니라 문장의 길이다. 사람들은 의외로 상대방이 말을 할 때 그 내용을 첫째,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다. 둘째,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대화를 나누거나 얘기를 들을 때 내 머리 속에서는 나만의 경험에 따라 재구성이 이뤄지고, 그 뒤에 비로소 내가 상대방의 의견에 공감하거나 아니면 거부하는 프로세스를 거친다(유튜브를 볼 때마다 느끼는 최악의 콘텐츠 마무리는 동영상을 보고난 뒤 나의 느낌이 정리되기도 전에 ‘구독 좋아요’를 눌러달라고 그 분들이 강요하는 것이다. 감정 강요 행위...). 그 과정은 글을 읽거나 말을 들을 때도 비슷하게 이뤄진다. 짧을수록 좋다는 건 아래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작가 김훈의 글은 명료하다. 김훈을 통해 읽는 이순신은 그래서 힘이 있다<칼의 노래>. 김훈이 전하는 가야금 얘기는 더욱 애절하고 살아 숨쉰다<현의 노래>. 조선을 침범했던 청나라군이 왜 오랑캐로 불렸는지… 무기력한 임금과 양극단을 달리는 당시 신하들의 갈등이 눈 앞에 그려지는건 김훈이 전하는 글의 호흡 때문이다<남한산성>. 그래서 김훈의 글은 장편이라도 단편처럼 읽힌다. 오해가 없고, 재미있다.
20년 넘게 남들이 쓴 글이 오롯이 책으로 나올 수 있게 만드는 작업을 해서 ‘교정의 달인’이라고 불리는 교정가이자 작가 김정선은 김훈에 대해 "접속사나 지시어 조차 남발하지 않아 더욱 힘이 있다"고 말한다. 접속사나 지시어 ‘~이 ~가’의 남발을 ‘삿된’ 것이라 지칭한다. ‘삿되다’는 말은 바르지 못하고 나쁘다는 말이다. 주어 하나에 서술어 하나 원칙을 지키는 김훈의 글은 바른 길을 가는 단문 쓰기의 교본이다.
방송 뉴스는 문장이 짧다. TV는 글을 읽는 게 아니라 화면을 눈으로 보면서, 말을 귀로 듣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방송 기자로 입사하면 수습 기간에 선배들로부터 처음 배우는 제1 원칙은 “중학생이 들어도 이해할 수 있게 쉽게 쓰라”이다. 그게 어려우면 일단 짧게 쓰라고 했다. 짧게 쓰면 쓰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 길을 잃고 헤맬 가능성은 적어진다.
그럼에도 방송 기자로서 뭔가 있어 보여야 한다는 중압감은 주어와 맞지 않는 서술어, 무슨 말인지 모르는 비문, 용두사미 같은 문장을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이런 문장들이 모여 완성된 뉴스 원고는 내가 읽어도 모르고, 원고는 싸인내야 하는 고참 데스크가 읽어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그래서, 당초 전달하려는 목적과는 달리 산으로 가기 일쑤였다. (→ 이 문장은 짧게 쓰는 원칙과 정반대로 써봤다.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호흡이 가쁘다.) 제1원칙, 중학생이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은 일단 짧아야 했다.
교정자이자 작가인 김정선은 <열문장 쓰는 법, 2020>에서 최근 출판의 트렌드는 짧게 쓰기에 있다고 말한다. 전문적인 작가나 책을 완성하는 편집자 모두 짧게 쓰라는 현상에 대해 ‘단문교’라는 종교단체와 같다며 ‘글쓰기 = 단문 = 짧게 쓰기’가 공식처럼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맞는 말이다.
다만 김정선이 우려하는 대목은 설령 짧게 쓰기가 맞다고 하더라도 글을 쓸 재주가 부족한 사람이 무턱대고 처음부터 짧게 쓰기는 쉽지 않다는 점이다. 글을 처음 쓰는 사람이 작가 김훈 처럼 쓸 수 있을까. 설령 쓴다고 하더라도 짧게 나눠져 있는 문장의 흐름을 이어가기 위해 ‘그리고, 그래서, 그런데’가 남발되고 ‘지시어’는 툭툭 튀어나오며 같은 말을 반복하는 ‘동어반복, 중언부언’만 남게 된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작가 은유는 화려한 요소가 얼마나 많은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요소가 얼마나 적은가가 글의 성패를 가른다고 했다(쓰기의 말들, 2016).
뉴욕타임스 편집위원인 벌린 클링켄보그는 <짧게 잘 쓰는 법, 2012>에서 짧게 써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들고 있다. 공감이 가는 글들을 몇 개 추려본다.
“우선 길이를 충분히 줄여 짧은 문장을 써보면 도움이 된다”
→ 자신의 의도를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공통의 언어를 통해 독자에게 오롯이 전달하기 위해서는 말의 핵심에 집중해야 하고, 그걸 위해서는 필요없는 말을 가지치기해야 내 글의 핵심 ‘코어’만 남게 된다.
“짧게 쓰면 주어와 동사가 단도직입적이고 명료해진다. 지시하는 관계대명사나 문장 안에 문장이 섞여있어 혼동을 주는 영어식 문장을 피할 수 있다.”
→ 바로 그 삿된 성분인 지시어를 피하면 혼동의 여지는 그만큼 줄어든다.
“단문을 쓰면 길이에 상관없이 강력하고 균형잡힌 문장을 쓸 수 있다. 이때 문장이 끊기거나 흐름이 중단되는 걸 막는 일은 변형과 리듬감이다”
→ 노래 가사나 시를 생각하면 된다. 짧은 문장으로 변형과 리듬감을 최대한 잘살린 문장의 표본은 개인적으로 ‘랩’이라고 생각한다. 래퍼들은 그래서 단문쓰기의 천재들이다.
“형편없는 짧은 글은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다”
→ 무조건 짧게 쓴다고 잘 쓴 글이 되지 않는 이유이다. 하지만 짧게 쓴 글은 길게 쓴 글과 비교해서 형편없는 글이 될 가능성이 낮다.
“경제적으로 쓰려면 더 단순하고 평이한 문장을 고민해 가장 단순하고 직접적인 길을 찾아야 한다”
→ 흔히 단어를 많이 알면 글을 잘 쓸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많은 단어는 어려운 한문체 문장으로 이어지기가 쉽다. 신효원의 <어른의 어휘공부, 2022>가 참고가 된다. 예를들면, 뭔가를 살펴보는 것은 ‘숙찰하다’ ‘타진하다’도 되지만, ‘뜯어보다’ ‘톺아보다’로 쓸 수 있다. 비슷한 것은 ‘유사하다’ ‘근사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만그만하다’ ‘고만고만하다’, ‘비스름’하고 ‘어금지금’하고 ‘어금버금’하다라고도 쓸 수 있다. 낡은 것은 남루하다고 할 수 있지만 너절하고, 해지고, 캐캐묵다고 쓸 수 있다. 글 쓰는 책상 앞에 어휘 사전을 요약해두고 단순하고 직접적인 단어 쓰기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다.
“평이한 문장들도 울림이 있는 문장들만큼 목적이 뚜렷하고 효율적이다”
→ 괜한 수식어나 부연 설명에 대한 강박 관념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동사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 동사가 중요한 이유는 내 말의 결론이 되기 때문이다. 말을 하거나 글을 쓸때 내가 쓸 동사를 기억하고 있으면 중간 과정에 길을 잃더라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다. 사실 영어에서는 이미 동사를 언급하고 부연해 나가기 때문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동사를 먼저 얘기하는 것은 결론을 먼저 언급한다는 의미다. 오해의 여지가 그만큼 줄어든다.
“독자들은 과도한 서술과 묘사, 과도한 설명과 의미 부여를 제거할 때 저자의 글을 신뢰한다”
→ 서술과 묘사, 설명과 의미 부여는 그만큼 내 말과 글의 핵심에 자신이 없다는 의미다. 가령 맛있는 음식이다. 그냥 먹어보면 안다. 원료나 요리에 자신이 없을수록 이 음식의 맛에 대한 이유가 붙는다. 의미 부여가 필요하다. 우리 말에 ‘약장사’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약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에필로그…
문장과 문장 사이 '공백의 중요성'에 대해
→ 짧게 쓴 글과 글 사이에는 공백이 많다. 한 페이지에 쓴 문장의 수보다 하나 적은 공백이 남게 된다. 저자는 쓸데 없는 말이 비워진 자리에 남은 공백은 오히려 독자들에게 혼란을 주지 않고 내가 전하고자하는 의미가 전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한다. 이걸 ‘암시(implication)의 공간’이라고 한다. 영어 문장에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라는 “read between the lines”도 이런 이유에서 중요하다.
('포즈도 메시지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