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에서 스타일(style)이 중요한 이유
오늘 또 스타일을 구겼다.
scene 1. 나는 더운게 싫다.
더위를 많이 타는 사람들에게 여름, 더운 곳, 뜨거운 음식, 빨리 걷기, 운동 등은 죽음이다. 공통점은 하나다. 바로 땀이다. 땀은 체온 조절을 위해 땀샘에서 분비되는 액체다. 인체를 위해 없어서는 안될 신진대사의 하나로 나를 살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땀은 스타일을 구기게 하는 대표적인 신체 활동이다. 땀은 옷을 젖게 하고 이른바 겨땀(겨드랑이를 젖게 한다) 앞에 신사는 없다. 땀은 애써 살린 머리 스타일을 한순간에 망가뜨린다. 땀 앞에 스타일은 없다. 내 스타일은 또 구겨진다.
scene 2. 어느 발표 날.
원고를 준비하고 발표를 위한 PT 준비에 며칠을 보냈다. PT는 동영상 플레이가 가능하도록 중간중간에 URL 링크를 걸었다. 요즘은 텍스트 기반의 발표보다는 화면과 영상을 준비하는게 보는 사람들의 이해도 돕고 피드백도 좋다. 발표를 시작했다. 예상과 달리 동영상은 플레이 되지 않았다. 링크의 잘못 보다는 발표 장소에 준비된 PC와 외부 링크 플레이 환경이 내가 평소에 쓰던 노트북의 환경과 다르기 때문이었다. 준비된 동영상을 플레이 할 수 없으니 말은 더 많아졌다.
노트북으로 보던 PPT의 슬라이드쇼는 실제 발표 현장에서 생각보다 해상도가 낮았고, 글자의 가독성은 더 떨어졌다. 포기할 수는 없다. 발표자의 역량으로 예상 밖의 변수를 극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시간은 생각보다 많이 흘렀고, 발표는 그렇게 끝났다. 준비한 것의 50%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다. 스타일 구겼다.
우리를 발목잡는 건 스타일(style)이다.
김익한은 <거인의 노트>에서 생각의 중심을 '라이프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이를 다시 아들러의 철학을 빌어 하나의 가치관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가치관은 어떤 것을 보고 좋다. 싫다 등의 느낌을 갖게 하고, 어떤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서 생각을 하게 만든다. 라이프 스타일은 나의 말투를 만들고, 내가 입는 옷을 결정하고, 내가 사는 집의 내부를 결정한다(솔직히 외부와 위치는 경제적인 영역이라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라이프 스타일의 밖의 영역이다. 슬프게도…).
두 사람이 대화를 한다. 대화는 각자의 라이프 스타일에 의해 듣는 사람의 가치관으로 각색된다. 같은 자리에 있었던 두 사람은 각자의 에피소드를 간직하고 자리를 뜬다. 마찬가지다. 내가 얘기를 할 때 내 머릿속에 있는 그림이 듣는 사람이 그림과 다른 이유다. 같은 영화를 봐도 관객들의 마음 속에 그려진 그림이 서로 다른 이유다.
그러면 스타일을 구기는 것은 내 가치관과 다르게 뭔가가 표출되고 만들어진 것이다. 내 의지가 아닌 타의로.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스타일을 구기는 것은 내탓 때문일 가능성도 많다. 적어도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는...
말을 하고 글을 쓸 때 스타일을 구기지 않으려면 준비가 필요하다. 일단 준비가 필요하다. 장을 봐야 음식을 할 수 있다. 좋은 재료가 없이 맛있는 음식을 하려면 사기가 될 수밖에 없다. 어느 교수가 얘기했다. 교수가 되면 강의나 PT를 할 일이 너무도 많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특히 발표자에게 주어진 시간을 지키는 것이 제일 중요한데 이건 어떻게 잘 할 수 있을까요? 답은 너무도 간단했다. "준비를 많이 해야 합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대략 메모해두고 연습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에피소드를 말하고 시간배분을 하고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고, 내 생각과 달리 어떤 부분에서 예상 외로 듣는 사람의 반응이 별로라면 그 부분은 짧게 언급하거나 아예 날리는 임기응변도 미리 사전에 준비해야 한다는 거다.
만약. 준비가 부족하다면 일단 짧아야(short & simple) 한다. 내가 하는 말의 전체 시간도 짧아야 하지만 내가 구사하는 문장도 짧아야 한다. 중언부언, 했던 말 또하기는 반드시 피해야 한다. 만약. 내가 말을 하고 있는데 상대방이 휴대폰을 보고 있다면 두가지다. 내 얘기가 재미 없거나, 너무 재미있어서 다음 약속 시간을 보거나... 하지만 후자의 가능성은 낮다고 봐야 한다.
다음. 톤(tone)을 살려야 한다. 일단 말을 할 때는 내 얘기를 3가지(첫째, 둘째, 셋째)로 요약해서 순서대로 얘기해보자. 내가 하고 싶은 메시지를 딱 3개만 말해보자. 그 3개의 메시지 사이에는 충분히 포즈를 두자. 이것이 바로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자 핵심을 살리는 비결이다. 내 경험이든 타인의 얘기든 예를 들 때는 생생하게 묘사해주자. TV나 유튜브를 통해 유명한 역사 강의학자들을 생각해보자. 역사의 현장이나 인물이 내 앞에 나타난 듯한 재연이 먹히는 이유다. 말에서 스타일(style)은 이렇게 시작되고 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