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캬라멜 Nov 22. 2024

꼴도 보기 싫은 상대가 있다면

전화기 글꼴을 바꿨을 때 생기는 일들

우리가 꼴을 얘기할 때


''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아는 단어지만 혹시나 싶어서 사전을 찾아봤습니다.

1. 겉으로 보이는 사물의 모양

2. 사람의 모양새나 형태를 낮잡아 이르는 말

3. 어떤 형편이나 처지 따위를 낮잡아 이르는 말


첫번째 뜻은 가치중립적입니다. 그냥 모양을 뜻하는데 이런 뜻으로는 평소에 잘 쓰지 않습니다. 꼴을 쓸 때는 주로 두번째와 세번째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아니면 타인을 말할 때 꼴이라고 쓴다면 그는 기본적으로 사람이나 상황을 낮게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꼴과 비슷한 단어가 있습니다. 별꼴. 사전을 찾아보니 '별나게 이상하거나 아니꼬워 눈에 거슬리는 꼬락서니'를 말합니다. 이것도 역시 기분이 언짢을 때 쓰는 표현입니다. 별꼴이야...


회사 생활을 20여년 넘게 하다보니 인사 시즌이 가장 큰 고민입니다. 주니어 시절에는 피하고 싶은 선배들이 많았는데, 어느덧 고참축에 들어가다보니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피하고 싶은 동료나 선배는 아닐까...' 피하고 싶은 사람은 복도에서 마주치면 여간 어색한게 아닙니다. 인사를 하지 않을 수도 없고, 그냥 지나칠 수도 없고. 회사 생활이 길어질수록 그렇게 어색해서 피하고 싶은 동료들이 늘어갑니다.


제가 이런 생각을 하게된건 동료들로부터 나름대로 상처를 입은 뒤였습니다. 누군가가 뒤에서 제 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됐고, 그 후유증이 쉽게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 저도 좀처럼 누군가의 얘기를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가족보다 더 많이 보게되는 직장 동료인데, 내가 떠나지 않는다면 퇴직할 때까지는 미우나 고우나 얼굴을 보면서 지내야 하기 때문이죠.


작가 김훈은 이제  말은 소통에 기여하기보다는 인간 사이의 단절을 완성시키고 있다는 취지의 글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 더 재미있는 표현흔 '말은 말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고도 했죠(연필로 쓰기, 2019). 김훈 선배님의 말대로 이제 말을 줄여야 할 나이인데, 그게 좀처럼 되지 않습니다.


종종 오전 시간에는 티타임을 자주 가지곤 합니다. 어차피 회의도 해야하고, 커피도 마셔야 하니 회사 로비의 카페에서 동료들과 커피 한잔 하면서 하루를 여는 재미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시간이 누군가를 얘기하는 시간이 되가는 거 같아졌습니다. 누군가가 커피 한잔 할래? 물어보면 사실 100%입니다. 누군가의 ‘꼴’을 얘기하고 싶은거죠. 어떤 자리에선 저도 누군가의 입에서 ‘꼴’이 되어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마음에 내키는 일보다는 의무적으로 해야할 일들이 늘어날수록 꼴도 보기 싫은 사람이 늘어갑니다. 그런데 피할 수가 없습니다. 직장, 학교, 조직, 모임... 전화가 오고, 문자가 오는데 거절할수도 대놓고 표현하기도 어렵습니다. 전화번호에도 카톡에도 있는 분들이죠. 그래서 찾은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전화기의 글꼴을 바꾸는 겁니다.


'꼴'도 보기싫은 사람을 슬기롭게 바꾸는 방법


꼴도 보기싫은 사람이라도 오랫동안은 봐야할 거 같습니다. 회사를 그대로 다니고 사회 생활을 하고 있다면 말이죠. 이럴때 제가 최근에 찾은 방법입니다. 글꼴을 바꾸는 겁니다. 포털 사이트나 자주 쓰는 앱의 글꼴을  바꾸는 것이 아닌 전화기의 메인 글꼴을 바꾸는 겁니다. 그러면 시스템의 글꼴까지 모두가 바뀝니다. 전 개인적으로 명조체보단 고딕체를 좋아하고, 글에 기교를 부리는 거 보단 심플하고 단순한 글꼴을 좋아합니다. 핸드폰의 글꼴을 모두 검색했습니다. 처음에는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는데, 자꾸 보니까 몇 개로 추려졌습니다. 그렇다고 Z세대들이 즐겨쓰는 글꼴을 하기엔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글꼴을 하나 찾았습니다. 글꼴 이름에 '하늘'도 들어가고 '별'도 들어갑니다. 어떤 글자체인지 상상이 되시죠? 다운을 받고 바꿔봤습니다. 이게 웬일일까요. 글꼴을 바꾸니 그간 문자나 카톡을 나눴던 상대방의 메시지 내용들이 글꼴처럼 바꼈습니다. 고딕체 너머에 있던 선배도 글꼴처럼 부드러워졌고, 딱딱한 단톡방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얘기가 정말 글꼴처럼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기분 나쁘게 느껴졌던 내용이나 누군가에 대한 험담조차도 귀여운 농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일단은 방법을 찾은 셈입니다. 그래서 바꾼 글꼴을 아직까지 바꾸지 않고 쓰고 있습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했는데, 인간인 이상 즐기기는 쉽지 않습니다. 마음을 속이기도 싫고요. 일단 내가 바뀌면 되는데, 그것도 하루아침에 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찾은 임시방편이 아직은 유효합니다. 글꼴이 바뀌면 사람이 바뀐다.


주역 '산화비'가 말하는 '꾸밈'의 의미


주역 22번째 괘로 ‘산화비’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꾸민다는 의미입니다. 아름답게 치장하는건 원래 모습을 감추는 겁니다. 정도껏 꾸미는 건 자기 만족이자 상대에 대한 배려이기도 합니다. 젊음은 그 자체로 매력이기도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아름답게 꾸민 분들을 보면 멋집니다. 은발의 어르신들의 꾸밈은 그렇게 좋아보일 수 없습니다.


피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일단 꾸미고 볼 일입니다. 비록 언짢아도 바로 내색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괜히 내 마음만 다치기 때문입니다. 전화기 너머  상대의 기분나쁜 말투는 나의 기분좋은 '글꼴'로 바꿔서 보기로 했습니다. 조만간 음성도 바꿔볼 수 있는 AI 시대가 열리겠죠? 산화비의 삶은 내가 상처받는 걸 피할 수 있는 지혜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이어리와 칸트는 인간미 없지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