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로유'는 가수 목소리를 맞추는 그간 프로그램의 최첨단 AI 버전이다. 기본적으로 노래를 잘하는 가수들 속에 그 가수 목소리를 정말 비슷하게 흉내내는 AI가 있다. 진짜 속에서 가짜를 찾아내야 하고, 가짜 속에서 진짜를 찾아내야 하는 콘셉트이다. 지금은 진짜와 가짜를 구분해내기 힘든 딥페이크의 시대이다.
히든싱어
2012년 시작한 '히든싱어'는 사람들 간의 대결이었다. 사람들 다수는 그동안 살던 동내 노래방에서는 가수 뺨칠만큼 똑같이 노래를 잘하는 고수들이다. 그 고수들 속에 진짜 가수가 숨어있다. 가수로선 제일 마지막까지 살아남아야 스타일을 구기지 않고 체면도 사는 셈이다. 이 프로그램의 묘미는 노래 잘 하는 고수와 노래가 직업인 가수가 숨어있다는데 있다. 그래서 목소리 만으로 찾기는 어려운 것이다. 목소리는 사람마다 구분된다고 생각했던 믿음이 이 프로그램에서는 잘 깨진다. 그래서 재밌다.
복면가왕
2015년 선보인 '복면가왕'도 숨어있다는 점에선 비슷하다. 포맷 수출로 전세계 방송계를 강타하고,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복면가왕에선 노래 잘하는 스타들이 얼굴을 가리고 경쟁한다. 얼굴만 숨기는게 아니라 나이, 직업, 신분, 정확히는 목소리까지 숨긴다.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가면을 과대 포장하고 그 속에 진짜 나를 숨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묘미는 속이는 것이 아니라 진짜를 드러내는 순간에 있다. 보는 사람들은 가면으로 가렸지만, 실제 그 가수를 연상하게 되고, 그 가수 만큼이나 숨어서 노래를 잘하는 가면 속의 얼굴은 누구일지 상상하며 경연을 본다. 잘 속인 가왕들은 그만큼 회를 거듭하며 시청자들을 속여가지만 사실 방송을 하고 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구인지 짐작을 하고 잘 맞춘다.
너의 목소리가 보여
역시 2015년 등장한 '너의 목소리가 보여'는 좀 다르다. 대부분이 노래를 잘하는 우리 주변 이웃들이 나오는데, 그 속에서 음치를 찾는 것이다. 말하자면 음치는 최대한 노래 잘하는 사람으로 연기를 하는데, 직업과 사연 등 배경이 한 몫을 한다. 얼굴도 있는 그대로 다 보여주지만 그 속에서 가짜를 찾아내야 한다.
라틴어에서 탈, 그리스어로는 가면을 뜻하는 ‘페르소나’는 집 대문 밖을 나가면서 쓰는 우리들이 쓰는 나의 또다른 얼굴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명함을 줄때 보여주는 얼굴이며, 타인에게 전화를 걸 때 '안녕하세요, 누구입니다'하고 드러내는 얼굴이다. 우리는 모두 가면을 쓴다. 진짜 나는 일기장 속에만 존재한다. 간혹 집에만 들어오면 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다. 예전에 친구 어머니들이 그랬다. "OO 엄마는 진짜 좋겠다. OO 아빠를 남편으로 두고 있어서..." 그 진실은 엄마만이 안다. 집에서 아빠가 어떤 모습인지는... 페르소나 아버지와 집에서의 아버지. 그래서 가족들은 정작 한 지붕 안에 있으면서 정작 가족들의 페르소나는 모르고 지낸다.
혼네(本音, ほんね)와다테마에(建前, たてまえ)
그걸 제일 잘 하는 사람들이 이웃나라 일본 사람들이라고 했다. 다른 문화권에서 살던 루스 베네딕트의 눈을 통해 '국화와 칼'이라는 책으로 더 잘 알려진 개인의 진짜 속내와 사회적인 규범에 따라 보여주는 겉모습이 다른 일본인. 사무라이로 대표되는 막부시절, 각 지역에 흩어져 있는 주군을 모시면서 자기 속내를 드러냈다가는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일본의 역사가 개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걸 제일 잘하는 사람들이 살아남았고, 그 DNA가 일본인의 피 속에 흐르고 있을텐데 그걸 베네딕트는 잘 잡아냈다. 어쩌면 이웃나라 우리의 눈에 훨씬 더 잘 드러났을텐데, 우리에겐 낯설지 않았다. 반도국가로 대륙과 해양의 침략과 전쟁을 끊임없이 겪어야 했던 우리 역시 그런 DNA가 몸 속에 흐르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 눈에는 그렇게 특별하게 보이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국화와 칼' 이전에는 마치 없었던 것처럼... 휘슬러가 안개를 그리기 전에는 런던에 안개가 없었다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이 또한번 와닿는다.
가짜는 더욱 진짜처럼 진화하고, 우리는 진짜 찾기에 열광한다
2024년 5월. 오픈AI가 최근 'GPT-4o'를 출시했다. 문자를 통해 대화하던 기존 모델에서 더 발전해 실시간으로 음성 대화를 할 수 있는데, 더 자연스러워졌다. 더 사람스러워졌단다. 대답 속도는 인간의 응답시간과 비슷하다는 설명이다. 가뜩이나 사람같은 대답을 해서 소름끼쳤던 GPT-4가 더욱 사람같아지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데이터가 공급된 만큼 그 분야를 무한 학습하기 때문에 데이터가 공급되지 않은 분야 만이 역설적으로 우리 인간이 살길이다. 결론적으로 AI가 발전하는 속도는 2024년의 예능 '싱크로유'가 나오게 된 것에 필연성을 더한다. AI가 우리를 더 흉내낼 수록 우리는 진짜 찾기에 더 열광할지 모른다.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주역에 보면 땅에 천둥 번개가 칠 때는 기다리면서 '대비'할 것을 강조하는 괘가 있다.
'뢰지예(雷地豫)' 땅 위에 우뢰가 치고 있다. 땅이 들썩거리니 혼란스러울 것 같기도 하다. 땅에 우레가 치니 들썩거리는 형국. 기쁜 일이 오는 것을 대비하며 기다려야지 섣불리 경거망동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다양한 조건에 맞춰 흐름에 따라 대비하면서 순응해가야 한다.
결국 새로운 세상, 패러다임이 도래했을 경우 순종하는 것도 필요하다.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되 섣불리 드러내서도 안된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AI가 등장하고, 내 직업, 내 직장이 없어질 것 같다. 세상이 하루 아침에 바뀔 것처럼 뉴스가 도배되고, 언론이 떠들썩하지만 이럴 때 일수록 기다려봐야 한다. 뭐가 사라지고 뭐가 남을지. 기다리면서 대비해야 한다는 기본을 또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