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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캬라멜 Jun 13. 2024

같은 옷

그들이 같은 옷을 고집하는 이유

첫째, 날씨를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 날씨가 추운지 더운지 알 수 없다. 차를 팔고 걸어다니기 시작한 이후로 뭘 입고 출근할 지는 아침의 중요한 루틴이 됐다. 어떤 외투를 입을지, 비는 오지 않을지, 셔츠만 입고 나가도 될지 여부는 적어도 네이버를 통해 날씨를 확인하고 난 뒤 결정된다. 특히, 퇴근길 날씨까지 확인은 필수다.


둘째, 일정을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직원 일 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뭘 입고 출근한들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회사에서 팀장을 맡고, 사람들 만날 일이 많이 생기면서 적어도 예의를 갖출 일이 많이 생겼다. 점심이나 저녁에 약속이 있는 날에는 아무래도 와이셔츠나 자켓이라도 입게 된다.


셋째, 진짜 입을 옷이 없을 때다.

정확히 말하면 세탁이 되지 않았거나 준비된 옷이 제대로 없을 때는 다시 고민이 된다. 그래 하루 더 입자. 아니면 내키지는 않지만 깨끗한 옷을 입고 나가자. 뭐 그런식이다.


넷째, 어제와 같은 옷을 입지 않기 위해서다.

언제부터인가 이틀 연속 같은 옷을 입고 출근하면 왠지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것 같았다. 정확히는 누군가가 나에게 농담처럼 "어제 집에 안들어갔어?"라고 말했던 거 같다. 웃길려고 했는데, 듣는 사람은 꽤나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다. '아… 사람들이 타인의 복장에 대해서 관심이 많구나…'


이런 나와 정반대의 생활 루틴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알만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같은 옷을 고집하는 이유는?


스티브 잡스.

검은색의 목이 있는 긴 티셔츠와 청바지, 뉴발란스 운동화가 트레이드 마크였다. 어떤 책에서는 잡스를 이렇게 분석했다. "스티브 잡스가 항상 검은색 터틀넥과 청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고 다닌 목적은 그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결정의 피로감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맞다. 이런 목적이었다면 잡스는 두 개의 목적을 모두 달성했다. 스티브 잡스는 그렇게 우리들 머리 속에 영원히 존재한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거느린 마크 저커버그는 회색 티셔츠의 청바지가 트레이드 마크이다. 페이스북에서 지금은 메타가 된 창업자이자 CEO 저커버그는 페이스북 시절에는 그랬다. 옷 고르는 시간이 아까워서 회색 티셔츠만 입는다고 언론을 통해 말해왔다. 사소한 일들에 쏟는 정신적 에너지를 줄여서 다른 일에 더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고급 명품이긴 하나 같은 색과 스타일의 옷장을 공개하기도 했다. 물론 최근 뉴욕타임스의 기사를 보면 저커버그도 이미지 변신을 꾀하고 있다고 했다. 어떤 목적이든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젠슨 황.

요즘은 바야흐로 엔비디아의 시대, 젠슨 황의 시대다. 엔비디아의 GTC 2024 무대에 오른 젠슨황은 검은색 가죽 점퍼를 입고 나왔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젠슨 황이 2017년 이후 최소 6벌의 가죽 점퍼를 입었다고도 하고, 사실은 더 많은 가죽 점퍼를 갖고 있지만 언급을 피해 실제보다 적을 수도 있다고 했다.

젠슨 황의 대변인은 뉴욕타임스에 "매일 내려야 할 결정 중 하나를 줄이기 위해 같은 스타일의 검은색 바지와 셔츠를 입는다"고 했다. (조선비즈, 2024. 3.24.)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의 스타일을 고집함으로써 옷장 앞에서 고민해야 하는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는거다. 물론 하나의 스타일을 고집한다고 해서 한벌의 옷만 입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고가의 명품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최소한의 스타일 미니멀리스트다. 하지만 그런 스타일이 타인에게 주는 메시지는 크다. 가격 여부를 떠나 실용적인 미니멀리스트로 비치기도 한다. 단순한 반복이 주는 메시지는 강렬하다.



내 전두엽에 휴식을 달라!

판단 결정을 담당하는 부위는 전두엽이다. 즉흥적인 판단보다는 장기 계획을 담당하는 뇌의 브레인인 셈이다. 그래서 전두엽은 힘들다. 하루 종일 신경써야할 일이 산적해 있는데 아침부터 이것저것 판단해야 할 것들이 많다면 출근 전부터 피곤하다. 그래서 전두엽을 비워두기 위해 루틴에 따르는 생활을 한다. 매일 아침 순서에 따른 행동은 전혀 힘들지 않다. 화장실 가고, 물 마시고, 양치하고, 머리 감고, 씻는 행위는 그렇게 힘들지 않다. 옷을 입기 전까지는…


옷을 입고 집을 나서면 다시 루틴이다. 회사를 가는 길도, 내가 주로 이용하는 도로도, 타는 버스도, 지하철 출구도, 회사를 들어가는 입구도 대부분 비슷하다. 출퇴근 길에 다른 생각을 할 여유도 생긴다. 무선 이어폰으로 e북을 듣거나, 휴대폰으로 유튜브를 보거나, 일을 처리할 수도 있다.

잡스와 저커버그, 젠슨 황을 보며 주역의 이 괘가 딱 들어맞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출근하기 전엔 뢰지예(雷地豫)

아침에 출근하기 전의 괘. 땅에 천둥번개가 치니 들썩거리게 된다. 하루에는 천둥번개 만큼이나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그런 아침에 출근할 때는 기쁜 일이 오는 것을 대비하며 기다려야지 경거망동하는 것도 경계한다. 새로운 세상과 패러다임이 도래했을 대 순종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리 예측하고 대비하되 드러남을 경계한다.

오늘 하루가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모른다. 운전을 하는데 신호가 잘 바뀌거나, 평소 만원 버스인데 자리를 앉을 수 있거나, 버스 기다리는 시간이 줄었다면 기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하루종일 좋은 일만 벌어지라는 법은 없다. 반대로 아침 회의에 들어가기전 부장이 한 소리해서 언짢았는데, 그게 종일이어지라는 법도 없다.다이나믹한 K-직장생활은 기승전결이니까...


얼마 전 책에서 이런 일화를 봤다.

프로레슬러 이노키는 미국에 갔을 때 항공사 실수로 가방을 잃어버렸다.

어쩔 수 없이 한 달 동안 같은 재킷을 입고 돌아다녔다. 그런데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렇게 얘기했다.

"그 재킷, 잘 어울리네요"

이노키는 그 이후 같은 옷을 계속 입어도 괜찮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다나카 히로노부, <내가 읽고 싶은 걸 쓰면 된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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