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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트럭 Feb 04. 2017

어느 음악인의 이야기  

포트럭이 들려주는 소소한 이야기 (6)

여기 한 사람이 있었다. 40대 중반까지 직장을 15군데나 전전했지만 결국 자리를 잡지 못했다. 타고난 한량 기질에 인내심도 부족했다. 한때 풍물패를 따라다니며 우리 가락에 취해 태평소를 불었지만 밥 먹고 살만한 직업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처 없이 걷다 어느 골목에서 짙은 향기에 발걸음을 멈췄다. 장미인가 하고 돌아 앉아 보니, 찔레꽃이었다. 구석에 애처롭게 피어 있는 그 모습이 마치 자신의 모습 같아 펑펑 울었단다. 


나이 46. 인생의 절반 이상 지나온 나이에 친구의 권유로 음반을 냈다. 10대 아이돌이 판치는 세상에 46살 신인가수라니...  


그런데 이 사람... 도대체 장르를 모르겠다. 국악 같은데 뽕짝 같기도 하고, 재즈 같기도 하고, 타령 같기도 하고, 성악인가? 아무튼 전에 없던 음악이다. 


창법도 참 독특하다. 정상적인 노래 공부를 안 한 탓인지, 기교 없이 그냥 내지르는 것 같은데, 듣고 있으면 마음이 털썩 주저앉는다. 때로는 반주도 없이 마치 시를 읊는 듯하다가 목 놓아 우는 것 같다. 


이 사람...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훔쳤다. 가장 한국적인 목소리를 가진 소리꾼. 바로 장사익이다. 


특히 자신의 심정을 담은 노래 "찔레꽃"은 구구절절한 장사익의 애절함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현대판 아리랑과 같다. 



장사익의 노래를 처음 들은 것은 대학교에서 합격생들을 대상으로 개최한 오리엔테이션 행사에서였다. 하얀 한복을 곱게 입은 아저씨가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를 시작하는데, 첫마디에 심장이 멎는 듯했다. 이전에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발성이었다. 2곡이었던가, 짧은 공연이었지만 너무나 강렬해 잊을 수가 없었다. 


장사익 노래의 힘은 바로 가사다. 멜로디를 뚫고 나오는 가사가 사람들 마음에 탁탁 꽂힌다. 그래서 장사익은 탁월한 스토리텔러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도 그래서가 아닐까...?  


마흔여섯. 세상의 고진감래를 알기에 10대 아이돌이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나온다. 그리고 혼자 터득한 창법이기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다. 그래서 장사익은 이 치열한 음악계에서 홀연히 빛이 난다. 


2017년 1월의 마지막 날. 어느 신년 음악회에 장사익이 나온다길래 반가운 마음으로 공연장을 찾았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한복은 언제나처럼 정갈했다. 첫 곡은 오케스트라 반주였다. 왠지 오케스트라는 그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다음 곡에서 장사익은 자신의 목소리를 솔로 악기처럼 연주했다. 역시 장사익의 노래에는 반주가 거추장스럽다. 


사실 장사익은 성대결절로 한동안 노래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힘겨워 보이는 창법에 목이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다시 일어서 이렇게 멋진 노래를 들여주었다. 


1949년생. 한국 나이로 올해 69살이다. 하지만 나이가 무어가 중요한가... 이미 46살에 데뷔한 그인데...

70살에도 80살에도 그는 그만의 창법으로 우리들에게 "찔레꽃"을 들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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