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결혼을 하고자 결심한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아이를 낳기 원해서다. 전직 간호사였던 나는 노산의 위험성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았다. 따라서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아이를 낳기를 원했고, 지금의 남편과 연애하던 첫 해부터 결혼하자고 했다. 하지만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결국 남편과 6년을 더 연애한 후에 결혼을 했다. 내 계획과 다르게 결혼이 6년이나 늦어졌지만, 결혼 첫해인 30살에 바로 임신을 했으니 만족한다.
신혼 초 아기를 갖자고 남편과 상의하고 큰 어려움 없이 계획임신에 성공해서 임신여부를 극 초반기인 4주 정도에 알았다. 빨리 알았기 때문에 임신 중 혹여나 아이에게 해가 되는 음식이나 약 등을 피할 수 있었고, 출산까지 많은 시간이 남아있어 남은 임신 기간 동안 출산방법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실 임신 전부터 내 출산은 미리 생각하고 있었다. 그건 내가 간호사이기 때문이며, 색다른 경험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학생시절 모성간호학을 미국 유학을 다녀오신 교수님께 배웠다. 교수님은 유학 중에 아이를 출산했다. 게다가 교수님이 출산할 당시 한국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회음부 절개를 하지 않고 말이다. 교과서에도 나오는 출산 중 산모의 회음부 절개를 하는 이유는 좁은 산도를 커다란 아기의 머리가 지나가면서 산도의 마지막인 회음부가 상당히 심하게 찢어지는 증상인 회음부 열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회음부가 찢어지는 증상은 회음부뿐만 아니라 항문에서 직장까지도 찢어질 수 있다. 이건 회음부 열상의 가장 심한 상태이며 회음부 4도 열상이라고 불린다. 열상이 깊어도 봉합과 처치를 하면 회복할 수는 있지만, 나중에 질과 직장사이에 구멍이 생겨 외과 치료를 하거니 그 외 다른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니 항문과 직장이 찢어지는 회음부 4도 열상을 막기 위해, 미리 가위로 깔끔하게 자르고 실로 봉합해야 한다고 배우는 거다. 하지만 무려 모성간호학을 가르치던 교수님은 그 회음부 절개 없이 출산을 했다고 하니 커다란 문화적 충격을 느꼈다.
교수님이 회음부 절개를 하지 않고 출산을 한 비결은 바로 따뜻한 물이었다. 출산 과정 동안 따뜻한 물을 회음부에 흘려주어 회음부를 충분히 이완시켰다고 하셨다. 근육이 이완되니 회음부가 잘 늘어나서 아기가 산도를 통과할 때 찢어지는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 이 이야기를 듣고 놀라고 있는 우리에게 교수님은 하나의 동영상도 보여주셨다. 제목은 <울지 않는 아기>였다. 동영상은 정말로 놀라웠다. 아이가 태어나면 무조건 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폐에 고여있던 양수를 빼내고 첫 숨을 내쉬는 과정이 울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영상속 아이는 출산과정에서 제목처럼 정말로 울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아이는 태어날 때 죽음을 경험한다고 한다. 머리의 모양까지 찌그러지면서 좁고 긴 산도를 통과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엄마의 양수 속에서 한가로이 떠다녔을 뿐 언제 끝날지 모를 고통의 길을 가본 적이 없다. 결론적으로 그 고통은 곧 끝날 거고, 그 이후 편안해진다고 우리는 알지만, 아이는 알 수가 없다. 그렇게 좁고 좁은 산도를 지나가는 고통의 순간을 아이가 이겨내면 바로 환한 빛이 아이를 괴롭힌다. 자궁 안은 약 30룩스 정도의 빛만 들어온. 그런데 갑자기 엄청나게 환한 빛을 마주하는 거다. 우리도 암실에 있다가 밖으로 나오면 적응하기 힘든 것처럼 아이는 또 다른 고통에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아이가 안정을 취할 순간은 주어지지 않는다. 아이가 태어나면 의료진들은 분주하게 아이를 엄마에게서 떼어내고 탯줄을 자른 후 이곳저곳으로 옮기며 건강한지 확인하기 위해 바로 검사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동영상 속 아이는 달랐다. 어두운 곳에서 차분하게 태어났다. 그리고 안정적으로 엄마의 배 위에 놓였다. 그러니 울지 않았다. 동영상 속 아이가 태어난 곳도 생소했다. 바로 집이었다. 조산사와 함께 가정 출산을 한 거다. 조산원은 예전에 병원이 별로 없어 어쩔 수 없이 이용하는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당연히 병원의 시설이 더 좋고 의사가 있으니 조산사보다 훨씬 응급상황에 더 대처를 잘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지금은 산부인과가 많으니 굳이 조산원을 이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근데 오히려 병원이 아닌 조산원이라서 산모를 환자가 아닌 그냥 산모로만 인정해 줬다.
이런 출산이 바로 르봐이예 분만이다. 프랑스의 산부인과 의사 르봐이예 박사는 9000명의 신생아의 출산을 도우면서 아이가 세상에 나오는 순간 공포에 질려 울부짖는 모습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여 새로운 분만법을 연구하고 그 결과를 1950년대 말 <폭력 없는 탄생>이라는 책으로 발표하였다. 그로 인해 산모 고통 감소에만 집중되었던 분만에서 신생아의 감각을 존중하는 르봐이예 분만이 시작되었다. 르봐이예 박사는 아기와 엄마는 오랫동안 접촉할 시간이 필요하고 약물을 사용하지 않으며 의학적 개입은 불필요하다고 말하며, 탄생의 첫 순간을 아이의 입장으로 생각하여 아기에게 스트레스 없는 분만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어두운 자궁 안에서 나온 신생아를 위해 분만실의 밝은 조명대신 어두운 조명을 선택한다. 양수 속에서 소리를 거의 듣지 못했기 때문에 놀라지 않도록 조용한 환경을 제공한다. 자궁 속에서 탯줄을 통해 태반에서 산소를 공급받아 호흡을 했기에 탯줄의 맥박인 태맥이 있을 때까지는 미숙한 폐호흡이 아니라 탯줄을 통해 호흡을 하도록 탯줄을 자르지 않고 도와준다. 자궁 밖으로 나와 불안하고 작은 스침에도 몸이 떨리는 태아에게 어떤 피부 자극도 주지 않고 신생아를 엄마의 배 위에 아이를 올려놓아 엄마의 심장박동 소리와 엄마의 체온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엄마 뱃속의 양수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운 물속에서 놀도록 했다.
동영상을 보고 난 후 출산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천편일률적으로 공장에서 찍어내듯 아이가 태어나지는 것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산모 주도적으로 아이의 입장과 인권을 고려해서 출산을 하자고 말이다. 게다가 우리는 전통적으로 그동안 병원이 아닌 집에서 출산하는 것이 당연했다. 밭에서 일하다가 출산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처럼 병원에서 환자복을 입고 산부인과용 의자에 앉아 조명을 비추며 출산을 하는 것은 100년도 안되었다. 사실 가정출산이 위험하고 위생적이지 못해 많은 산모와 신생아 사망을 초래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분만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위험하지 않게 출산한 경우가 더 많다. 당시 임신을 하지도 않았고, 결혼조차 하지 않았던 대학교시절부터 나는 나의 출산방법을 르봐이예 분만방법으로 통해 조산원에서 출산하겠다고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