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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초란 Dec 29. 2021

1. 나는 여전히 카운터가 싫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하루 매출 천만 원. 하루 손님 3000명. 카운터에 포스 기계가 5대. 

매일 아침 납품 도시락 이 담긴 천장을 뚫을 것 같은 높이의 상자 타워가 8 타워. 

저녁엔 상온 상품이 담긴 상자가 100 상자. 

내가 챙겨야 할 우리 가게 아르바이트생들이 30명. 

나는 입사 2년 차, 가게 경험 4개월 만에 일본에 있는 모 편의점의 직영점 점장이 되었다. 


왜 편의점 회사에 취직했나? 

일본으로 유학 가서 갑작스레 편의점 회사에 취직됐다고 하는 내 말에 가족들도 의아해했을 것이다. 

대학 전공도 전혀 다르고 평소 이미지가 장사하고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줄곧 나는 사람 상대하는 서비스직, 돈 만지는 일, 체력이 필요한 일을 업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단순히 하기 싫다기보다는 잘하지 못하는 분야이여서이다. 


그런데도 왜 편의점이었나?

학생 신분의 나는 호기롭게도 직장과 일에 "재미"를 추구했다. 

나도 재미있고, 접하는 사람들도 재미있고, 그것으로 돈을 벌면 그 또한 재미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의 내 기준에 "재미" 있어 보이는 업종에 이력서를 냈었다.


일본에서는 사회 인프라로서 완벽하게 사람들의 일상에 편의점이 자리 잡고 있다. 

단순한 소매업이 아니다. 

유행을 선동하고 젊은 세대부터 어르신들까지 각기 다른 이유로 편의점을 찾는다. 

본사 사원이 되면 이 편의점이라는 네모난 공간의 작은 일부라도 좋으니 전국의 점포에 내 의지가 깃든

 “재미”를 심을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기회는 입사 2년째에 찾아온다.

가게 하나와 그 가게에 딸린 작은 분점 2점포의 점장으로 발령이 났다. 

입사하기 전엔 가게의 일부에 재미를 불어넣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었지만, 점장이 된 나는 가게에 내 멋대로 왕국을 세워버렸다.

 

물론 왕국도 항상 재미만 있을 순 없다.

매일 같은 일의 연속인 주제에 매일 같이 새로운 사건 사고가 일어났다. 

게다가 4개월 만에 점장이 되었으니 기본적인 가게 일에 대한 공부도 턱 없이 부족한 상태였다. 

무엇보다 고질적인 문제는 일 할 사람이 턱없이 부족했다. 

인력 부족 문제는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고통이었다. 하지만 편의점 회사에 취직한 것에 후회는 없다. 

  

즐거움과 성장이 있었고 그것들이 고통 속에서도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혼자라고 생각했지만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기에 즐거움도 성장도 있었다. 

감사해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다. 


지금은 점장 자리에서 졸업해 본사에 들어와 매뉴얼 만드는 업무를 한지 벌써 5년이 흘렀다. 

생각해보면 점장은 1년 2개월의 짧은 경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에서 베스트 5안에 드는 강렬한 기억이다.

그 강렬한 기억 덕분에 나는 사람을 상대하고, 돈을 만지고, 체력을 쓰는, 내가 못 했던 3종 세트를 한꺼번에 시험당하는 편의점 카운터도 이젠 프로다. 


삶에 있어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씩 더해지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카운터가 싫다. 

잘할 수 있게 극복한 것과 좋아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인 것 같다. 

이것 또한 편의점 회사에 취직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것이니 역시 후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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