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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도 Aug 10. 2020

마음의 방 리모델링 중입니다

내 마음의 방 구조 개편

브런치에 필명으로 글을 쓰면서 얻은 것이 있다.


내 머릿속에 들어있어서 볼 수 없었던 내 생각을 꺼내 글로 쓰면서

그제야 내 생각의 방향과 흐름을 볼 수 있었다.


발행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진다.

발행 전까지 노트북 화면에 띄워진 내 글과 나는 이어져 있지만

발행하고 나면 내 글이 나를 떠나 나를 쳐다본다.

글을 발행하고 나면 내 생각을 비로소 객관적으로 직면하게 된다.


마치 노트북 서랍 속 내 글은 임신한 배속에 내 아기 같고

발행한 글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는 말하는 사춘기 아들 같다.


머릿속에 생각을 글로 쓰고 발행했을 때 변화가 일어난다.

분명 머릿속에 있었을 때는 내 나름의 논리를 부여받아 내 생각이 정당했는데

글로 발행한 순간 그 허점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어떨 때는 '이건 아니다'싶어 내리고 싶은 글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텼다.

왜냐하면 지금 버티지 않으면 언젠가는 그 비슷한 글을 올릴 걸 알기 때문이다.(한 고집하는 성격)


내 글의 목록을 죽 살펴본다.

가까워지고 싶지 않은 사람, 싸움의 기술, 긍정의 힘 그전에... 슬기로운 며느리 생활(이라는 제목 하에 방어와 공격), 엄마의 불쾌한 한마디. 심지어 엄마의 불쾌한 한마디 2 (이쯤에서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라이킷과 구독까지 해주신 분께는 더더욱 감사드립니다^^)

부정적인 기운이 물씬 피어오른다.

그 사실을 깨닫고 중간 무렵 핸들을 틀어서 긍정으로 전환하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쉽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고 내가 느끼는 것과 다르게 쓸 수는 없었다. 그냥 그대로 써 내려갔다.

지나고 보니 그 과정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자연의 순환, 몸의 순환처럼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내 생각을 쓰고 발행하고 바라본 결과 이제 비로소 마음의 전환이 일어났다.

주변의 충고나 조언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 내가 변화하려고 한다.

이건 글쓰기 아니 정확하게는 쓴 글을 발행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내 생각을 관찰하기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이를 사랑하겠다. 긍정의 마음으로 모두를 포용하겠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죄송)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과 상황에 대해선 분노할 것이며 필요하다면 주장할 것이다.  (바로 다음 글에서 분노하며 비판하는 글을 쓸 수도 있다)


그저, 전에는 내 안에 필터를 끼고 모든 사람과 상황을 필터로 걸렀다면

이제는 그 필터링을 애써 하지 않으려고 한다.


필터링은 힘겨운 작업이었다.




한동안 내 마음에 거름망이 있었다.

나를 통과한 모든 것들이 자꾸 내 거름망에 걸렸다.

처음엔 거름망을 통과한 맑은 물이 좋았다.


거르고 거르고 걸렀다.


그러다 '맑은'에 점점 욕심을 덧입고 질주했다.


거름망은 더 촘촘해졌고

물은 거름망을 통과하기 버거워졌다.


애써 거름망을 통과한 물은 미네랄도 없는 죽은 물일 뿐이었다.


물뿐인가?

거름망에 잔뜩 낀 찌꺼기는 결국 내가 처리해야 할 짐이었다.

그 찌꺼기를 지고 살아가야 할 줄은 몰랐다.


급기야 거름망에 찌꺼기가 쌓여 더 이상 물이 통과하지 않는다.


나는 거름망에 갇혔다.


이제 거름망을 거둬낸다.


산다는 것은 수돗물을 정수기 필터를 거쳐 식수로 만드는 게 아니었나 보다.


거름망으로 거르는 사고는 내시선을 거름망에 걸린 찌꺼기에 가둬놓았다.

왜 보기 싫은 것들을 눈앞에 배치시켰던 걸까?


거름망을 치우고 집안 리모델링을 시작한다.


다용도실을 확장하고 그 안에 큰 수납장도 설치한다.

집안에 둘 서랍장을 켜켜이 설계한다. 

베란다장 안에도 서랍장을 두고 다용도실장 안에도 비치한다.


보기 싫은 물건은 한동안 째려보고 (마음껏 미워하는 과정도 꼭 필요하다고 본다. 그 과정이 없으면 만날 서랍장을 다시 뒤질 것이다)

베란다 서랍장 깊숙이 넣어둔다.


홈쇼핑에서 이불 압축기도 사고

다이소에서 플라스틱 박스도 산다.


당장 눈에 거슬리는 덩치만 큰 이불은

압축기로 숨을 죽인다. 

부피를 뽐내던 이불을 압축시켜 좋으니 보잘것없다.

옷장 속에 포개진 모습이 초라한 듯 가지런하다.


지저분한 잡동사니는 박스에 넣어 다용도실 서랍장에 가둬둔다.

바닥에 굴러다닐 때 장난스럽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생기를 잃고 처량할 뿐이다.


이제 내가 다가가 문을 열기 전에는 눈앞에 거슬리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스파티필룸과 아가베 아테누아타를 내 시야에 둔다.

그들은 대리석으로 만든 화분 속에 담겨 거실 소파 옆에 놓는다.

아침마다 마시는 다즐링 홍차와 찻잔은 식탁 위에 자리 잡는다.


내 마음의 리모델링.

사랑하는 사람과 물건을 내 마음의 앞열에 배치한다.

충분히 미워하고 원망했던 사람과 물건은 베란다 장과 다용도실 서랍에 켜켜이 쌓아 넣는다.

문을 닫는다.

이제 말끔하다.


그래 이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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