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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도 Jun 23. 2020

쉰 즈음에

이십 대에 서투르게 주차하고 있으면 지나가던 사람이

"제가 해드릴까요?" 하고 묻곤 했다.

그 당시에는 이유 없는 친절함에 고마운 줄도 몰랐다.


쉰 즈음 어느 날,  주차하면서 뜸을 들이니

지나가던 차의 운전자가  찌푸린 미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도 모자라

클랙슨을 울려대며 짜증을 분출한다. 심지어는

"아줌마. 빨리 차 빼요!"하고 고함을 지르기도 한다.

 그동안 빚진 친절을 이제는 갚아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다행스럽게도 이제 내겐 그들의 불친절에 휘둘리지 않을 강한 멘털이 있다.

상대방의 짜증을 노련하게 받아넘기며

'죄송합니다' (말로만) 외치곤 당황하지 않고 내 페이스로 주차를 마치곤 한다.

또 하나, 30년 가까이 된 운전경력으로 웬만큼 고난도 주차 코스가 아니면 주차쯤은 끄떡없이 해낼 수 있게 숙련돼 있다.


수십 년 나이를 먹는 동안 상대방의 반응 하나하나에 미세하게 흔들리던 멘털은 웬만해선 경로를 이탈하지 않는 강한 정신력으로 거듭났고 그 덕분에  늘어난 여유와 담대함이 내 생활에 안정을 주고 있다. 대한민국 아줌마 정신은 그냥 생긴 게 아니다.


그뿐만 아니다. 어쩌다 일어나는 불쾌한 일을 자체 정화기로 씻어낼 줄 아는 노련함도 갖추게 되었다. 특히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이 찌르듯 던지는 말 한마디는 결코 나의 마음의 평화를 무너뜨릴 수 없다. '그러든지 말든지'를 모토로 삼아 내 갈길 가는 꿋꿋함은 독립운동가 못지않게 지조 있다.


더욱 다행스러운 점은 사람들의 고민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경험의 폭이 넓어져서 어떤 이의 고민에도 감정이입이 된다. '그럴 수도 있겠다'란 생각은 그들의 자리로 나를 옮겨 놓는다.

섣부르게 조언을 내뱉지 않고 그냥 끄덕일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그의 고민이 내 귀에 닿고 내 눈의 공감에 힘입어 다시 그의 마음에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기다릴 수 있다.


너도 나도 삶의 힘겨움을 알기에 우린 누구나 한때 '그럴 수도 있는 일'을 행하고 '그래도 괜찮아'란 말로 위로받으며 살아간다.   

쉽게 타인을 판단하지 않고 애써 추측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담백함을 사랑한다


물론 청년에서 중년을 훌쩍 넘은 나이가 된다는 것은 이렇게 좋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사실은 좋은 점 찾느라 한참 걸렸다;;)  아침이면 세수하고 로션만 발라도 빛나던 얼굴은 아침마다 부지런히 세수하고 바르고 문지르고 다시 바르고 두드리고 나가도,

" 아휴.  왜 그렇게 피곤해 보여? 잠 못 잤어?"라고 애처롭게 묻는 인사를 수시로 듣는 얼굴로 변해갔고,

샴푸로 머리만 감아도 윤기 나던 머리카락은 두 달마다 미용실 가서 염색하고 샤워 후 트리트먼트 듬뿍하고 스팀타월로 처리해줘야 그나마 달빛보다 희미한 윤기나마 건질 수 있다.


부지런해져야만 했다. 예뻐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추해지지 않기 위해서. 여자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깔끔하고 정돈된  모습을 유지하는 것은 나에 대한 예의이자 타인에 대한 배려인 것 같다.


이상적으로는 내 정수리에 삐져나오는 흰머리와 눈가에 자리 잡으려는 미소와 주름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현실적으로 흰머리와 주름을 사랑하긴 어렵다. 분명히 인생의 노고의 결실인데 받아들이기조차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대다수의 카톡 프로필은 4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자화상에서 '자연'으로 넘어간다.

특히 '꽃'을 찍어 카톡 대문 창에 올리는 경우가 흔하다.

'보이는 나'에서 '내가 보는 것'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다.


젊고 예쁜 여성을 대하면 흐뭇한 미소로 바라볼 수 있는 관대함도 쉽게 얻어지진 않았다. 사십 대 초, 중반만 해도 상대적 박탈감으로 우울해 지거나 나 자신에 대한 연민에 빠지는 일에 휩싸였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이십 대의 싱그러움이 마냥 부러웠다. 

그러다 문득 예전에 읽었던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에서 내 안에 그 시절의 모습도 '포함'돼 있다는 문장이 떠올랐다. '그래 이미 지나온 길에 대한 추억'으로 받아들이자고 다짐했다.


이제는 지나가는 20대 풋풋한 청춘을 보고 내 딸이자 내 며느리같이 여기고 바라보며 흐뭇해 할 수 있다. 싱그러운 아름다움을 유지한 그들을  내 눈에 담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다.  때로는 산기슭에 피어난 들꽃 같고, 때로는 꽃집에 세련되게 진열된 꽃다발 같은 그들을 보며 미소 짓는다.


쉰 살이 돼서도 연극의 무대 중앙을 차지하려고 고집부리면 곤란하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주연에서 조연으로, 조연에서 관객(감독이 아닌 관객이어야 한다)으로 내려오는 연습이 필요했다. 주연을 응원하고 뒷받침해주는 조연의 마음으로 40대를 보내고 나서 서서히 무대에서 내려와 조연과 주연의 조화를 바라보는 관객의 자리에 서 보는 연습을 해봤다.


 '보이는 나'에서 '보는 나'로 자리바꿈 해 봤더니 삶의 의미가 채워졌다.

세상의 눈에 '나를 맞추던 시기'를 지나 '진정한 나'로 거듭나는 시간을 겪고 나서

이제는 '세상을 바라보는 나'로 살아가는 것. 그게 나이 듦인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청춘의 나'에서 '아름다워야 할 세상'으로 관심을 옮겨가는 것.


(물론 여전히 나만의 작고 소중한 무대도 따로 준비해야 한다. 나만의 주제를 실현할 무대.

그러나 그 무대에선 조연도 관객도 중요하지 않다. 나의 작은 소우주가 존재할 뿐이다)


내 정수리에서 삐져나오는 흰머리를 측은해 하기보다 부지런히 색을 입히고 시선을 주위로 돌린다. 아침부터 손세차장에서 마지막 티끌까지 지우려고 땀 흘리는 손세차 할아버지를 보고 노동의 신성함을 느끼고 스물대여섯 살 남짓된 백화점 매장 언니의 상큼한 살가움에 타인을 경계하지 않는 순수함을 배운다..


무대에 있을 때는 관객만 의식하던 시야가 무대에서 내려오니 무대 위 주연과 조연, 무대 아래  관객, 그리고 조명, 환기, 극장의 안전장치까지 눈에 들어온다. 시야가 넓어진다는 것은 할 일이 많아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51.6  (51살 하고 6월....)

지금 내 시계가 가리키는 숫자다.

7월이 되면 51.7이 되고 8월이 되면 51.8이 되겠지.

10월 11월 12월은 어떻게 계산하냐고?

음.....

51.93, 51.95,51.97???

정확하지 않으면 어떤가. 내 마음의 시계인데.


시계처럼, 내 삶은 여전히 나아간다.


앞으로만 나아가지 않고  넓게 퍼져나간다.




사진 2019년 7월 스위스 루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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