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아빠가 돌아가셨다.
아빠는 돌아가시기 전, 13년간 암투병생활을 하셨다.
13년 전, 아빠가 암에 걸리셨단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뛰어가던 날과,
그 후로부터 13년, 아빠가 돌아가셨단 연락을 받고 달려가던 날을
회상해 보면
이상하리만치 비슷하다.
분명 달랐어야 했다.
13년 동안이나 마음의 준비를 했어야 하니까.
그럼에도 난 장례식장에 상복을 입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난 한 번도 이 상황을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적이 없구나.'
암에 걸리신 아빠를 10년 넘게 지켜보는 동안
장례식장에서 아빠의 사와 나의 생이 동시에 존재하는 그 순간을,
아빠의 꺼져버린 육체, 아직 어딘가를 맴돌고 있을 영혼을 뒤로하고,
아빠가 가시는 길을 찾아온 조문객을 맞이하는 순간을 맞이할 거라고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다.
애써 패해왔던 건지,
일부러 접어두었던 건지 모르겠다.
올 4월 말, 코로나로 꽃시장에 가기도 꺼려지던 시기.
우연히 인터넷에서 원예 사업하시는 분들이 힘들다는 글을 봤다.
어느 인터넷 카페에서는 힘든 원예농가 돕기 운동이 불고 있었다.
집콕 생활로 꽃시장에 가본 지 오래됐고 좋은 취지인 것 같아서
인터넷에 뜬 농장으로 연락해 수국을 주문했다.
며칠 후 택배로 도착한 수국은
농장 주인의 애정 어린 보살핌을 받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싸고 싸고 또 싸고.
마치 겨울에 태어난 갓난아기의 첫 예방접종을 가는 엄마가
아기를 안 싸개, 겉싸개로 모자라 담요로 징징 감은 거처럼
수국은 박스 안에 그렇게 동여매져 있었다.
주인이 소중하게 보낸 아이를 맞이한
내 마음은 경건해졌다,
거실 한쪽에 놓고 물을 흠뻑 주었다.
그렇게 너무나 곱게 핀 수국을 보며 행복했다.
어느 날 저녁 즈음, 문득 돌아본 수국 꽃잎이 거뭇거뭇해져 있는 것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이상하다. 충분히 물을 주었는데......
수국은 여느 꽃보다 물을 많이 필요로 한다.
그때까지 식물 키우기의 실패 원인을 분석해보고
'내가 너무 물을 자주, 많이 주는 게 문제였다'라고 잠정 결론 내렸던 참이었다.
그 섣부른 판단은. 물을 보통 이상으로 많이 필요로 하는 수국에 어설프게 적용됐고
지난날 물을 많이 줘서 떠나보낸 아이들과 다른 이유로 수국을 떠나보냈다.
수국의 학명 Hydrangea는 그리스어로 '물'이라는 뜻이며, macrophylla는 '아주 작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수국은 물을 엄청 좋아하는 식물이다. 특히 꽃이 피어 있는 동안 물이 부족하면 꽃이 금방 지거나 말라 버릴 수 있으니 물 주기에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출처: 다음 백과사전
시들어 떠난 수국을 치우고 나서 돌아가신 아빠가 생각났다
7,8년 전 사춘기 아들이 필요 없다는 관심을 쏟아부어 갈등을 일으켰던 내가,
아빠께는 얼마나 관심을 가졌던가.
사춘기 아들에게 주었던 관심을 투병 중이셨던 아빠한테 더 드렸어야 했는데...
내 애정은 간섭으로, 내 충고는 참견으로 밀어내는 사춘기 아들에게는 쓸데없이 다가가고
정작 내 관심을 그리워하던 아빠한테는 점점 무심해졌다.
마치 물이 필요 없다는 다육이에게는 물을 자주 주고
물이 많이 필요한 수국은 물을 덜 준 것처럼,
사랑의 엇박자가 일어났다.
사실 난 엄마보다 아빠를 더 잘 따르는 딸이었다.
엄마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늘 초점이 흐렸다.
엄마의 눈에 비친 나는 항상 두 개의 형상이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나'와 '엄마가 원하는 미래의 나'.
두 겹으로 펼쳐진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동자에는 늘 꺼내고 싶은 말이 담겨있었다.
반면에 아빠의 눈빛에는 늘 '그대로의 나'가 제대로 초점 맞춰져 있었다.
그 눈빛을 보고 자라서 난 늘 편안했다.
아빠가 유일하게 싫어하셨던 것은 샀던 물건을 바꾸는 일이었다.
"한번 산 물건은 바꾸지 말고 그냥 써. 물건을 샀을 때, 네 선택을 책임져야 하는 거야."
구입한 물건을 교환하는 것을 엄청 싫어하셨다.
그 덕에 엄마와 나, 언니는 산 옷을 교환할 때는 조심조심했어야 했다.
물건 교환하러 나갈 때, 쇼핑백을 감추느라 애썼던 기억엔 늘 아빠의 모습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빠는 그렇게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잘 분별하셨다.
이미 내놓은 카드는 잘 돌아보지 않으셨다.
잘 뒤집지도 않으셨다. 기웃거리지조차 않으셨다.
앞으로의 모습에 현재를 꿰어 맞추지도 않으셨다.
그래서일까?
한 직장에서 30년 넘게 일하시고 퇴임하신 아빠에게도
고단함이 있을 거란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순간에 충실하던 아빠도 암에 걸리시고는 무너지셨다.
평생 출근 전 운동하고 사우나하고 나가실 정도로 자기 관리에 엄격하신 분이
암 진단을 받고 삶에 배신감을 느끼신 모양이다.
한동안 우울해하셨다.
수국은 산성 토양에서는 파란색, 염기성 토양에서는 분홍색 꽃이 핀다고 한다. 또한 토양의 비료성분에 따라 꽃 색깔이 달라지는데 질소성분이 적으면 붉은색, 질소성분이 많고 칼륨(칼리) 성분이 적으면 꽃 색깔이 파란색으로 변한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수국은 변덕'과 '진심'이라는 양면의 꽃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출처: 다음 백과사전
토양의 산, 염기성에 따라 꽃의 색이 변하는 수국처럼,
아빠는 가족들의 관심과 애정에 따라 쉽게 기분이 바뀌셨다.
평생 안 그러시던 분이 관심을 필요로 하고 서운해하셨다.
때로는 짜증도 내셨다.
평생을 꼿꼿하시던 분이
아이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더 힘들었던 것은 그런 아빠를 지켜보는 내가 지쳐갔다는 것이다.
아빠의 서운함을 애써 읽지 않은 적도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편찮으신 뒤 일주일마다 찾아가던 친정을 거르기도 했다.
아이 대입에서는 플랜 b, c를 세워가며 철두철미하던 내가,
갑자기 아빠의 노환에는 세상 순응적으로 변해갔다.
아빠의 아픔에 차츰 둔해지는 내가 실망스러울 때도 있었다.
아빠가 떠나시고
어느 날은 대낮에 소파에 앉아
'오늘따라 햇살이 너무 시리네.' 하며 햇살 탓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며칠 전,
카디건을 하나 사 가지고 집에 들어왔다.
매장에서 본 색상과
집에서 거울에 비춰본 색상이 묘하게 달랐다.
'괜히 샀나?'
'내일 가서 바꿀까?'
하려다
아빠가 생각났다.
"한번 산 건 그냥 쓰는 거야" 분명 아빠였다.
옷을 옷걸이에 걸어 옷장에 넣어둔다.
옷을 살 때의 내 결정을 책임지라던
아빠의 말을 따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빠는 곁에 없어도
문득문득 나를 찾아오신다.
그리고 내 인생의 나침반이 돼 주신다.
"이럴 때는 뭐가 맞을까? 아빠?"
조용히 손가락으로 짚어주신다.
그 손가락의 끝을 따라 걸어간다.
<사진출처: 픽사 베이>
이 글은 21. 3월에 출간된 책 <바람에 흔들리게 창문을 열어주세요> 에 일부 수정돼 실려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게 창문을 열어주세요> 출간 이야기 (brunch.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