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음식에는 뿌리가 있는가.
우리에겐 모두 뿌리가 있다. 가족이 내 뿌리고 친구가 내 뿌리고 내 자식이나 아내가 내 뿌리다. 그 뿌리에서 공급받는 에너지로 우리는 모두 살아간다. 이 명제에 대해서는 아무도 반박하지 못할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가 단 하나 '무시하고' 살아가는 뿌리가 있다. 어쩌면 무시가 아니라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바로 '음식의 뿌리'다.
우리는 왜 모든 것의 출처와 출신 또는 그것의 처한 환경은 따지면서 음식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음식의 출처'는 왜 궁금하지 않을까. 아마도 끊임없이 우리의 입속에 가공식품을 넣도록 유혹하는 수많은 광고와 마케팅 때문이 아닐까. SNS에 떠다니는 수많은 음식 광고가 쉴 새 없이 우리의 잠재의식에 주입되고 있다. 마치 '너는 지금 000가 먹고 싶다. 먹고 싶다. 먹고 싶다' 하면서. 다만 우리는 느끼지 못하는 것뿐. 이미 익숙해져 버렸다.
그런 광고와 마케팅으로 우리의 위장은 끊임없는 기업이 만들어 놓은 가공식품으로 채워진다. 물론 그 안의 첨가물은 보너스. 나는 이 가공식품이 우리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우리의 식탁과 호주머니, 가방 등을 채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음식의 뿌리'가 실종되었다고 생각한다. 오직 맛과 트렌드만 기억될 뿐이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자연과 점차 멀어지게 됐다. 그것도 아주 아주 자연스럽게.
비트겐슈타인은 '나의 언어의 한계는 나의 세계의 한계를 뜻한다'라고 이야기했다. 난 이 말은 이렇게 이해했다.
내가 먹는 음식의 한계가 나의 세계를 뜻한다.
올해 초 파 한 단의 가격이 폭등했다. 평소 파 한 단의 가격은 3000-3500원선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기후변화로 수확량이 줄어들면서 파 한 단의 가격은 15000원까지 올랐다. 가격이 무려 5배나 오른 것이다. 어쩌면 세상에 가장 '흔한 채소'가 '파'인데, 파값이 이렇게 뛰니 정말 황당했다. 지난해부터 불어 닥친 한파가 그 원인이었다. 이뿐인가, 작년 여름에는 태풍과 함께 비가 무려 49일이 왔다. 1973년 이후의 가장 긴 장마였다고 했다. 이로 인해 농산물의 가격은 다시 폭등했다. 올해도 불안하기만 하다. 이미 일본에서는 65년 만에 때 이른 장마가 시작되었다. 일본에서는 '5월에는 하루 걸러 하루 비가 온다'라고 하며 연신 날씨를 염려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미 긴장상태다. 또 작년과 같은 기상변화가 일어나면 농산물 생산량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내가 기상변화에 관심을 갖는 것은 바로 주로 먹는 것들이 채소와 같은 농산물이기 때문이다. 내가 먹는 음식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환경에 당연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기후변화는 우리가 먹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건강, 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자연스레 환경보호에까지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다. 또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미리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바로 내가 직접 현상을 몸소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공식품을 주로 먹으면 이런 반응이 나타날 수 없다. 왜냐하면 가공식품은 그 출처가 바로 공장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자연과의 단절'이 이루어진다. 우리가 마트에 있는 육류를 하나의 '상품'으로 보는 것은 실제 도축이 일어나는 곳과 나 사이에 '단절'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도축장이 있는 것은 알지만 실제로 본 적은 없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 '옥자'를 찍기 위해 실제 도축장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맡았던 악취가 너무 심해서 한동안 채식주의자처럼 행동했다고 인터뷰했다. 그의 경험이 그의 뇌리에 남아 잠깐이기는 하지만 그의 식생활에 영향을 준 것이다. 지금은 그가 어떤 식생활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곳의 경험을 한 이상 방문하기 그 이전의 식생활과는 다른 방식의 식생활을 하고 있지 않을까.
육류를 예로 들었지만 가공식품도 같은 이치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가공식품에 들어가는 원재료가 아무리 자연에서 길러진 것들이라고 하더라도 그 양이 매우 적기 때문에 사실상 일반 농산물처럼 가격이 폭등하거나 폭락하지 않는다. 첨가물을 사용해 가격이 오를 수 있는 모든 변수를 통제하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얻은 천연 식재료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소비자의 필요를 충족하도록 만들어진 '전략적인 제품'이라는 것도 변함이 없다. 음식이 아닌 단순한 상품이다. 그곳에 자연은 없고 안타깝게도 오직 기업의 이익만 있을 뿐이다.
웰빙의 바람이 아직도 그치지 않고 계속 불고 있다. 계절의 변화와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끊임없이 건강을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의 요구는 그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유기농이나 무농약 농산물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찾고 있고 가격은 일반 제품보다는 조금 비싸지만 기꺼이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위해 구매한다. 얼마 전에 춘장을 구매했는데 그 춘장에는 캐러멜 색소라든지 우리 몸에 좋지 못한 첨가물이 들어 있지 않았다. 바로 소비자의 요구 때문이다. 우리에겐 아직 세상을 변화시킬 힘이 있다는 잠재적 증거이기도 하다.
‘키다리 아저씨’에서 주인공 '주디'는 '공감을 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하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야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다고. 나는 이 상상력이 곧 경험에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연에 대한 공감을 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상상력은 곧 경험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자연에 대한 공감은 곧 우리의 식탁에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