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작가 Oct 30. 2022

CODE_007

‘Be yourself no matter what they say’ 스팅의 English man in New York의 가사 중 항상 마음속으로 따라 부르는 가장 좋아하는 가사다. 이 가사를 듣고 누구든 가슴이 울리지 않을 사람을 없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저 가사대로 우리는 살고 있을까. 


나는 29살에 직장생활을 시작했는데, 그땐 아무런 이유 없이 무조건 취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때가 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늘 아버지는 내게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때가 되면 직장을 다니고, 때가 되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과정이 사람이 누구나 겪는 인생이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이 말씀을 자주 하셨는데 그때마다 나는 그냥 흘려들었다. 왜냐하면, 내 인생이 저렇게 판에 박힌 대로 흘러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29살이 되고 보니 주변의 내 또래의 사람들이 대부분 취업 때문에 고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조급해졌다. 마치 마라톤 대회에서 수 백명의 사람들이 하나의 결승점을 향해 일제히 전력을 다해 뛰어가는데 나만 혼자 출발선에 서서 가만히 서있는 것처럼 보였다. 열심히 뛰어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니 나만 혼자 뒤처진다고 생각했다. 왠지 모를 두려움이 엄습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스스로에 질문조차 던지지 않고 섣부르게 취업의 전선에 뛰어들었다. 일단 취업만 하고 나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다. 하지만 취업을 하고 나서도 어느 직장 하나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4번의 이직을 하고 난 뒤에 나는 29살 그때의 나로 다시 돌아와 있었다. 마지막 학원강사를 할 때는 가르치는 일의 보람을 느끼며 강사가 나의 천직이라 생각하며 일했는데 그마저도 번아웃으로 그만뒀다. 


15년을 돌고 돌아 나는 나 자신은 다시 나에게도 돌아와 있었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분명히 인생의 길 위에 많은 사람들과 함께 열심히 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내 주변에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가정을 돌보는 남편으로서 집에서 혼자 남아 가족의 휴식, 식사, 잠 등의 일상생활을 챙기며 그렇게 지냈다. 당시 우리 집은 맞벌이였는데, 갑자기 아내 혼자서 일을 해야 한다니 너무 미안하고 걱정도 됐다. 마치 힘들다는 핑계로 나만 혼자서 이기적으로 누구나 견디는 일조차 피하는 것 같았다. 나는 종종 자괴감과 무기력함에 시달렸다. 왜 나만 이럴까. 마치 사회 부적응자가 된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나는 혼자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 마침 아내가 채식을 권유했고 함께 채식을 시작했다. 


어쩌면 채식을 하게 된 것은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내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비건이라는 결승점을 향해 뛰고 있었다. 그 가운데 드넓게 펼쳐진 초원을 보았고 저 멀리 지평선에서 붉은 기운을 내뿜으며 떠오르는 태양도 보았다. 그 풍경이 너무 좋아서 열심히 달렸다. 쉼 없이 달렸지만 힘들지 않았다. 내 곁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함께 손을 잡고 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 행복하고 즐거웠다. 삶의 만족을 느끼고 있었다. 아마 이때였던 것 같다. 서서히 삶의 안개가 걷히고 나 자신 스스로를 바라본 때가. 


채식을 하는 사람들은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소수다. 여태껏 채식을 하는 사람들을 온라인 외에서는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소수라고 해서 외롭지 않다. 오히려 내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라서 더욱 뿌듯하다. 거의 15년 동안 여러 일터를 전전하며 살았지만 한 번도 ‘내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삶’을 제대로 나의 결정과 의지대로 살아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동안 나는 ‘빌린 인생’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채식으로 통념과 같은 사회의 기준에서 벗어나 보니 비로소 나 자신이 보였다. 그동안 내게 필요했던 것은 내 인생을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있다는 인생의 의미였던 것이다. 그 삶의 의미를 채식이 채워줬던 것이다. 사실 사람은 누구나 소수다. 절대로 남들과 똑같아질 수 없다. 심지어 남들과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유행을 좇아, 사회의 주류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칠 수록 더욱더 외로워질 것이다. 채식을 하는 이유도 여러가지 듯이 나름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으로 살아간다. 


사회의 소수처럼 살아라. 외로울지라도 의미를 쫓아 살아라. 그리고 그런 의미를 쫓는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운명적으로 만나라. 이것이 내가 채식으로 살아가는 방식이다. 

작가의 이전글 믿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