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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놓고, 이야기하라

STEP.4 현미밥으로 식사하는 법

by 홍작가

Part.1 먹고

조금 먹고 오래 씹어라.

현미를 먹는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소화불량을 호소한다. 나도 그랬다. 가슴이 먹먹하고 심지어 아프기까지 했다. 뭔가 얹힌듯한 느낌이 오래갔다. 다음 식사에 대한 거부감도 생기는 듯했다. 그렇게 몇 번을 '현미 소화불량'에 당하고 나서 정신을 차렸다. 천천히 오래 씹기로 했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더부룩함이 사라지고 속이 편해졌다. 밤새 괴롭히던 엉덩이의 종기가 쑥들어가 엉덩이가 매끈해진 느낌이다. 하지만 평소처럼 한 숟가락 푹 퍼서 입에 넣고 씹으니 너무 오래 씹게 됐다. 거의 현미가 입안에서 곤죽이 될 때까지 씹으려고 노력했는데 씹는 과정이 너무 지루했다. 씹으며 음식의 맛을 느끼기보다는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마치 씹는 기계가 된 느낌이었다. 이건 식사가 아니었다.


그래서 짧은 시간동안에 소화가 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씹으면서 음식의 맛을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냈는데, 바로 젓가락으로 아주 소량만을 입에 넣고 씹는 방법이었다. 입에 넣은 밥양이 적어지니 당연히 적게 씹게 됐다. 밥 한 숟가락에 150번 정도 씹었다면 70-80번이면 충분했다. 현미는 처음에 맛이 맹숭맹숭하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감칠맛과 단맛이 올라온다. 속쌀의 맛이 천천히 느껴지지만 '맛의 한방'이 있는 매력적인 곡물이다. 이런 경험이 씹는 과정 동안 뒤에 느껴질 맛의 기대감을 끌어올린다. 기대감은 곧 즐거움으로 이어진다. 오래 씹을 수록 즐거워지는 맛이다.

젓가락으로 밥을 뜨면 숟가락보다는 적게 떠지기 때문에 밥 한 공기를 비교적 오래 먹게 된다. 보통 전문가들은 과식을 막기위해 20분 이상 식사를 하도록 권한다. 우리몸에서 식욕을 억제하는 '렙틴 호르몬'이 식사를 하고 15-20분 후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현미는 애초에 오래 씹을 수밖에 없는 특징을 갖고 있다. 여기에 젓가락 식사법을 더하면 최소 20분을 식사 시간으로 늘릴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식사시간을 20분 이하로 할 경우 남녀 모두 비만이 될 확률이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굳이 '젓가락 식사법'이라고 유치하게 이름 붙이기는 민망하지만 건강과 소화를 한 번에 모두 잡고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다면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하다.


식사를 오래 하기 때문에 적은 양으로도 포만감을 쉽게 느낄 수 있다. 다이어트도 이렇게 쉬운 다이어트가 없다. 강제로 양을 줄이는 것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크다. 현미는 식이섬유가 많아서 포만감이 금방 느껴지고 오래간다. 건강한 식습관에 정말 절묘하게 잘 맞아떨어지는 음식이다.


Part.2 놓고

수저와 젓가락을 놓고 무엇을 먹을지 생각하기보다 입에 든 음식물의 맛을 충분히 느껴라.

현미채식을 권하는 분들이 대부분 밥과 반찬을 따로 먹으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야 입안의 음식물을 충분히 씹고 넘길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규칙만으로는 현미를 충분히 씹어 넘기기에 현실적으로 부족하다. 식습관은 말 그대로 습관이기 때문에 언제든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혹은 음식의 종류에 따라 매번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현미채식을 할 때는 음식물을 입에 넣고 씹기 시작하면 수저와 젓가락을 내려놓아야 한다. 원천봉쇄다. 아예 다른 음식을 집지 못하도록 스스로를 통제하는 방법이다. 나는 우리 딸에게도 이것을 가르친다. 아내와 내가 먼저 실천했고 딸아이에게도 가르쳤다. 그런데 딸아이는 워낙 천천히 밥을 먹는 스타일이라 굳이 매번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딸아이의 식사시간은 무조건 30분 이상이다. 때론 나와 아내의 선생님 같다.)


원래는 너무나 천천히 식사를 하는 아이의 식사시간에 맞춰 식사하기 위해서 시작한 일인데 마침 현미밥도 지어먹고 있으니 딱 맞아떨어졌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이 생각난다. 수저와 젓가락을 놓으니 음식의 맛이 잘 느껴진다. 진짜 '먹고 있다'는 느낌이다. 계속해서 음식을 집어넣고 배를 채우는 방식이 아니라 음식의 맛과 질감을 모두 느낀다. 마치 고급 레스토랑에 앉아서 밥을 먹듯이. 나와 아내는 '식사시간은 즐겁고 여유로워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다. 그래서 식사를 할 때면, 분위기를 보다 부드럽고 여유롭게 해주는 음악을 작게 틀어 놓는다. 음식을 먹으며 음악을 즐기기도 하고 서로의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짓기도 한다. 그러면 식사시간이 한층 여유로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식사할 때 고개를 들어야 한다. 음식은 우리의 삶을 위해 존재한다. 우리는 그 삶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어야만 한다. 식탁 위는 같은 음식을 나누고 각자 오물 거며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는 곳이다. 그렇게 삶이 오가는 자리라는 것을 나는 비로소 수저와 젓가락을 놓고 나서야 알았다.


Part.3 이야기하라

일처럼 먹지 말고 이야기를 나눠라.

수저와 젓가락을 놓았다면 이제 이야기를 나눌 차례다. 음식에 대한 이야기 또는 오늘 있었던 어떤 이야기도 괜찮다. 이야기를 나누면 식사를 천천히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가끔은 먹던 것을 멈추고 이야기를 이어갈 수도 있다. 우리 집은 주로 각자에게 일어났던 이야기를 주로 나눈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특히 이제 5살이 된 딸아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밥을 먹으면서 한다는 걸 다소 어색해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먼저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가끔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하지만 그 마저도 식사시간에는 재미있다. 먹으면서 느껴지는 좋은 기분이 마음을 서로에게 넓게 열어준다. 이야기는 곧 여유다. 어색하지 않고 능동적이고 꽤 자연스러운 틈이 대화 가운데 긴밀하게 생긴다. 틈은 이야기를 듣고 생각하고 먹고 마시며 대답하고 맞장구치는 찰나들이 빚어내는 예술이다. 그 틈을 통해 천천히 오래 씹는 일이 지루하지 않고 즐겁다. 의도적으로 오래 씹으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지만 즐겁게 보내는 시간 가운데 먹는 일은 전혀 수고롭지 않다. 먹는 일 자체가 곧 즐거움이다.

현미 식사법은 현미라는 '슬로푸드'가 우리에게 준 귀한 교훈이다. 건강하려면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음식을 어떻게 섭취해야 하는지'도 매우 중요하다. 무엇을 먹을지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먹는 방식은 그렇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그 해법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서로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나눌 때 함께 먹는 음식은 배를 채우는 목적을 넘어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약이 된다.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라는 최화정씨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음식 자체보다는 음식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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