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샘의 일상노트 - 육아휴직에서 배운 시간 조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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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멈추거나 시간을 이동하는 등 다양한 초능력과 마법, 과학 기술을 소재로 하는 다양한 만화나 소설, 영화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저는 마블 영화에 나오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시간 마법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화에서 닥터 스트레인지는 손바닥을 좌우로 돌리며 시간 조종합니다. 아날로그 시계의 다이얼을 돌려서 시곗바늘을 시계 방향으로도 반시계 방향으로도 돌릴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시간은 앞으로 뒤로(과거로 혹은 미래로) 방향 조절뿐 아니라 각 방향으로의 속도도 컨트롤됩니다. 이렇게 시간을 자유자재로 아주 편리하게 조종하는 모습은 다른 픽션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이기에 가장 인상에 남았던 것 같습니다.
현실로 돌아와서 우리는 영화처럼 시간을 멈추거나 되돌릴 수 없음을 압니다. 우리가 노력할 수 있는 것들 중 그나마 시간과 관련된 것은 바로 '속도'에 대한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글 시간을 멈추는 방법(2) 에서는 시간의 흐름에 대한 우리의 '느낌'을 다르게 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 또한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전제로 '속도'에 대한 인식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시간에 대한 마지막 글인 이번 글에서는 제가 육아휴직을 하면서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꼈다'는 부분에 대해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앞의 글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1년의 육아휴직 기간은 10년의 회사 생활에 비하여 더 느리고 풍성한 일상이었습니다. 이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끼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저는 느리다는 느낌을 넘어서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끼게 된 것일까요?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삶의 속도의 극단적인 차이입니다. 육아휴직 전의 생활과 육아휴직 시작 후의 생활에 극단적인 속도 차이가 있었던 것입니다. 쉼 없이 달려오던 삶이 갑자기 멈춰버린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말이죠.
육아휴직을 시작하기 직전까지 저는 거의 번아웃 상태였습니다. 회사의 일은 늘 시간을 다투는 일이었습니다. 다양한 이유로 심리적인 압박도 심했습니다. 매년이 비슷해지며 점점 더 일상은 의미 없이 더 빠르게 지나가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육아휴직을 시작한 순간은 마치 SF영화에서 우주선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엄청난 속도로 웜홀 통과를 하다가 갑자기 웜홀을 빠져나와 느린 속도로 전환하는 순간처럼 느껴졌습니다.
두 번째는, 흘러가는 삶을 스스로의 선택으로 멈춰 세웠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결국 육아휴직의 선택은 멈추지 않을 것처럼 흘러가는 삶에 대한 통제권을 제가 가질 수 있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대한민국의 많은 보통 사람들처럼 저도 학창 시절 입시제도를 통과하고 대학을 거쳐 현재의 직장까지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그나마 대학 생활까지는 마음대로 살아간다고 느꼈지만, 회사에 다닌 후로는 더 이상 삶의 통제권이 저 스스로에게 없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회사의 속도와 일의 속도에 맞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멈춘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휴직을 시작하고 1년을 지내고 복직을 현재까지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 시켜서한 일이거나 회사의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쉬게 되었다면 이런 느낌이 들었을까 싶습니다. 극단적으로 느린 속도의 생활이 제 스스로 선택한 것이기에 저는 스스로 시간을 멈춘 것처럼 느꼈다고 생각합니다.
'느리게 살기 운동'을 실천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는 <시간자결권>(칼 오너리 저)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시간 자결권은 '시간을 자유롭고 충만하게 사용할 수 있는 권리' 정도의 의미입니다. 이 책은 느리게 살기 운동의 의미와 다양한 형태의 실천들을 소개합니다. 슬로시티, 슬로리딩, 슬로씽킹, 슬로푸드 등 정말 많은 사례들이 있습니다.
느리다는 것은 자기 삶의 리듬을 자신이 조절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러한 느리게 살기 운동의 '슬로철학'은 무엇이든 무조건 느리게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균형, 즉 '알맞은 빠르기'이며 자신의 삶의 속도를 스스로가 조절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시간자결권'이라는 제목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느리게 사는 것이 반드시 느린 것만을 의미하지 않은 것처럼, 시간을 멈추기 위해 꼭 모든 것을 멈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의 흐름에서 내가 스스로 속도를 선택하는 순간을 만들 수 있다면, 훨씬 시간에서 자유롭게 느낄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육아휴직이라는 쉽지 않은 결정과 1년이라는 긴 휴식을 통해 시간에 대해 좀 더 유연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육아휴직을 마치고 다시 회사로 돌아왔습니다. 첫 번째 글에서 설명드렸던 '정신과 시간의 방' 빠져나온 기분입니다. 바쁜 일상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소개드린 책 <시간자결권>에서 '슬로운동의 핵심 전선은 직장'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쉽지 않다는 이야기이겠죠. 직장에서 시간자결권을 가지는 방법은 '일을 덜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제가 일을 정말 덜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 앞으로는 제 시간을 더 충만하게 살고 풍부하게 느끼고 때로는 '시간자결권'을 행사(?)하며 적절한 템포로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는 꼭 시간을 '멈추는 방법'은 몰라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 더욱 행복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