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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드만의 작은 서재 Jul 14. 2023

평생 함께 가야  하는 걸까..

소소한 일상


내 몸에 익숙한 습관이나 평생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것들을 고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특히 80여 년 한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그것을 고치고 뭔가 다른 것을 모색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제는 모처럼 오랜만에 친정 부모님 댁에 갔다.

들어서자마자, 뭔가 냉기가 흐르는 것 같은 ( 어제 낮 기온은 최고의 기온이었음에도) 느낌을 받았다.

엄마는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시다가 천천히 일어나시면서 평소와는 다르게 "왔니?" 그게 다였고,

아빠는 가운데 방문을 열면서 천천히 나오시면서 "왔어?" 그게 다였다. 그러고는 두 분이 눈을 마주치시지 않는다.

"왜 이러지? 이건 뭐지? 엄마 아빠 싸움겨?"

하면 내가 웃으며 큰 소리로 말하자 "아니야, 싸우긴 우리가 싸울 나이냐?" 하시지만 뭔가 분명히 있었다.

집은 평소와 다르게 너무도 청소가 잘 되어 있었다.

"와우, 대청소 하신 거야? 너무 깨끗하고 좋네. 청소하시느라 힘드셔서 이렇게 힘이 없으시구먼?"

모른 척하며 더욱 활달하게 말을 했다.

"휴,. 그렇지 않아도 청소하고 힘들어서 좀 쉬고 있었다"라고 말씀하시는 아빠는 뭔가 더 말씀을 하시고 싶으신 눈치였다.

"왜 그러시는데, 아직도 부부싸움할 힘들이 있으신 거야?"

그랬더니 드디어 봇물 터지듯이 아버지가 말씀을 하신다.


발단은 점심 식사부터였다.

날도 더워 모처럼 냉면을 삶아서 드시는데 얼려 놓은 물냉면 육수를 너무 늦게 꺼내 놓은 게 발단이었다.

아빠는 식사를 하실 때 정갈하게 차려 놓고 하나를 드시더라도 제대로 드시는 편이고, 엄마는 되는대로 맛있게만 먹으면 된다는 주의다.

그날 점심에 육수는 아직 안 녹았는데 냉면은 다 삶아져서 얼음 덩어리 육수가 그대로 냉면 위로 올라가 국물이 거의 없이 냉면을 드시려니 아빠가 그게 싫으셨던 것 같다. 급한 거 아니니 육수 녹으면 시원한 국물 자작자작하게 해서 제대로 드시고 싶었는데 엄마가 그냥 어차피 녹으니 먹자고 하셨다보다.

그렇게 1회전이 끝나갈 무렵, 엄마가 청소를 서두르셨나 보다.

점심 먹은 거 치우기도 전에 물걸레부터 막 돌리셨나 보다.

아빠는 기왕 할 거면 점심 먹은 거 치워 놓고 , 의자 올릴 거 올리고, 진공청소기 돌려 먼지부터 빨아들이고 물걸레질하고 했으면 했는데 엄마가 일단 시작을 하신 거다.

거기서 의견이 갈려 1회전과 2회전이 치러졌던 것이다.


엄마의 그 성향과 아빠의 그 성향,

조금씩만 양보하고 맞춰주면서 지내시라고 했는데 엄마는 그 말이 너무 서운하셨나 보다.

우리가 듣기에는 아빠의 말이 훨씬 논리적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무조건 엄마 편이 필요하셨던 거다. 80 평생을 아빠한테 맞춰가며 그렇게 살았는데 마치 엄마가 맞추지 않는 것처럼 딸들이 얘기하니 그게 서운하셨던 거다.  그냥 논리적이고 뭐고 그걸 떠나서 엄마를 이해한다, 아빠가 잘못했네., 이 한마디가 듣고 싶으셨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80대 후반으로 접어든 우리 부모님들은 상대방에게 맞추고 이런 것보다는 그저 익숙한 상태로 지내시게 된다. 그러다가 이렇게 한번 다투시기도 하지만 무엇인가를 바꾸기보다는 당신들 가려운 부분을 긁어 드리며 기분 좋게 해 드리면 자연스럽게 배려도 나오고 즐거우실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엄마처럼 고집도 있으시고 자존심이 강한 분은 무엇인가를 가르치려 드는 자식들 보다는 이해한다 하면서 엄마의 아픈 부분을 조금씩 들어주고 감싸드리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집으로 가려고 나오는데 아버지가 한 말씀하신다.

"너희 가고 나서 내가 너희 엄마 꼭  안아줄 거다." 

우리는 "역시 우리 아빠 최고" 하면서 나왔고 나는 한 마디 더 했다.

"아빠 이따가 집에 다서 엄마한테 확인 전화 해 볼 거야 알았지?"


한 번이라도 더 찾아뵙고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고 해야 하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요즘 엄마 아빠한테 좀 소홀했던 것 같다.

엄마 아빠 건강히 오래오래 우리 곁에 계셔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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