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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드만의 작은 서재 Jul 14. 2023

[리뷰] 나목 - 박완서

소설 읽기

박완서 님의 7권으로 이루어진 산문집을 읽고 있는 중이다. 지금 일곱 번째, 마지막 책을 읽고 있는데 그 산문들 속에 작가님의 소설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작가님의 소설들은 거의 읽어보지 않은 것 같아 산문집 읽기가 끝나가니 이제 소설집 읽기를 시작해 봐야겠다는 마음으로 그의  첫 작품인 <나목> 읽기를 시작을 했다,

이 소설은 박완서 작가가 전쟁 중에 가족의 생계를 위해 미 8군 PX의 초상화부에서 일하면서 만나게 된 화가 (박수근화백)의 이야기라고 알고 있고, 그 관점에서 흥미를 느끼게 한다. 산문집 속에서도 이 소설을 쓰게 된 경위가 나와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느낀 것은 이 소설은 당신 PX를 매개로 살아가던 다양한 인간 군상들과 그들이 살아내야만 했던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의 아픔에 대한 이야기였다.

전쟁의 폭격으로 지붕이 부서져 내린 행랑채, 점점 내려앉는 고가古家, 그곳에서 두 오빠를 잃고 집처럼 점점 허물어져가는 껍데기만 남은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경아,  경아가 느끼는 전쟁에 대한 상반된 두 감정, 그 감정의 혼란 속에서 경아는 옥희도 씨를 통해 위안받기를 원한다.




전쟁의 노도가 어서 밀려왔으면, 그래서 오늘로부터 내일을 끊어놓고 불쌍한 사람을 잔뜩 만들고 무분별한 유린이 골고루 횡행하라. 광폭한 쾌감으로 나는 마녀처럼 웃으면서도 그 미친 전쟁이 당장 덜미를 잡아올 듯한 공포로 몸을 떨었다, 다 사는 다시는 그 눈먼 악마를 안 만날 수만 있다면.
서로 용납될 수 없는 이 두 가지 절실한 소망은 항상 내 속에 공존하고 가끔 회오리바람이  되어 나를 흔들었다, 미구에 나는 동강나버리고 말 것이다. 나는 자신이 동강 날 듯한 고통을 실제로 육신의 곳곳에서 느꼈다, 나는 아픔을 잊으려는 듯이 안방을 마구 서성대며 이 아픔의 까닭이 비롯된 시절로 자꾸 기억을 더듬어 올라갔다. (p. 124)⠀



산문집 속에서 그가 왜 글을 쓰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전쟁 중에 이유도 없는 죽음을 당한 오빠의 이야기, 그로 인한 개인의 고통, 가족의 고통 그것들을 토로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 속에는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우리가 아직 익히 알지 못한 이야기, 작가의 입장에선 아직 다 끝내지 못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고인이 되셨기에 더 새로운 이야기들을 들을 수는 없지만 남겨 놓은 이야기들을 통해

그동안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작가님의 이야기를 만나봐야겠다.


내가 지난날, 어두운 단칸방에서 본 한밭 속의 고목枯木, 그러나 지금의 나에겐 웬일인지 그게 고목이 아니라 나목이었다. 그것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달랐다.
나는 소소리 바람에 떠는 나목, 이제 막 마지막 낙엽을 끝낸 김장철 나목이기에 봄은 아직 멀건만 그의 수심엔 봄에의 향기가 애달프도록 절실하다.
그러나 보채지 않고 늠름하게, 여러 가지들이 빈틈없이 완전한 조화를 이룬 채 서 있는 나목, 그 옆을 지나는 춥디 추운 김장철 여인들, 여인들의 눈앞엔 겨울이 있고, 나목에겐 아직 멀지만 봄에의 믿음이 있다.
봄에의 믿음, 나목을 저리도 의연하게 함이 바로 봄에의 믿음이리라.
나는 홀연히 옥희도 씨가 바로 저 나목이었음을 안다. 그가 불우했던 시절, 온 민족이 암담했던 시절, 그 시절을 그는 바로 저 김창철의 나목처럼 살았음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또한 내가 그 나목 곁을 잠깐 스쳐간 여인이었을 뿐임을, 부질없이 피곤한 심신을 달랠 녹음을 기대하며 그 옆을 서성댄 철없는 여인이었을 뿐임을 깨닫는다.(p. 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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