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소설의 흐름을 대변하는 소설 미학 (책소개中)
나의 천국은 다음과 같은 것. 여름날 땀 흘린 뒤 시원한 찬물 샤워, 겨울날 따뜻한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바라보는 밤하늘. 잠에서 깨었을 때 당신과 맞잡은 손 마주 보는 눈동자. 같은 곳을 향하는 미소. 다정한 침묵. 책 속의 고독, 비 오는 날 빗소리, 눈 오는 날의 적막. 안개 짙은 날의 음악. 햇살. 노을, 바람, 산책. 앞서 걷는 당 신의 뒷모습. 물이 참 달다고 말하는 당신. 실없이 웃는 당신, 나의 천국은 이곳에 있고 그 또한 내가 두고 갈 것.(p37 '홈 스위트 홈' 中)
나는 이제 미래를 기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 눈앞에 내가 기억하는 미래가 나타났으므로, 어느 여름날에는 툇마루에 청개구리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을 향해 손을 뻗고 청개구리는 사라지고, 나는 이유를 모른 채 울어 버릴지도. 나는 다시 아플 수 있다. 어쩌면 나아질 수도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탄생과 죽음은 누구나 겪는 일, 누구나 겪는다는 결과만으로 그 과정까지 공정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 이제 나는 다른 것을 바라보며 살 것이다. 폭우의 빗방울 하나. 폭설의 눈 한 송이. 해변의 모래알 하나. 그 하나가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사이 에는 차이가 있다. 물론 신은 그런 것에 관심 없겠지만. (p38 '홈 스위트 홈' 中)
죄책감과 두려움을 잊은 덕분에 평온하고 아늑한 일상을 영위할 수 있었다. 진실을 마주하라는 늙은 강사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문장이 어긋났지만 견딜 수 없을 만큼 괴롭지는 않았다. 흠결 없는 삶을 살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만큼 완벽한 사람이 존재할 리 없었다. 상처를 긁어 덧나게 만들어도 박 재된 아이는 걷고 뛰고 자라지 못했다. 봉인된 종이를 열 수 있는 사람은 혜순이 아니었다.(p189 '내가 아직 조금 남아 있을 때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