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드만의 작은 서재 Sep 19. 2023

[ 리뷰] 눈부신 안부 - 백수린

눈부신 별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안부

나의 유년시절은 어땠을까. '그때는 어렸으니까.'라는 말로 덮어 두었던 나의 서툴었을 몸짓들을 꺼내보는 것은 어찌 보면 두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 서툼이 드러나게 될 때, 지금의 내가 바라보게 될 그것들과 어떻게 손잡을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

아무리 네가 의젓하고 씩씩한 아이라도 세상에 혼자 감당해야 하는 슬픔 같은 건 없으니까. 알았지?"(p. 25)


어린 시절 가스폭발 사고로 언니를 읽고 해미의 가족은 금이 간 유리 바닥을 딛고 서 있는 것처럼 위태롭기만 하다. 그때 해미의 엄마가 선택한 것은 언니(해미의 이모)가 살고 있는 독일로 유학을 떠나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독일에서의 생활, 그곳에는 해미는  파독간호사로 독일에 간 이모와 이모들(이모와 같은 파독 간호사 이모들)을 만난다.

그곳에서 해미는 상대방을 위하는, 자신을 감추는 것이 최선이라는 정당성을 부여하는 거짓말도 하게 되고, 상대적인 행복과 불행을 따지게 되는 최초의 악의(?)라는 감정도 알게 된다.

너무 불공평해 불현듯 나는 줄곧 내가 그렇게 생각해 왔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자 한없이 서글퍼졌다. 열네 살에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은 나처럼 고통스럽지 않길 바라는 대신 다른 사람도 적어도 나만큼은 고통스러웠으면 하고 바라는 그런 인간이 나라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에, 그건 내가 처음으로 또렷하게 마주 한 내 안의 악의였다.(p. 66)


시간은 흐르고 이모들의 아이들인 레나와 한수를 만나 친하게 되면서 해미도 점점 적응을 해 나가는데 한수의 부탁으로 이들 셋은 커다란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  뇌종양 판정을 받은 한수의 엄마인 선자이모의 첫사랑인 K.H를 찾는 일이었다.

갑자기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 해미는 그 첫사랑 찾는 일을 계속해보지만 선자 이모의 일기장과 이니셜만 가지고는 찾을 길이 막막했다. 그러나 선자 이모의 죽음이 임박함을 알게 되고 한수의 간곡한 부탁 때문에 최선이라고 생각한 거짓말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자신이 한 행동이 모두에게 최선이라는 생각이었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자책을 하게 되고 결국은 그들과 연락을 끊게 된다.


소설의 시점은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가며 해미가 자신의 이야기를 해 나간다.  우연히 한 전시회에서 만나게 된 예전의 인연이었던 우재, 그리고 그 우재가 꺼낸 이모의 안부와 야자수 이야기.

이것이 과거 해미가 박스 속에 넣어 놓고 봉인해 버렸던 선자이모의 이야기를 다시 열어보게 하고, 당시의 의도와는 다른 각도로 K.H 찾기를 해 보기로 한다.

그 과정에서 어린 시절 오로지 첫사랑 찾기라는 목표 때문에 놓쳤던 것들을 다시 알게 된다. 선자 이모의 삶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고 (마지막에는 반전이 있다) , 이모를 비롯한 파독 간호사로 살아갔던 이모들의  보게 되었고 그러한 그들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도 다시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찬란하고 눈부신 별이었음을 , 그 별들에게 따뜻한 안부를 묻게 된다.


나는 내 마음이 이끄는 길을 따랐으니까, 그 외롭고 고통스러웠던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자긍심이 있는 한 내가 겪은 무수한 실패와 좌절마저도 온전한 나의 것이니까. 그렇게 사는 한 우리는 누구나 거룩하고 눈부신 별이라는 걸 나는 이제 알고 있으니까.( p303)


소설이 주는 매력이 물씬 풍기는 이야기였다. 소설 하면 재미를 느끼게 하는 줄거리와 인물이 중요한데 이 소설은 전반적인 이야기의 흐름도 좋았지만 그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인물들의 맘 속에 투영되며 공감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과거의 나를 통해 지금의 나를 보고, 앞으로의 나를 다짐하게 되는 그 과정이 정말 자연스러우면서도 재미있는 모든 요소를 갖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의 첫 시작도 야자수이고 마지막 마무리도 야자수이다. 이국적인 풍경을 만들어 내기 위해 뿌리째 뽑혀왔던 야자수가 이제는 일부가 되어 아름다워졌다는 우재의 말이 공감과 더불어 안심이 되며 따뜻한 미소가 절로 지어지게 되는 그런 마무리였다.

오늘 이 아침에도 눈부신 우리 모두에게 따뜻한 안부를 전하고 싶어 진다.


황량한 바닷가에 묵묵 히 서 있는 야자수들을 보면서, 이국적인 풍경을 위해 뿌리째 뽑아 기후와 토양도 맞지 않는 곳에 심었다니 너무하네. 정말 너무해, 슬프고 사나워졌던 그 밤의 마음은 지금도 선명히 생각난다. 하지만 이제 그보다 더 간직하고 싶은 건 고운 모래사장에 털썩 주저앉으며 우재가 한 말이다. "그런 야자수들이 살아남아 이젠 제주의 일부가 되었으니, 정말 아름다운 일이지?" ( p. 308)


매거진의 이전글 [리뷰] 2023 이상문학상 작품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