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에서 차례 때 기름 진 전 안 부쳐도 된다고 기사가 계속 나온다. 차례의 기본 구성은 옛날에 확립되었을 거라 최근에 바뀐 게 아닐진대, 그럴 거면 진작 계몽 운동을 할 일이지, 이제 마흔 된 나도 명절 냄새 = 기름 냄새로 익숙한데 왜 이제 와서 그러는지, 지난 몇 십 년간 우리 엄마 세대의 전노동은 그냥 넘어갔는데, 요새 세대들에게도 그랬다간 큰일이 날 것 같아 부랴부랴 수습하여 넘어가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금할 수 없다. 나는 명절에 전 부치는 것이 싫지 않다. 너무 많이 하는 것이 싫을 뿐. 여럿이 함께 한 번 먹을 만큼만 한다 하면 나에게는 할 만한 일이다. 옛날 생각도 나고, 여럿이 맛있게 먹을 수 있고, 전 부치는 옆에서 야금야금받아먹는 아이들도 있으니, 오늘 오전에 꼬치전과 생선전을 부쳤는데 두 시간 조금 넘게 걸렸다. 아이들과 꼬치전 만들기 활동을 한 시간을 포함하여 세 시간 정도. 재밌고 맛있는 기억으로 남길 바란다. 우리 엄마는 힘들게 전을 많이 부치신 편인데, 그럼에도 염치 불고하고 내가 그 기억을 좋게 가지고 있는 것처럼.
아이들은 꼬치 전 만들기를 즐거워하였다. 명절이면 아이들과 꼬치전을 자주 만든다. 예전엔 시댁에서 전을 많이 부쳤는데 최근 몇 번의 명절을 보내면서 어머님께서 전은 안 부치시겠다 하셔서 내가 아이들과 적당히 부쳐서 가지고 간다. 누가 부쳐도 맛으로 평타는 치는 것이 전이라 크게 부담은 없다. 간이 조금 싱거울 순 있는데 싱거운 사람이 간장 찍어 먹으면 되는 일. 그리고 꼬치전은 햄과 맛살이 들어가 맛이 없을 수 없는 조합이라 더더욱 부담이 없다. 이번엔 쪽파와 버섯도 추가하였다. 애들은 꼬치에 꽂는 것을 즐거워한다. 채소도 무조건 꽂아야 한다는 엄마의 명령에 따라 실오라기 같은 버섯 하나를 꽂기도 하고, 파를 좋아하는 엄마 아빠를 위해 파만 꽂아 주기도 한다. 이래도 저래도 상관이 없다. 우리 집에서 먹고 끝낼 것이니, 양가에 가져다 드릴 전은 납품용으로 내가 먼저 만들어 두었다. 밀가루와 계란을 묻혀 프라이팬으로 들어가는 전을 보면서 둘째 지난번에 치킨까스 만든 거랑 똑같은데 빵가루가 없네 한다. 그래, 함께 치킨까스 만든 보람이 있구나. 갓 구워 낸 기름진 전을 아이들은 잘도 먹었다. 만들고 먹으며 한 끼 뚝딱 때웠으니 나도 좋았다. 명절을 좋게 기억했으면 좋겠다.
2. 떡꼬치가 먹고 싶어
꼬치전을 꽂다 보니, 꼬치, 꼬치, 떡꼬치가 생각이 났다. 기름 냄새에 속이 느글거렸을까, 매콤한 양념이 떠올랐는지도 모른다. 냉동실에 있던 밀떡을 해동하여 꼬치에 꽂아 새 기름에 구웠다. 날씬한 밀떡은 금방 말랑해지며 바삭하게 익는다. 첫 떡꼬치의 기억이 초등학교 2학년때였나, 학교 앞 문방구에서 처음 팔았다. 매콤한 양념을 바른 떡꼬치는 아이들의 하굣길 단골 간식이었는데 그때 처음 먹었던 떡꼬치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어디서도 먹을 수 없는, 학교 앞 문방구에서만 파는 간식. 희소성에 가성비, 맛까지 보장이었으니. 요새는 떡꼬치를 파는 곳을 많이 못 본 것 같다. 일단 학교 앞에 문방구가 없다. 문방구에서 식품을 파는 것이 불법인지는 모르겠지만, 앞에 문방구도 없고, 떡꼬치 파는 분식집도 없는 요즘 학교 앞은 나에겐 좀 낯설다. 요즘 아이들은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먹는다는데, 그것이 왜 내가 아쉬운지 모르겠다.
떡꼬치를 구워 내고 양념을 만들었다. 집에는 하나도 맵지 않은 파프리카장이 있다. 고추장과 똑 같이 생겼는데 하나도 맵지 않아 아이들의 빨간 양념을 만들 때 사용하는 편이다. 파프리카장에 덜 매운 고추장 반 티스푼 정도 섞은 후, 케첩, 올리고당, 통깨를 섞었다. 먹던 맛이 난다. 맵지 않을 뿐. 우리 아이들은 양념 바르지 않은 소떡소떡을 휴게소에서 먹어 본 적은 많은데 떡꼬치만 먹은 것은 처음인 것 같다. 떡꼬치 + 꼬치전이니 뱃속에서는 소떡소떡과 똑같은 음식을 먹었다고 생각하겠지만 떡꼬치를 맛있게 먹는 아이들을 보니 나와 추억을 하나 공유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3. 명절 = 부담?
전을 꼭 올리지 않아도 된다고 기사가 쏟아져 나오는 것처럼, 향후 몇 년 안에 세뱃돈도 사실은 원래 우리 전통이 아니라는 얘기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새뱃돈이 5만원으로 굳어지는 분위기에 3만원권 출시가 절실하다는 기사가 나오니 말이다. 명절엔 집집이 다 똑같은 음식들 말고 먹고 싶은 음식으로, 적당히, 세뱃돈도 주는 사람, 받는 사람 부담 없도록 적당한 문화가 자리 잡힐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계속 변한다. 먹을 것이 흔해지고, 가족 간 모임도 맘만 먹으면 언제든 가능한 세상이니 명절에 이런저런 부담을 몰아서 또 가져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오늘 부친 전을 시댁과 친정에 갖다 드린다. 친정에서는 내가 안 부친 녹두전을 주셨고, 내일 시댁에 가면 전을 제외한 다른 음식들이 그득할 것이다. 시어머님은 항상 음식을 안 한다고 하시면서 뭔가를 가득 만드시는 분이라 내 작은 위장이 아쉬울 뿐이다.
굳이 대체 공휴일로 하루 더 안 쉬어도 되는데, 하는 마음이 굴뚝같은 아이 엄마이고 주부, 언젠간 명절에 훨훨 여행을 떠나고 싶은 1인이지만 설날 쉬는 것을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며 이번 명절도 즐겁게 보내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