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은 아니지만, 청소년 문학을 읽었다. 오랜만이다. 문장이 쉽고, 간결하고, 내용이 단순한 것 같은데 생각해 봄 직한 문제들을 골고루 다루고 있다. 이 책을 구매한 것은 순전히 제목 덕이었다. <초콜릿 어 할 줄 알아?> 여자들은 한 달에 한 번씩 그날이 되면 초콜릿이 엄청 당긴다. 여자들이 생리할 때 찾게 되는 것? 이란 질문에 여성들의 십중팔구는 초콜릿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만큼 초콜릿은 그 자체로 언어이고, 교감이고, 공감이다.
이 책은 당연히 여성의 신체나 호르몬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날의 여자들만큼이나 초콜릿을 사랑하는 사람들,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초콜릿으로 통하는 초콜릿이 이어주는 우정 이야기. 한 아이는 시리아에서 건너온 난민 소녀이고, 한 아이는 난독증으로 학습 부진이라는 문제가 있지만 아주 밝고 재기 발랄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친구관계에서 원만함을 유지하는 소녀이다. 한 명은 영어를 못 하고, 한 명은 영어는 하지만 글씨를 잘 모른다. 둘은 초콜릿을 매개로 친구가 된다. 초콜릿은 그날의 고통을 겪는 여자들에게만큼이나 본능적으로, 직관적으로 이 아이들을 이어준다. 초콜릿 어 할 줄 알아? 는 이렇게 나왔다. 이래도 저래도 말이 안 통하지만 초콜릿으로 관계가 시작되고, 사건이 전개되고, 우정이 된다.
난민과 난독증, 평범한 사람이라면 생각도 해 본 적 없을 법한 생소한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와 시리아 난민은 너무도 먼 이야기 같지만 목숨을 걸고 고향을 탈출해 온 탈북자나 이런저런 이유로 쉼터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면 이해가 조금 되는 것 같다. 온갖 상처와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동정이 아닌 동행, 적선이 아닌 도움 일 것임을 이 책을 읽으며 새삼 깨달았다. 약자, 하지만 친구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을 무턱대고 도와주는 것이 아닌 도와드려도 될까요? 하고 양해를 구하고 필요한 도움을 주는 것이 예의인 것처럼. 목숨을 걸고 시리아를 탈출한 소녀의 이야기를 영국 7학년 교실의 친구들은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들어주고, 아픔에 공감해 준다. 우리가 일상으로 즐기는 불꽃놀이가 그녀에겐 크나큰 트라우마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더욱더 친구를 보듬고 배려하고 함께 걷는다. 난민 수용 문제가 사회문제가 되기도 하는데, 아이들은 언제나 어른 보다 더 성숙하고, 인간적이고 선한 선택을 한다는 것을 책을 읽으며 다시 배웠다.
둘째와 함께 <콩닥콩닥 처음 유치원>이란 그림책을 읽었다. 유치원에 새로 온 친구는 요괴인데 눈에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우리와는 다른 친구이다. 친구들은 호기심에 다가가지만, 요괴 친구는 유치원이 너무 낯설다. 설상가상으로 손오공이 요괴를 잡으러 오니 모든 친구들이 함께 낮잠 이불을 뒤집어써 손오공이 누가 요괴인지 모르게 만들어 결국엔 손오공을 물리쳐준다. 그러자 비로소 마음을 열게 된 요괴 친구,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하루를 보낸 후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엄마에게 달려가 내일 또 유치원에 오겠다고, 너무 즐거웠다고 이야기하며 하루를 마친다. 요괴도 우리와 똑같이 엄마 앞에서는 어린아이이다. 모습이 조금 다르지만 다 같은 친구들이라는 걸 보여주며 겉모습이 달라도 친구라는 걸, 새로운 유치원에서는 누구나 긴장이 된 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손오공이 무서워 벌벌 떠는 요괴 친구를 위해 모두 한 마음으로 낮잠 이불을 뒤집어쓰는 장면이 너무 예뻤다. 아이들은 이렇게 선하다.
또 한 권의 그림책, <외눈 고양이 탄게>가 있다. 어느 사고로 한쪽 눈을 잃은 고양이를 만나게 된 아이는 그 고양이를 식구처럼 돌봐 주는데, 한쪽 눈이 없어 불쌍해하지 않는다. 그냥 외눈 고양이이지만 능청스럽게 집에 들어와 밥을 얻어먹으며, 그렇게 가족이 된다. 고양이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고양이가 외눈인지 양눈인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그냥 그 고양이의 모습 그대로 받아들인다. 순종, 새끼만을 선호하는 우리가 반려동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정통으로 등짝 스매싱을 맞은 기분이었다. 장애는,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다. 너와 조금 다른 친구 와도 함께 잘 지내야 한다고 이야기하면서, 정작 유기견, 믹스견에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마음이 정말이지 너무 찔렸다.
다시 <초콜릿 어 할 줄 알아?>
이 책의 주인공은 난독증을 가진 소녀이다. 얼마 전 읽었던 <난독증 이야기>라는 책에서는 난독증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겪어보지 않은 고통이기 때문에 무심코 지나치기 쉽지만 당사자들에게는 활자로 이루어진 이 세상이 얼마나 어렵고 뿌연 세상인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마음이 굉장히 무거웠는데 이 난독증 소녀 재즈를 만나며 그 마음 역시 편견이었음을 느끼게 되었다.
난독증 환자들은 전략 세우는 데 선수다. 하루에도 천만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일 거다. 난 남들처럼 옆길로 새거나 자잘한 일에 발목 잡히는 법이 없다. 큰 문제 해결에 더 강하다. 그리고 사물을 다르게 바라보며 매번 새롭고 독창적인 생각을 해낸다.
이 재기 발랄한 소녀 재즈를 그냥 재즈로 본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지난번 <난독증 이야기>를 읽을 때에는 내가 학교에서 글씨를 읽는 것에 문제가 없었던 일이 마치 거저 받은 커다란 빚인 것처럼 느껴져 마음이 무거웠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 마음의 빚을 조금 벗을 수 있었다. 난독증을 장애로, 난독증이 아님을 빚으로 느낄 필요가 없어 보였다. 이 소녀 재즈에게는. 우리는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동행하면 되는 사람들이니.
아이들을 본다. 솔직히 다른 아이들과의 비교에서 자유롭진 못하다. 하지만 계속 계속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라도 그 자체로 바라보아야 함을, 그것이 바로 내가 행복해지고, 세상이 아름다워지고, 결국엔 남을 돕고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길임을, 그 모두엔 나와 아이들이 모두 포함될 것임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