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물고기

개성을 존중하는 세상이기를.

by 멋쟁이 한제

나는 정말 예쁘잖아요? 그런데 왜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 걸까요?


예쁜 비늘을 가진 무지개 물고기가 있다. 다른 친구들도 무지개 물고기의 비늘이 가지고 싶어 한 개 달라고 한다. 그러자 무지개 물고기가 버럭 화를 낸다. 그렇게 무지개 물고기는 성질이 더러운 물고기로 소문이 나서 아무도 가까이하지 않으려 하고, 무지개 물고기는 자기의 예쁜 비늘을 보여줄 친구도, 자기와 가까이 지내고 싶어 하는 친구도 없어 외로워진다. 그런 물고기에게 내려진 처방은 혼자서만 가지려고 하지 말고 친구들과 예쁜 비늘을 나누어 보라는 것, 처음에는 질색을 하던 무지개 물고기도 무지개 비늘을 하나씩 나누어 주며 더 이상 가장 예쁜 물고기는 아니지만 행복한 물고기로 공동체에 어우러진다는 내용이다.


내가 먼저 읽은 책은 아니고 큰 아이가 일주일에 한 번씩 다니는 독서교실에서 읽고 남긴 독서 노트를 보고 내용이 궁금하여 찾아 읽은 책이다.


큰 아이는 자기의 보물인 종이접기 로봇을 동생과 나누겠다며 얼떨결에 선언을 한 것 같다. 친구들에게는 선물도 잘 주면서 유독 동생에게는 인색하게 구는 형아였기에 기특하면서도 귀여웠다. 아닌 게 아니라 큰아이의 종이접기 실력은 또래보다 월등한 수준이고, 본인 스스로도 그걸 잘 알고 있으며 그런 자신감이 친구를 사귀고 학교 생활을 하는데에 큰 역할을 한다. 수업시간에 종이접기 활동이 나오면 얼른 접고 친구들을 도와주기도 하고, 로봇을 접어 친구들에게 선물을 하기도 하며 종이접기를 통해 배운 실패의 경험, 실패를 넘어선 성공의 경험이 이 아이를 내가 해 주는 밥 못지않게 키우고 있다는 것, 힘들게 이뤄 낸 성공의 맛을 여기저기에 응용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아이의 처음 종이접기 선생님이 되어 주신 유투버 네모아저씨게 큰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아무튼, 아이의 보물은 종이접기 로봇이고 그것을 동생과 나누겠다고 했으니 아이는 무지개 물고기의 내용을 잘 파악한 것 같다.


내가 다시 무지개 물고기를 찬찬히 읽어 보았다. 그러자 마음 깊이 숨어있던 삐딱함이 나온다. 무지개 물고기가 가진 예쁜 비늘을 그냥 달라고 한 그 친구, 그리고 거절당하자 소문을 내어버린 그 녀석은 과연 잘한 것인가. 누구나 자기에게 소중한 것을 그냥 달라고 하면 발끈하고 버럭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다른 것도 아니고 신체의 일부를 그냥 달라고 하고 거절을 당하자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리다니. 잘못을 알려주고 고치게 해야 할 행동이다. 무지개 물고기는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해 버럭 화를 내었으니 어쩌면 요즘 세상에 가장 어울리는 대처를 한 셈인지도 모른다. 안 돼요! 싫어요! 하고 큰 소리로 외치도록 배우는 아이들이니.


나는 아이들을 키우며 소유의 경계를 정확히 해 주는 편이다. 형이니까 양보하라고 하지 않고, 동생이니까 양보하라고 하지 않는다. 다만 소유권자의 의견을 물어보고 존중하는 편이며 은근히 양보를 강요하거나 양보가 착한 것이라는 뉘앙스도 되도록이면 풍기지 않으려고 한다. 양보해 줘서 고마운 것이지 양보해 주는 것이 착한 것은 아니다. 무슨 마음으로 양보를 한 줄 알고 양보한 마음을 착하다고 할 수 있을까,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서 양보를 해서도 안 될 일이니, 꽁한 마음으로 양보를 해 주었어도 고맙다는 말로 받아주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무지개 물고기가 비늘을 나누어주게 된 것이 매우 유감이었다. 비늘을 한 개씩 나누어 주며 친구는 생겼다지만, 비늘 안 주면 친구 안 하고, 비늘 주니 친구가 되어준 친구들은 진정한 친구일까, 물론 그 일을 계기로 진정한 친구로 거듭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는 있겠지만 물고기 마을은 예쁜 무지개 물고기를 잃었다. 예쁜 것만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지만 개성이 사라지고 평범해진 후에야 공동체에 어우러지는 모습으로 읽힐 수 있어 조금 위험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 사는 세상도 어쩌면 비슷하다. 어느 순간부터 개성은 매도되고 평범함이 미덕이 되었다. 미인 단명이라던지, 얼굴값 한다. 혹은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까지 있을 정도이니 예쁘건 어쩌건 눈에 띄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 문화는 맞는 것 같다. 무지개 물고기가 비늘을 하나씩 떼어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고 평범하게 거듭났듯이 우리 사람사이의 개성들도 조금씩 깎이고 바래고 희석되어 모두가 비슷한 색깔을 이루며 살 고 있지는 않을까,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무채색 일색인 주차장의 자동차들처럼.


나는 무지개 물고기가 멋진 비늘을 만들어 붙일 수 있는, 그래서 멋진 비늘을 몸에서 떼어 주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서 친구에게 선물을 줄 수 있는 물고기로 그려보고 싶다. 그리고 친구가 가진 것을 다짜고짜 가서 달라고, 주지 않았다고 소문을 낼 것이 아니라 정중하게 부탁하도록, 그리고 소유권자의 의견을 충분히 존중하도록 그리고 싶다. 비늘을 주면 착한 것이 아니고 고마운 것, 비늘을 주지 않아도 못 된 것이 아니고 그냥 주고 싶지 않아서 주지 않은 것으로. 물고기 친구들도 마찬가지이다. 무지개 물고기가 멋진 비늘을 주지 않아도 몸을 꾸미고 장식하고 갖고 놀 수 있는 다른 개성과 능력을 가진 친구들로 그리고 싶다. 예쁜 무지개 물고기를 평범하게 만들 것이 아니고, 다른 물고기들을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모두가 멋진 물고기들로 그린다면, 그런 세상일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종이를 잘 접는 아이에게 친구가 알려달라고 하면 잘 알려주라고, 동생이 네가 접은 로봇을 갖고 놀고 싶어 하면 같이 갖고 놀라고 말해 보았다. 아이는 같이 놀다가 망가져도 내가 다시 접으면 되니까라고 대답한다. 답은 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