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과 삶, 사람.

집안일에 대하여.

by 멋쟁이 한제

요즘 둘째가 꽂힌 책이 있다. <엉터리 살림꾼 구피>. 밭일하는 것이 너무 힘든 아빠와 집안일이 너무 힘든 엄마가 서로가 더 힘들다고 투덜대자 아들이 일을 바꾸어해 보라고 하여 아빠가 한 나절 살림을 맡는 동안 벌어지는 우당탕탕 에피소드이다. 구피는 일을 쉽게 하려다가 되려 어렵게 만들고, 과정을 생략하여 결국엔 일을 키운다. 대부분 아빠들이 굳이?라고 하며 집안일을 대충대충 하여 엄마에게 소락대기를 맞는 상황을 잘 묘사하였다. 구피의 아내는 그러지 않았지만. 보살이 따로 없다. 엉망진창이 된 집을 보고도 ‘밭일도 힘들더라’며 화내지 않는다. 구피 아내 리스펙! 난 설거지를 마친 남편에게 저기 안 씻은 냄비가 하나 있다고, 기름때가 제대로 지지 않았다고 투덜거리며 잔소리를 하는데,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든 남편에게 화내지 않다니.



구피의 아내도 밭일을 하며 바깥일의 고단함을 알았을 것이다. 뙤약볕 아래에 일을 해야 하고, 열심히 한다고 농사가 무조건 잘 되지도 않을 것이며, 한다고 했는데도 여건이 맞지 않아 일이 잘 되지 않았을 때의 허탈함도 하루 만에 느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아내는 집안 살림을 능숙하게 해 내던 똑똑한 여자였으니 말이다. 집안 살림을 능숙히 한다는 건, 멀티가 가능하다는 것, 중요도에 따라 계획하여 순서에 맞추어 효율적으로 일을 해 낸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우리나라 가부장 제도의 상징과도 같은 말이 “집에서 놀고먹는 주제에”이다. 하지만 집에서 놀고먹기만 하면 집안 꼴이 어찌 되는지 모르기에 하는 말이라 생각한다. 집에서 열심히 자기 몫을 해 내는 어머니나 아내를 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때 되면 나오는 밥, 필요할 때 언제나 있는 수건, 계절에 따라 때 되면 알아서 바뀌어 있는 옷가지들, (집안일을 하며, 아이들을 키우며 우리나라의 4계절이 처음으로 원망스러웠다) 언제나 평균 이상의 상태를 유지하는 이부자리, 실내의 일부라고 해도 무방할 중간은 가는 베란다 상태. 집안일이 이렇게 퇴근도 주말도 없는 일이라는 걸, 집안일하는 사람에게 집에서 놀고먹는다고 하는 사람은 평생 모를 것이다. 집안일하던 사람이 없어지기 전에는.



유아동 인기도서 <돼지책>도 비슷한 맥락이다. 아주 중요한 일을 하는 아빠와, 아주 중요한 학교에 다니는 아들은 매일 엄마에게 밥 달라고 하고, 집에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엄마는 집안 일도 다 하고, 일도 하러 나가는 워킹 맘인 것 같다. 아니, 영국에도 이런 사람이 있단 말인가. 육아와 살림은 엄마 몫이라는 건 만국 공통이라니. 이건 위로를 받아야 하나, 분노가 유발되어야 하나. 표정도 얼굴도 없이 일을 하던 엄마는 결국엔 집을 나가버리고 엄마가 없어 멘붕이 된 세 남자는 돼지우리처럼 된 집에서 겨우겨우 생존에 성공한다. 엄마를 부르짖으며. 그리고 엄마가 돌아오자 세 남자는 180도 바뀌어 집안일을 잘 돕기 시작했고, 엄마는 그제야 얼굴과 표정을 되찾는다. 그 결심 쭉 이어지길, 책장을 덮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며칠 하다 말 것 같은데?


집안일의 속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그중 제1은, 하는 건 티가 안 나고, 조금이라도 안 하면 티가 확 난다는 매우 억울하기 짝이 없는 속성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우리 집의 일이라서 우리 가족 말고는 우리 가족만큼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은 무에 가깝다는 것. 그래서 각자의 몫을 찾아 해내야 완전체의 가족을 완성할 수 있다는 것, 한 사람이 모든 걸 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고, 결과적으로도 좋지 않다는 것이다. 살림과 삶, 사람은 매우 지척에 있기에, 살림을 잘해야 삶도 잘 풀리지 않을까. 그래서 엄마만 살림을 하는 것보다는 각자의 살림을 각자가 하여 각자의 삶을 더 풍요롭게, 남의 삶도 더 풍요롭게 만들자는 것이 이 책이 주는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했다.


애들에게 <돼지책>을 읽어주며 엄마도 편지 쓰고 나가버릴까? 했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안 된다고. 그만큼 엄마의 존재는 아직 아이들에겐 절대적이다. 내가 살림과 삶에 능숙해야 아이들이 잘 산다. 살림과 삶이 아주 밀접하다는 걸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도 나의 몫이다. 살림에 익숙해지기까지 우당탕탕 거리며 구피처럼 사고를 칠 텐데 그것을 수습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돋아가며 가르쳐야 한다는 것도 내 몫인데, 참 어렵겠다. 아, 참고로 남편은 자기의 삶과 자기 몫의 살림을 그럭저럭 잘 꾸려내는 사람이다. 나도 내 몫만 꾸역꾸역 감당할 정도의 수준인데 아들들에게 살림, 삶, 사람노릇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머리가 지끈 아프다.


<돼지책>,> <엉터리 살림꾼 구피> 책 속의 등장인물들, 집안일을 함께 하는 그 마음, 그 행동 영원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