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로 사는 법.

<줄무늬가 생겼어요>

by 멋쟁이 한제

아이가 둘이나 주렁주렁 달리고, 나이가 어느덧 이 정도 되며 조금 편해진 게 있다면 남들 시선을 조금 덜 의식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좋은 지, 아닌 지에 대해서 매 순간 의심하고, 의식하며 살피고 있으니 과연 편해진 것인지 아닌지는 조금 더 생각해 볼 문제지만 여하튼 주로 외적인 모습에서 머리를 못 감아도 혹은 조금 뻗쳐도, 화장을 안 해도, 옷 착장이 어딘가 후줄근하고 초라해도 누가 나 (따위)를 의식한다고 내가 남을 의식하나 싶은 마음에 조금 그런 면은 많이 편해졌다. 예전에 풀 메이크업이 아니면 혹은 렌즈를 못 끼고 똘똘이 안경을 쓰는 날에는 출처 모를 부끄러움에 어깨가 움츠러들던 나에 비하면 엄청난 변화이다.


이 좋은 걸 왜 매 순간 의심하고, 의식하냐 하면 혹시라고 너무 남을 의식하지 않아서 민폐가 되는 행동을 할까 봐 이다. 이건 아이를 낳고 오히려 더 심해졌다. 나로 인해, 남이 피해를 보고, 나와 내 아이가 욕보일까 봐, 나아가 아기 엄마라는 그룹이 욕보일까 봐 어떤 부분은 더 남을 의식하고 조심한다. 아기 기저귀를 커피숍 테이블에 놓고 나가더라는, 혹은 남들 다 있는 식당이나 카페에서 쉬 통에 아이의 쉬를 시키더라는 기사를 심심챦게 봤다. 나는 그 엄청난 비난을 받는 아기 엄마의 입장이 이해가 간다. 그 행동이 잘못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을 만큼 아줌마에게 아기 기저귀가, 아이의 쉬가 일상이라는 것이 이해가 가는 것이다. 그것이 너무 일상이라서 남에겐 눈살이 찌푸려진다는 일이라는 사실까지 생각이 다다르지 못한 것이고 그래서 그런 행동이 나온 것이라는, 그런 이해 말이다. 그래서 나를 더 의식하고 살핀다. 그렇게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까 봐, 그래서 죄 없는 아이들까지 욕을 먹을까 봐. 아이들에게도 최대한 남에게 피해 주는 행동을 삼가도록 지도를 한다. 신랑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들이 소란을 피우는데 부모가 제지를 하면 그 상황이 이해가 되고 참아지지만, 부모가 전혀 제지할 생각이 없어 보이면 아이들까지 욕을 먹는다고 잔소리 잔소리, 혹시 그 잔소리가 남의 귀에 거슬리는 피해가 되진 않았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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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무늬가 생겼어요> 동화책은 내가 너무 좋아서 아이들을 붙잡아 두 번이나 읽은 책이다. 책의 주인공인 여자 아이는 남의 시선을 너무 의식해서 학교 가기 전에 옷을 마흔 번이나 갈아입는 아이이다. 맙소사, 그냥 던져주는 옷을 그것도 거꾸로 입고, 그런 줄도 모른 체 칠렐레 팔렐레 돌아다니는 아들 둘을 키우는 입장에서는 정말 속에서 천불이 날 일이다. 그런 여자 아이에게 온몸에 줄무늬가 생기는 증상이 나타난다. 그 증상은 남들이 말하는 대로, 꼬리도 생겼다가, 풀과 가지도 돋았다가, 물방울무늬도 생겼다가, 국기 모양도 생겼다가 하는, 의사도 과학자도 못 고치는 증상이다. 이 아이는 남의눈을 의식하며 옷을 그렇게 갈아입으면서, 정작 자기가 좋아하는 콩 요리는 친구들이 싫어하니까 덩달아 싫어하는 척하는 아이인데, 이 불치에 가까워 보이던 증상을 고친 것이 바로 자기가 좋아하는 콩요리이다. 남을 생각하지 않고 내가 나로 사는 것, 그것이 이 아이를 치료한 것이다. 동화책이 이렇게 여운이 많이 남다니, 아이들은 그저 재미있게 읽었지만 나는 교복을 늘였다 줄였다 하던 학창 시절, 풀메이크업을 장착하고 다니던 아가씨 시절부터, 너무 막 다니는 것 아닌가 하는 요즈음까지를 돌아보게 하는 책이었다. 예전엔 외적인 모습에 신경을 썼다면 요즘엔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나를, 혹은 내 아이들을 남 눈치를 보게 하는 것은 아닐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책을 중간쯤 읽으며 친구들이, 다른 사람들이 하라는 대로 이 여자아이가 변하고 상황이 더 악화되는 걸 지켜보던 큰 아이가 말한다. "그냥 얘 하라고 하면 고쳐지겠는데?" 완전한 문장도, 세련된 표현도 아니지만 아이는 이 책의 주제를 꿰뚫고 있다. 맞아, 얘가 좋아하는 콩을 실컷 먹으니까 줄무늬가 싹 없어졌어.라고 결론 부분을 읽으며 이야기하니 씩 웃는다. 너는 이렇게 줄무늬가 생기면 학교 갈 거야?라고 물으니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더니 이런 줄무늬가 생기면 자기는 자기 좋아하는 스파게티를 실컷 먹어야겠다며 짐짓 신나는 표정을 하는 걸 보니 아직 1학년인 아이가 너무 귀엽다. 여섯 살인 둘째도 이런 줄무늬가 생기면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는 아이스크림을 잔뜩 먹고 줄무늬를 없애겠다고 거든다. 아직 아이들이라서 그런지, 남자아이들이라서 그런지 입는 옷이나 신발은 주는 대로 입는 편이고, 다른 친구들의 영향도 크게 받지 않는 편이다. 아직 친구 따라 강남 가기에는 어린아이들, 곧 엄마 보다 친구말을 더 잘 들을 날이 올 것이고 사춘기가 오면 하루 종일 거울을 보기도 하고, 남들 보기 좋은 메이커 옷을 찾기도 하겠지만, 내가 나로 사는 법이 이렇게나 중요하다는 것을 동화책으로 먼저 접해 보아서 좋았다.


생각해 보면 이 여자아이의 줄무늬 증상에 아이 부모도 딱히 무슨 역할을 하지 않는다. 이 사람, 저 사람 말을 듣기 바쁘고 그럴 때마다 아이의 증상은 심해지고 악화된다. 책은 주인공인 여자 아이에게 맞추어져 있지만 난 이 부모의 역할도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아이의 부모가 중심을 확실히 잡고 있는 사람이었다면 상황이 좀 더 빨리 종료되지 않았을까. 그런 의미에서 나도 내가 나로 사는 법을 꿰뚫고 있는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아이에게 이런 상황이 왔을 때, 내가 흔들리지 않을 수 있도록, 아이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나를 나침반 삼아 제 자리로, 그냥 자기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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