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과 교감, 과학과 이기주의 사이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처음 눈을 뜬 세계가 있으니 바로 “체험”이란 세계이다. 딸기, 사과, 토마토를 비롯한 과일 따기 체험, 감자, 고구마 캐기 체험, 밤 줍기 체험 등 식재료를 주인공으로 하는 체험이 이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다. 또 있다. 바로 다양한 동물 체험들. 각종 농장에서 진행하는 동물 먹이 주기 체험은 기본이고 물고기 잡기 체험, 말타기 체험 등 체험활동의 세계는 무궁무진했다. 물론 도시에서 사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풀을 만지고 가까이에서 동물을 볼 기회가 생긴 다는 것은 무척 감사한 일이다. 그런 것들을 하나도 모르고 자란 나는 유치원에서 감자 심기를 했다는 아이의 말에 작은 씨앗 심었겠구나,라고 대답했다가 아이에게 뭐 이런 무식한 엄마가 있나 하는 시선을 받았다. 아니야 엄마, 씨감자 심었어.라고 대답을 들으며.
아이들의 유치원에 한 달에 한 번씩 동물이 온다. 바로 동물 체험이 있는 날.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날이기도 하다. 도마뱀, 왕 뱀 (정확한 이름을 까먹었는데 정말 컸다), 당나귀 같은 쉽게 볼 수 없는 동물들이 동물 박사님과 함께 유치원에 오면 아이들은 먹이를 주고 만져보고 타보고 배경 지식을 쌓는 형태로 그림도 그리고 관련 책과 영상을 보며 배우기도 한다. 그렇게 동물 체험이 한 번씩 지나갈 때마다 아이들의 유식함이 +1 되는 것 같아 기특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게 맞는 건진 마음속 의문이 항상 있다.
엄마 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 내 자식이 인간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에 출근을 하여 하루 종일 애들이 만지고, 먹이 주고, 올라타는 것을 감내하고 온다고 생각하면 딱하기 그지없다. 우리 남편이 그렇게 일을 해서 돈을 벌어 온다고 생각해도 무척 안쓰럽다. 내가 직접 그 입장이 된다고 생각하면, 생각도 하기 싫음은 물론이다. 물론 아이들은 동물을 만나며 교감도 배우고, 해서는 안 되는 행동들도 같이 배우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에게인권이 있듯 동물에게도 동물권이 있을 텐데 이렇게 습성을 거스르면서까지 길러지며 자연 적으로라면 만날 일이 없었을 인간과 억지로 교감시킨 다는 것은 참 불공평해 보인다. 동물이 안쓰럽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동물 체험을 하는 날이면 꼭 당부를 한다. 유치원에 놀러 오는 동물들한테 고맙다고 얘기해 주라고. 아이들은 노느라 바빠서, 혹은 쑥스러워서 실제로 그 얘기를 한 적은 없는 것 같지만 나라도 아이들에게 이야기한다. 놀러 오는 동물들 참 고맙고 미안하다고.
아이들과 함께 읽은 밴드 브레멘은 나의 이런 마음을 대변해 주었다. 경주마로 (인간 기준) 활약하다가 부상을 당한 뒤 관광객을 태우는 말의 신세로 전락하여 계속 채찍을 받으며 일만 하다 도망친 말, 동물 실험 실에 갇혀서 인간이 필요할 때 주사 맞고 약 먹다가 눈이 멀어 도망친 개, 종이 한 장만한 닭장에서 알만 낳다가 알 낳는 것이 션찮아지니 버려질 뻔한 닭, 사람 손에 길러지다 유기되어 길고양이가 된 서러운 고양이. 아이들과 읽으며 각 동물들의 입장을 설명해 주었다. 지난번에 농장에 놀러 가서 승마 체험을 시켜주던 말을 기억하니, 그 말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우리가 먹는 계란도 이렇게 좁은 공간에서 알만 낳으며 행복하지 않은 암탉이 낳은 것들이 많아, 엄마는 조금 비싸더라도 농장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먹이 주워 먹고 알을 낳는 닭의 계란을 사고 싶은데 항상 그럴 수는 없어. 힘들게 계란 낳아 주는 닭들에게 고맙게 생각하자, 우리가 아플 때 먹을 약이나 화장품을 만들기 위해서 동물들한테 먼저 실험을 하곤 해. 그러면서 많이 죽기도, 다치기도 하는데 덕분에 우리가 안전한 약을 먹을 수 있는 거야. 참 미안하지?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나 고양이도 함부로 버리면 안 되는 거야, 이렇게 상처받고 슬프게 만들 순 없잖아.
아이들은 가만히 듣는다. 동물 실험이라든지, 동물 복지에 대한 이야기는 다소 어려울 수 있지만 동물들이 참 슬프고 힘들 것 같다는, 인간이 동물에게 이렇게 하는 것이 나쁘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아무 잘 못 없는 아이들이 죄책감을 가질까 싶어 걱정이 되었다. 우리가 직접 닭이나, 소, 돼지를 풀어놓고 기를 순 없으니 계란이나 고기, 우유를 먹을 때에 감사한 마음으로, 고맙게 먹으면 된다고, 체험 농장에서 만나는 동물들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약이나 로션을 만들 때 실험하는 동물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갖자고, 엄마는 그런 실험을 하지 않는 회사의 물건을 사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많은 것을 “체험”하는 아이들이다. 아쿠아리움에 가서 하얀 돌고래를 보며 저 돌고래가 바닷속에 있어야 하는데 여기에 있어서 참 슬프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바닷속과 흡사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게 말이 되나, 딱 봐도 사이즈가 다른데. 동물원에서는 다소곳이 앉아 사육사에게 닭고기를 받아먹는 호랑이를 보며 저렇게 부자연스러운 광경이 내 앞에 펼쳐지고 있음에 많은 감정이 들기도 했다. 호랑이가 고양이과라더니, 그 호랑이는 맹수가 아니라 고양이와 다름 없었다. 나는 코로나로, 육아로 조금 집에 갇히는 것도 이렇게 답답한데 이 동물들은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어떤 기분일까를 생각해 보기도 하였다. 이미 저렇게 시작된 삶이니 저렇게 두는 것이 맞을까, 야생으로 내보내는 것이 맞을까, 순리란 무엇일까.
날씨도 풀리고, 코로나도 진정이 되었다고 하니 이런저런 체험 학습이 많아진다. 당장 나도 6월 감자 캐기 체험을 알아보려 하고 있고, 농장에 가면 동물 먹이 주기 체험, 말타기 체험, 소 달구지 타기 체험이 많아 미리 예약을 해 두어야 하나 고민 중이다. 우리에겐 체험이지만, 동물에겐 일생일 텐데, 우리가 체험이란 핑계로, 동물에게 그렇게 허락도 안 받고 다가가도 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본 책이었다. 당장 나부터, 내 등에 막 올라타고, 먹기 싫은 약 먹이고, 계속 아기 낳으라고 한다면… 생각도 하기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