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들어 샘이 폭발하는 둘째의 PICK
요즘 둘째의 샘이 폭발하고 있다. 여덟 살, 여섯 살, 두 살 터울의 형제. 자연스레 물려받고 얻어 쓰는 일이 많았는데 그동안은 괜찮더니 요즘 들어 하나부터 열 까지 사사건건 트집에 샘을 부린다.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하는데, 그 과정을 옆에서 오롯이 받아내야 하는 나는 정말 미칠 지경. 자기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형아의 물건의 대해서도 샘을 부리고, 형아 의 옷은 크고 자기는 작은 것, 자기가 밥을 적게 먹는 것, 형아가 주말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에도 샘을 부린다. 유독 아침잠이 없는 큰 아이는 주말에도 여섯 시면 나를 볶아 일으켜 체스를 두게 만드는데 그 일은 참 고역이다. 어느 날은 일곱 시쯤 우당탕탕 둘째가 뛰어나오더니 나 빼놓고 형아랑 엄마랑 뭐 했느냐고 샘을 부리기도 했다. 급기야, 왜 형아를 먼저 낳았느냐고 화를 내기도 하고, 거기다 대고 네가 나보고 먼저 나가라고 했잖아~ 라며 너스레를 떠는 형의 모습, 그래서 더 펄펄 뛰는 둘째의 모습은 혼자 보기 아깝기도 하다.
유치원에 상담도 해 봤는데, 아이가 커 가는 과정이고, 그동안 몰랐던 것을 새로 알게 되었으니 이 또한 얼마나 기특하냐며 답이 정해진 말씀을 들었다. 아이가 커 가는 과정, 샘쟁이 놀부 둘째, 하지만 애교가 탑재되어 도무지 미워할 수가 없는데, 그건 형아에게 없는 너만의 것인데 그건 모르고 형아 질투만 하니 엄마로서도 참 답답할 노릇.
그 아이의 맘에 쏙 드는 책을 읽었다. 오빠한테 질 수 없는 둘째에 관한 그림책. 책에 나오는 둘째도 오빠한테 지는 것이 억울한 샘쟁이이다. 오죽 억울하면 설날에 작은 소꿉 그릇에 떡국을 몇십 그릇 먹고는 오빠보다 나이를 많이 먹었다 좋아한다. 우리 집 둘째도 이 마음에 동병상련인지 이 책을 읽고 읽고 또 읽는다. 설날에 떡국을 몇십 그릇 먹고는 서른여섯 살이 된 둘째, 마지막 장면에서 묻는다. 둘째가 누나가 되었을까요? 오빠와 동생인가요? 누나가 동생인가요? 이 물음에 대한 우리 집 형제의 대답이 갈린다. 떡국을 많이 먹었으니 누나와 동생이 되었다는 누나 편, 둘째와 그런 게 어딨 냐는 오빠 편 첫째.
나이를 먹는다는 것, 나이라는 목적어에 먹다는 술어를 붙이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꼭 밥 먹으면 살찌고 배불러져 너그러워지는 것과 같이 나이를 먹으면 몸도 자라고 마음도 자라서 나이를 먹다고 표현하는 것일까. 떡국을 먹으며 모두가 한 살을 함께 먹는 우리네 문화 와도 관계가 있을까 생각해 본다. 영어에는 나는 이번 6월에 스무 살이 된다.라는 표현이 있지만 우리 말로는 그렇게 표현하지 않는다. 반대로 외국사람이 우리 문화를 들여다보면 어떻게 태어난 날이 다 다른데 1월 1일에 똑같이 한 살을 먹는지, 아니 한 살 나이 드는지 의아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형님, 동생, 언니, 누나 하는 호칭이 있어서 그것에 대한 족보정리가 인간관계의 첫걸음이 되기에 똑같이 한 살 먹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문화인데, 시어머니도 이름으로 부르는 외국 문화에서는 조금 생경할 법하다. 여하튼, 떡국 때문인지, 어쩐지, 나이를 왕창 먹고 의기양양 의젓해진 둘째가 귀엽다. 우리 집 둘째도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나는 셋째로 자랐다. 언니들과 나이차이가 꽤 있어서 부릴 샘이 없었다. 오히려 아빠의 편애를 받아 언니들의 샘을 샀을 것이다. 그래도 새 옷, 새 물건, 새 책에 대한 로망은 언제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습니다> 체로 바뀐 지가 언젠데 내가 읽는 동화책은 다 <읍니다>로 쓰여 있었고, 보온 도시락은 고장이 나 보온은 안 되고 무겁기만 했고, 우산은 부러지거나 찢어져 있기 일쑤였는데도 새 물건을 가지기는 쉽지 않았다. 언니들이 쓰던 것이 있으니. 그걸 생각하면 우리 집 둘째의 샘 부리는 마음이 이해가 간다. 오히려 그렇게 큰 소리로 자기주장을 하고 쿨하게 돌아서는 아이가 더 건강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둘째의 샘을 어루만지며, 진짜 다음 설날에 간장 종지에 떡국을 달라 하면 그림책 속 엄마처럼 그렇게 해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 답은 아니올시다 이다. 설거지 네가 할 만큼 크면 그렇게 떠먹으렴. 그때 되면 아마 나이가 아쉽진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