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에 대하여

형제여, 너희도 다르단다.

by 멋쟁이 한제

1학년 큰 아이가 장애이해교육이라는 학교 수업을 받았다. 무슨 내용인고 물어보았지만 무뚝뚝한 아이에게서는 몰라, 깜빡했어, 하는 심드렁한 대답만이 돌아온다. 새삼스럽지도 않은 무뚝뚝함이지만 이럴 땐 참 섭섭하다. 나는 미주알고주알 떠들어 얘기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공과 사를 이렇게 칼 같이 구분하는 아들이라니. 나중에 올라온 활동 사진을 보니 안내견에 대해 배우고 안내견 그림에 색칠을 해주며 시각 장애에 대해서 배운 것 같았다. 어디까지나 나의 추측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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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보이거나 안 보이거나>라는 그림책을 읽었다. 우리 세상에서 당연한 두 눈, 두 발, 두 손을 가진 아이가 우주를 여행하며 다양한 형태의 사람을 만나는 이야기이다. 눈이 세 개인 나라에 가서는 너는 등을 못 보는 거야? 불쌍하다.라는 말을 듣기도 하고 입이 긴 사람들의 세상에서는 호롱병에 담긴 음식을 먹을 수 없어 불편을 겪기도 한다. 만약 보이지 않는 사람들만 사는 별이 있다면 무엇이든 만져보고 메모도 점토로 이용할 것이고, 보이지 않아서 할 수 없는 일이 많지만, 보이지 않아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거라고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우리는 원래 다 다르다. 덩치도 다르고 얼굴 생김도 다 다르고, 같은 손을 가지고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누구는 피아노를 치고, 누구는 요리를 하고, 누구는 손 모델을 하고, 누구는 권투를 하고. 그런 각자의 신체적인 특성을 책에서는 각자 타고 있는 탈것에 비유했다. 누구는 자동차, 누구는 킥보드, 누구는 외발 자전거, 누구는 보트를 타고 있는 것과 같다고. 각자의 장단점과 속마음은 그 탈것을 계속 타고 있는 주인 밖에 모른다고, 같은 자동차를 타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면 익숙하고 안심이 되지만 처음 보는 외발 자전거를 타고 있는 친구를 만나면 긴장이 되고 겁이 난다는 아이들의 마음도 알아준다.


아이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닌 사람이 걷지 못한 다는 것, 듣지 못한 다는 것, 보지 못 한 다는 것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걸음을 힘들어하시고 안경이 없으면 작은 글씨를 못 읽는 할머니, 이제는 나이가 많아 사람이 들어오는 소리도 듣지 못하는 친정의 14살 된 강아지를 보아와서 그런지 나이가 들면 그렇게 된 다는 것은 잘 인지하지만 장애가 있어서, 몸이 아파서 그럴 수 도 있다는 사실은 금시초문인 듯 놀라워했다. 그런 친구들도 많이 있다고, 여러 가지 탈 것을 타고 있는 친구들의 그림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네가 잘하는 것, 다른 친구들이 잘하는 것, 너의 특징, 다른 친구들의 특징을 이야기해 보고 서로 다름을, 달라도 괜찮음을 이야기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예민한 사람, 불편함이 많지만 그래도 주위를 속속들이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이지. 몸이 튼튼하지 않지만 그만큼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는 사람이니 털털하고 튼튼한 사람을 부러워만 할 일은 아닐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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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권의 탈무드 동화 <임금님의 경비원>이 있다. 맛있는 나무 열매를 누가 훔쳐 먹을까 염려한 임금님이 열매를 훔쳐 먹을 일이 없는 장님과 앉은뱅이를 나무 경비원으로 뽑았는데 장님이 앉은뱅이를 목마에 태워 열매를 따먹는 이야기이다. 요점은 몸이 불편한 사람 이이라도, 즉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어도 다른 이와 힘을 합치면 큰 일을 해 낼 수 있다는 협동의 가치에 관한 것인데 앉은뱅이와 장님이라는 단어가 조심스러워서 걷지 못하는 사람, 눈이 안 보이는 시각장애인이라고 설명해 주며 읽었다. 의외로 아이는 이 책에 등장하는 장애에 관해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임금님과 똑같은 한 캐릭터로 말이다. 장애라는 용어와 특징을 조심스러워한 것은 어른인 나였고 아이들은 책의 요지인 협동의 가치를 주제로 잘 받아들였다. 이럴 때는 참 신기하다. 아이들의 시선에서 문해력이 부족한 사람은 엄마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포인트를 놓치고 엉뚱한 키워드에 주목하다니. 세상은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살아가는 곳이라는 메시지를 아이들은 잘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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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의 샘부림은 왕비도 미치게 만든다.

마지막 책 <샘쟁이 왕자>가 있다. 툭하면 샘내는 두 왕자님들이 똑같이 생활해 보도록 함으로써 형과 동생은 다를 수밖에 없고 달리 대하는 것이 차별이 아니라는 요지의 동화책이다. 요즘 사사건건 샘을 부리는 두 형제를 둔 나는 샘쟁이 왕자를 키우는 왕비의 멘털이 탈탈 털린 표정에 큰 공감을 했다. 우리 집 아이들과 똑같다. 정말 사사건건이다. 장난감 개수 하나하나, 책을 누구 책만 먼저 읽어 준다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하게 하는데도), 티브이도 누구 티브이가 (아니, 신비아파트, 파워레인저에 니 거 내 거가 어딨 어?) 더 길고 내 건 더 짧다며 샘을 부리는데 정말 미치고 팔짝 뛰게 만든다. 보통 떼를 부리는 건 둘째이다. 이제 조금 커서 형아 물건, 학교 다니는 형아에게 아무래도 신경을 더 쓰는 것을 귀신같이 알고는 사사건건 샘을 낸다. 하교 시간이 빠른 형아와 서너 시까지 유치원에서 있는 동생을 똑같이 신경 쓸 수는 없는데 형아가 학교에서 일찍 오는 것까지 샘을 내니, 불쌍한 건 나라는 생각만이 들뿐이다. <샘쟁이 왕자>에서는 뭐든지 똑같이 하게 하는 설루션을 내려준다. 동생은 형아가 하는 어려운 공부도 해야 하고, 형아는 자기 싫은 낮잠도 자야 한다. 형과 동생은 레벨이 다르니 다른 대접을 받는다는 것, 그것이 차별이 아니고 수준별 맞춤 돌봄이라는 걸 깨닫는 듯했지만 마지막 장에 이르러 형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형아한테 더 많이 뽀뽀해 줬어, 아니야 너한테 더 오래 뽀보해 줬어하면서 말이다. 아마 이 책의 결말이 그래서 형제는 다시는 샘을 부리지 않았답니다.로 끝이 났으면 비현실의 끝판왕이라며, 아이를 키워 보지 않은 작가가 분명하다고 지청구를 늘어놓았을 텐데 현실적이면서도 귀여운 결말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당연한 세상에서 당연하게 살던 첫째는 장애 이해 교육이라는 걸 받을 만큼 자란 형아가 되었고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자라던 둘째가 어느덧 커서 형과 내가 다름을 인지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아이들은 점점 나의 품을 떠나 여러 사람이 함께 사는 세상으로 발을 디딜 것이고 그럴수록 틀림과 다름을 정확히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1학년인 아이는 쉬는 시간이며 자유놀이 시간에 종이접기 하고 책을 보며 혼자 노는 일이 많다고 한다. 선생님께서는 그 부분이 염려가 되어 지난 상담 때에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친구가 없는 사람은 왜 친구가 없을까요?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에 다른 친구들은 나쁜 말을 해서요, 친구를 때려서요라고 보통 얘기 하는데 우리 아이는 그냥 혼자가 편해서 친구가 없을 수도 있어요.라고 이야기를 해서 깜짝 놀라셨다고. 혼자 논다고 하니 덜컥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친구가 없는 사람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았다는 점이 기특했다. 꼭 친구가 많아야, 친구들과 많이 어울려야 좋은 건 아니니 자기만의 특징을 단단하게 가지고 학교 생활을 이뤄나가길 바란다.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집에서 충분한 안정감을 주는 것 하나일 뿐.


심오한 철학과 가치를 담은 그림책을 아이들과 읽으며 곰곰 생각한다. 어릴 때는 그냥 지나치며 읽었을 책들을 엄마가 되어 너희들과 함께 읽을 기회가 생겨 참 좋다고. 마흔에는 니체를 읽는 다지만, 내 수준에서는 그림책으로도 충분하다. 니체를 읽는 마흔도 있고, 그림책을 읽는 마흔도 있는 법. 서로 다름을 이렇게 또 경험하고 받아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