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팝콘이라는 그림책을 읽었다. 무지개다리를 건너 떠나는 반려견을 그리는 주인의 글과 그림이다. 그냥 강아지 이야기인 줄 알고 읽다가, 유난히 기분이 좋던 어느 날 주인을 잃어버리고 결국엔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강아지 이야기임을 알고는 코끝이 찡해졌다. 개에 대해서는 나도 할 말이 많다. 지금은 비록, 아들 둘 건사하느라, 게다가 둘째가 개털 알레르기가 있어 개가 있는 친정에 다녀오면 눈이 빨개지고 벅벅 긁는 바람에 개 키우는 것은 엄두도 못 내지만 말이다. 이제 다시 개 키울 일이 있을까 싶다. 아들 둘에게 내 손이 안 갈 날이 언제 오나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또 내 손이 가야 하는 존재가 들어온 다는 것은 별로 내키지 않는다. 이 책을 읽는데 나도 강아지를 사랑하던 옛 시절이 있었음이 기억이 났다. 신랑을 처음 만났을 때, 둘 사이의 공통된 화제도 다름 아닌 개였다. 그렇게 개를 사랑하던 남녀가 부부가 되어 아들 둘을 키우며 다신 개 키울 일은 없을 것 같다는 것에 동의한다. 세월과 육아는 사람을 이렇게도 바꾸어 놓았다.
2011년, 그러니까 12년 전에 내가 키워왔던 개들을 추억하며 쓴 글이 있어 브런치에 옮긴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아기 강아지 설이가, 지금 아직 친정에 살고 있다. 귀엽던 아기는 없어지고, 눈도 귀도 침침한 할머니 개가 되었지만 아직 우리 집에는, 그러니까 우리 친정집에는 개가 있다.
우리 집엔 개가 한 마리 있다. 어떤 사람들은 어? 너네 집에 개 키워?라고 하지만 어떤 친구들은 너네 집엔 항상 개가 있었어.라고 한다. 어쨌든 우리 집엔 거의 언제나 개가 있어왔다. 내 기억으로만 쎈, 내리, 복동이, 돔이, 왈왈이, 해미, 똘이, 오이, 설구 1, 설구 2, 설이까지 벌써 몇 마리냐 이게.
나는 개를 참 좋아한다. 비록 스물여덟을 바라보고 있는 나이이지만, 집에서는 막내라서, 달리 말하면 서열이 꼴찌라 개들도 나를 개무시하는데 그래도 개가 좋아 죽겠다는 나를 보고 우리 아빠는 내가 전생에 개였나 보다라고 하신다.
우리 큰언니는 현 언니의 남편이 사주었던 개를 이뻐했고, 작은 언니는 대부분의 동물들을 별로 안 좋아하고, 우리 엄마는 개를 보살펴주고, 놀려먹기도 하는 개한테도 엄마이다. 그리고 나는 개를 잘 안 보살피면서도 개를 무척 좋아하고, 우리 아빠는 개를 안 좋아하지만 개를 엄청 귀애하신다. 아빠가 어렸을 때 슈바이처 박사 위인전을 읽었는데 그 양반이 아프리카에 살면서도 사람을 해치는 모기는 때려잡았어도 하릴없이 윙윙거리는 것들은 아무리 파리 모기라도 때려잡질 않았다나, ㄱ것들도 생명이라고. 나는 별로 공감 가지 않지만 우리 아빠는 그것에 감동을 받아 근 칠십 평생 모든 생명을 귀이 여기신다.
이건 뭐지?
가끔씩 현재 우리 집 개인 설이 물통에 물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말 못 하는 짐승 물 좀 챙겨주는 것이 무어가 어렵냐고 버럭 하는 우리 집 유일한 사람도 아빠다. 사실 설이는 화장실에 들어가 화장실 바닥 물도 잘 핥아먹고 나오는데 말이다. 우리가 자기를 학대하는 것이 아니니, 설이도 가끔 물을 그렇게 먹는 것이 그렇게 서럽지는 않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여하튼 우리 집은 그렇다. 거의 항상 개가 있어왔다.
내 기억 속 첫 번째 개는 쎈이다. 갈색의 그냥 똥개였던 걸로 기억이 나는데 작은 아이였던 나의 품에 한가득 들어왔다. 내가 끌어안고 오물거리던 자갈치를 언니들이 한 개만 달라고 그렇게 졸라도 들은 척도 안 하더니 옥상에 있는 쎈네 집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쎈의 밥그릇에 탈탈 털어 다 주었다는 그 일이 나는 기억나지 않는다. 여하튼 쎈은 손! 하면 손을 주는 개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 집 개 중에서는 유일무이하게 손 개인기가 있는 개였다.
그다음은 내리 라는 치와와이다. 내가 기억하는 내리는 엄청 작고 말랐고 오줌을 질질 쌌다. 아마 강아지의 방광이 약하고 사람을 좋아하면 그러는 경우가 다수 있다는데, 수녀원에서 데려온 내리는 일반인 포함 수도복 비슷한 검은 옷 입은 사람을 유독 좋아해서, (사실은 아무 사람) 누가 들어오기만 하면 기뻐하며 오줌을 질질 쌌다. 싹 닦아놓은 방바닥 제일 뜨끈한 곳에 똬리를 틀고 자는 것을 늘 못 마땅해하셨던 나의 외할머니에게 몇 번 스매싱을 당했다고 하는데, 여하튼 그 내리는 내가 다니고 있던 수녀원 소속 유치원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다음은 왈왈이이다. 왈왈이는 아빠 친구 봉록이 아저씨네서 얻어온 갠데 충성심이 대단해서 처음 데려온 아빠한테만 꼬리를 치고 나머지한테는 왈왈거렸다. 그래서 왈왈이이다. 왈왈이는 오자마자 뛰어다니며 짖어서 언니는 책상으로 도망쳐 앉아 겁내했고, 나는 왈왈이를 잡으러 같이 뛰어다녔다. 왈왈이한테는 평생 잊지 못할 미안함이 있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내가 왈왈이를 끈에 묶어 데려다 오는 길, 1층에 있던 엘리베이터가 2층으로 올라가려고 문이 닫기는 중이었고, 나는 개 끈을 놓고 엘리베이터 밖에 있었는데 끈의 사람 손 잡이가 엘리베이터 안 쪽에 들어가 버렸는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올라가자 왈왈이 목줄이 엘리베이터 사이에 낀 채로 엘리베이터에 끌려 대롱대롱 목 매달린 채로 올라가 버렸다. 내가 우리 개 죽는다며 소리를 지르자 경비아저씨가 목줄을 끊어서 왈왈이를 내려주셨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다음은 해미다. 해미는 집안에서 자랐지만 묶여 있었다. 사료가 아닌 밥을 먹었고 자기 꼬리를 물려고 한 자리에서 뱅글뱅글 도는 짓을 하다가 포기하고 밥을 먹고 자곤 했다. 해미는 하얀 똥개였는데 이뻤다. 나는 그 이쁜 해미를 집에 놀러 오셨던 한 수녀님의 꼬임으로 (꼬임이었는지, 계획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기니픽 몇 마리와 바꾸어 버렸다. 그 기니픽들은 찍찍찍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쌀알 같은 똥을 쌌고 주인을 못 알아보고 당근만 먹었다. 나는 곧 그것들을 해미와 바꾼 것을 후회했는데 때는 이미 늦은걸, 해미도 그렇게 내가 다녔던 수녀원 소속 유치원 마당으로 갔고 몇 달 후 찾아간 나를 보고 꼬리를 치긴 했지만 내가 다가가자 지 밥그릇을 에워싸며 나에게 으르렁 거렸다. 그리고 그 해미와 바꾼 기니픽들은 엄청나게 더웠던 1994년 여름에 더위를 먹고 모두 죽었다.
그다음은 똘이다. 똘이가 왜 똘이냐 하면 똘이를 탐탁잖아 했던 언니가 갑돌이라고 이름 지어준 것이 갑돌이, 갑똘이, 똘이 이렇게 굳어진 이름이다. 똘이는 하얀색 치와와 잡종이었는데 나를 제일 좋아했다. 나만 졸졸 따라다니고, 잘 때 내 팔 베고 자고, 내가 너 저리 가! 하면 낑낑거리며 울던 나의 충견이었다. 그래서 나도 똘이의 똥도 잘 치워주고 목욕도 잘 시켜주었다. 똘이를 이모네 시골에 데려다 놓고 오던 길을 잃을 수 없다. 왜 똘이를 거기에 놓고 와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이모네 가서도 잘 놀다가 자기를 놓고 엄마 차에 오르는 나를 보며 배신감과 황당함과 두려움에 젖어 낑낑 울던 똘이, 나는 그걸 놓고 와서는 며칠 동안 통곡을 하고 울었다. 우리 엄마는 원래 내가 울어도 다정히 달래주시는 분이 아니신데, 그때는 울게 내버려 두고, 달래주시고 그러셨다. 그 이후에 이모가 똘이를 어디 다른 집에 줬다는 이야기를 듣고 많이 슬퍼했는데 어느 날 큰 언니가 똘이가 돌아다니다 차에 치어 죽었다는 얘기를 실수로 나에게 해 주었고, 언니는 엄마에게 엄청 욕을 먹었으며 나는 또 며칠을 내리 울었더랬다.
똘이 이후 개 없이 몇 년을 지내다가 어느 희끄무레한 눈이 날리던 겨울 첫 번째 설구가 등장했다. 설구는 아주 능청스럽고 코믹한 캐릭터를 가진 개였다. 우리 식구들의 서열을 금세 파악해서 아빠, 엄마 언니들, 나 순서로 존중했고, 그 반대 순서대로 무시했다. 또 설구는 워낙 선하고 사람 좋게, 아니 개 좋게 잘 생겼었는데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 성질이 어찌나 좋은지 컴퓨터 고치러 온 아저씨나 택배 아저씨 등 낯선 사람을 최고로 잘 따랐었다. 엄마는 그런 설구에게 미치다 빵꾸날 놈이라고 욕하다가도 딴 사람들 앞에서는 우리 집 장동건이라고 치켜세웠다. 설구는 아주 잠깐 미야라는 고양이와 같이 살았었는데 그때가 아주 가관이었다.
미야는 날쌔고 도도하고 영리했고, 설구는 겅중거리고 소갈머리 없이 어리숙했다. 미야는 도도한 고양이답게 먹을 것에도 초연해서 밥그릇에는 고양이 사료가 그득히 남아있었는데 설구는 항상 그것을 훔쳐먹고는 트림을 꺽 해서 들통이 났다. 설구가 미야랑 친해보자고 킁킁 들이대면 미야는 항상 시퍼렇게 눈을 부라리며 따귀를 탁 때리고는 설구를 풀쩍 뛰어넘어 꼬리를 척 하니 올리고 요염하게 걸어갔고, 설구는 영문모를 따귀를 한 대 얻어맞고 어벙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때면 설구가 옆집 계집애한테 맞고 들어온 아들내미 같아서 너도 미야를 한 대 때리라고 편들어 주곤 했다. 그럼 뭐 하나, 설구는 개인걸. 햇볕 드는 마루에 벌러덩 누워 눈을 비비고 몸을 베베꼬며 고양이 하는 짓을 따라 하다가 엄마한테 소락대기를 듣고는 민망한 듯 공연히 컹컹 짖던 개다, 개.
설구, 설구. 설구는 나랑 장난치고 놀던 어느 날 밤 요놈! 하며 들어 올린 내 손 안에서 정말로 꼴까닥 숨을 거두었다. 사인은 심장마비로 추정된다. 생전에 다리를 퍼 벌리고 앉아서 유달리 숨을 씩씩 거리고 쉬던 일이 잦았던 설구는 심장이 튼튼한 개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설구, 설구, 정말 즐거움 많이 주고 이쁜 짓 많이 하고 간 개다. 나는 이제 설구가 내 손에서 죽었다는 사실이, 내 탓이 아니라 그냥 그럴 운명이었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데, 설구에게 미안한 건 죽어 넘어가는 모습이 무서웠던 나머지 다가가 끌어안지 못하고 뒷걸음질 쳤다는 것이다.
첫째 설구 다음에 온 녀석은 설구를 기리는 마음으로 이름도 그대로 설구였다. 설구처럼 성질 머리 좋을 줄 알았고 설구처럼 배꼽 빠지게 웃길 녀석일 줄 알아서 이름도 설구였는데 둘째 설구는 첫째랑은 완전히 딴판이었다. 나는 사람마다 성격 다르듯 개들도 그렇다는 걸 그때 뼈저리게 느꼈다.
그 녀석은 어찌나 성질이 앙칼지고 지랄 맞은 지 매사에 아르릉 거리고 이리링 거리고 물고 뜯고 주인들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는데 내 왼손 엄지 손가락에는 그 둘째 설구에게 물려서 생긴 상처가 점이 되어 남아있을 정도다. 그 녀석에게는 아픈 과거가 있었는데 바로 그 녀석 엄마가 그 녀석과 형제들을 낳은 후 바로 죽었다는 것. 태어날 때부터 몸집이 유달리 작았던 그 녀석은 젖을 얻어먹기 위해 다른 개에게 갔다는데 몸집에 밀려 젖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성질 하나는 더러워야 했을 거라는 게 우리 온 가족들의 추측이다. 우리 아빠는 그 더러운 승질머리마저도 귀이 여기시며 조실부모한 그 녀석의 아픈 과거를 쓰다듬어 주셨다. 그래도 어찌하나 그 녀석은 애완견인걸, 모든 사람을 물고 뜯고 잡아먹을 듯이 짖어대는 그 녀석을 아파트에서 계속 키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오래지 않아 강아지를 많이 키웠던 시골 이모집으로 보내졌다. 우리 집에 온 지 일 년 반 만이었다. 녀석의 이름을 설구라고 지어주며 설구라는 이름 안에 담긴 숨은 뜻들을 그 녀석에게 기대했던 것이 지금 생각하면 참 미안하다. 마치 내 이름을 엄마 맘대로 혜교라고 지어놓고, 저 혜교는 왜 얼굴이 안 이쁘지, 피부는 왜 더럽지, 한다면 얼마나 황당하겠느냐 말이다. 그런 개인의 정체성을 간과했다는 점이 매우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우리 아빠도 그 설구 생각에 맘이 짠 할 때가 있으신가 보다. 가끔씩 그 설구 이야기를 하신다.
둘째 설구가 그렇게 이모집에 가고, 이모집에 있던 말티즈 강아지 새끼가 우리집에 왔다. 들큼하니 젖내가 나던 손바닥만 한 여자강아지였다. 강아지 이름은 설이가 되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는데 여느 때처럼 나는 성당에 갔다가 맥주를 한 잔 마시고 밤늦게 들어왔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나를 보고 설이는 그대는 누구세여?라는 눈빛으로 갸우뚱갸우뚱 거실에서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아이고 강아지 왔네, 하며 반기자 아장아장 뛰어왔는데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번쩍 안고 쓱쓱 쓰다듬어 안아주었다. 바로 그날 아침에 둘째 설구를 보내며 통곡했던 나는 지조 없이 또 새 강아지를 품어버렸다. 설이는 아주아주 순하고 겁이 많다. 엄마가 장난으로 이놈 하면 첫째 설구는 꼬리를 살랑 거렸고, 둘째 설구는 이리링 이리링 잡아먹을 듯 달려들었는데 설이는 겁이 나서 눈을 화등잔만 하게 뜨고 도망을 간다. 또 설이는 조금 멍청해서 여기저기 구박을 달고 산다. 우리 식구들은 이 놈이 구박을 받을 때마다 눈을 화등잔만 한 게 떠서 눈도 커지고 예뻐졌다고 생각한다. 우리 설이, 다른 애완견들은 하나쯤은 있다는 옷 하벌도, 장난감도 없지만 아빠의 공평하고도 극진한 동물 사랑 안에서 강아지용 통조림이 떨어지는 날 없이, 강아지용 물통에 물 떨어지는 날 없이 아주 잘 살고 있다. 그놈의 팔자가 오죽 부러웠으면 나도 다시 태어나면 애완견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을까, 일도 안 하고 공부도 안 해도 되는 그런 팔자 말이다. 그런 말을 하는 내게 우리 언니는 너 그러다 시골 할머니네 진순이로 태어난다, 진순이 이년아~ 밥 쳐 먹어라 이년아~ 하며 발로 뻥 차이는 진순이,라고 하며 킬킬 웃었다.
우리 집엔 강아지가 있다. 그리고 나는 개를 좋아한다. 조금은 어리숙하고 부족한 그들, 나는 개가 그냥 좋다. 아빠 말마따나 전생에 개였나 보다. -2011년 씀-
기록은 위대하다. 12년 전에 이렇게 시시콜콜히 기록 해 두지 않았다면 나는 내 인생의 한켠을 차지하던 이 개들과의 추억을 다 잊었을 것이다. 12년 전 글을 브런치에 옮기며 옛 생각에, 옛 추억에 잠시 행복했다.
무지개다리 건너에서, 우리 아빠의 공평하고 극진한 동물사랑 안에 이 개들이 모두 행복하게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