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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Aug 26. 2022

계란밥에 반찬까지 먹는 건 사치이지만

반찬은 실력이 아닌 노력, 정성이 아닌 노동.

애들이 저녁으로 계란밥을 해 달라 한다. 뭐? 저녁으로 갈치도 구웠고 오뎅국도 있는데 계란밥을? 계란밥은 보통 주말에 신랑이 애들 밥 차려줄 때 유용하게 사용하도록 평일에는 조금 자제하고 양보하는 편이다. 더군다나 오늘은 반찬이 있는데? 무려 생선! 그런데 딱 집어 계란밥이 먹고 싶다니, 해 드려야지 어쩌겠나.


계란 인심 후한 엄마.

계란 밥을 먹일 땐, 정말 계란밥만 먹인다. 우리집 에는 밑반찬이 별로 없다. 나는 밥과 반찬을 많이 먹지 못 하는 (소화가 잘 안 된다) 사람이고 신랑은 집 밥을 한 끼 먹을까 말까한 사람이며, 애들은 유치원 점심을 먹고 오고, 쌀 보다는 면을 좋아하는 면돌이들이다. 더군다나 냉장고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온 반찬은 인기가 확 떨어지다 보니 매일매일 메인 음식을 하나 준비해서 그거 위주로 먹고,남으면 그게 반찬이 되어 그 다음 번에 사이드 에 오른다.


나는 원래도 식사로 꼭 밥을 먹어야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서양요리(피자, 파스타), 중국요리(짬짜면, 탕수육), 일본요리 (,회는 비싸다, 주로 우동) 으로도 식사를 잘 챙기는 사람이었고 그게 여의치 않다면 샌드위치나 삼각김밥으로 먹어도 크게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매일매일 음식이 바뀌니 그 밥에 그 반찬 보다는 훨씬 다채로운 식생활을 즐겼다고 자부한다. 무조건 한식이 건강하다는 생각도 반만 동의한다. 적당히 먹으면 뭐든지 건강하다. 많이 먹어 문제이지 밀가루와 쌀밥, 가끔 먹는 패스트푸드는 괜찮지 않나.


계란밥의 기록들, 대부분 아빠가 많이 차려줘 사진이 많이 없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니 사정이 달라졌다. 아이에겐 특히 이유식과 초기 유아식을 먹었던 아이들이겐 국수와 피자등으로 끼니를 챙겨주기에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모든 소아과 의사와 각종 엄마들을 위한 소식지에서 간을 하지 않고 채소와 고기를 적당히 잘게 다진 쌀 죽을 아이에게 주라 했다. 도대체 쌀이 주식이 아닌 나라의 아이들은 무얼 먹고 사나요? 구글링을 해보니, 프랑스에서는 생후 6개월부터 소량의 버터를 사용한다 했고, 그 이후로는 유아식과 성인식의 차이가 거의 없다고 했다. 매운 음식이 없고, 식사 문화와 예절에 엄격한 곳이니 어른과 아이가 같은 음식을 먹는다고. 그 밖에 일본은 중기 이유식 정도의 월령이 되면 우동국수도 아이 손에 쥐어 주는 것 같았고 (우리 나라에선 이유식에 버터와 밀가루는 아니된다.)미국은 바나나와 아보카도, 그리고 대기업의 캔, 병조림 음식을 이유식으로 주로 주는 듯 했다. 알러지 문제로 외국도 쌀 미음을 먹이는 나라들이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엄마가 쌀을 불려서 갈아서 갖은 채소를 다져서 눋지 않게 푸욱 끓인 죽을 끼니마다 (아이의 끼니는 대여섯끼) 먹이는 나라는 흔친 않은 듯 했다. 감자도 우리는 감자 미음, 감자 죽을 주는데 외국에서는 으깬 감자에 우유, 생크림, 치즈도 소량 넣기도 하더라. 그렇게 해서 아기도 먹고, 형아도 먹고, 어른도 먹는다. 그 나라엔 그 나라 음식을 소화 시킬 수 있는 유전자가 있으니 가능한건가? 그럼 해외로 입양되어 외국 부모 밑에서 크는 한국아이들은? 그제서야 어른들이 누누히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먹고 아프지 않으면 괜찮은거다.


이유식의 시간들, 준비하느라, 먹이느라, 치우느라, 씻기느라 사중고를 치르고 나면 기운이 쭉 빠지던 시기. 그걸 하루에 다섯번씩 했다.


아이 밥에 대한 고민은 쌀을 주로 먹여야 하는 이유식부터 시작 되었고, 지금은 반찬이란 이름으로 바뀌어 매일 나의 심기를 건드린다. 오늘 어묵국에 생선을 미리 준비 해 둔 이유도 요 며칠 저녁 식사로 쌀을 제대로 안 먹인 것 같아서 였다. 물론 오늘도 유치원에서 미역국, 닭고기 조림을 잘 먹고 온 아이들이다. 그런데 뭐라? 갈치 구이와 오뎅국을 앞에 두고 계란밥????? 그래, 먹자. 계란밥을 반찬과 함께 먹는건 사치라고 생각 하지만, 그까짓 사치. 엄마가 그 정도는 플렉스! 할 수 있어.


아이를 키우며 장족의 발전을 한 생선 바르기. 예전엔 등짝 스매싱 맞을 만큼 생선을 못 발라 먹었다. 아직도 갈치 옆구리는 너무 고난이도이다.


나는 한가지 요리를 정성껏 만들어 낼 수는 있지만, 상다리 휘어지게 여러가지 반찬을 휘감은 한식을 한 끼에 차려내는 내공은 없는 엄마 이다. 사실 그런 초능력에 가까운 능력은 별로 갖고 싶지 않다. 손이 아무리 빨라져도 하루 종일 반찬만 해야 할 것 같은데, 한 끼에 다 먹을 수 있는 양도 아니고 냉장고에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며, 냉장고 휴식을 마친 반찬들은 전렌지에 들어갔다 나와도 묵은 반찬이 되어 큰 환영을 받지 못한다. 더군다나 상다리 휘어지게 차리려면 아후, 나물 다듬고 데치고 꼭 짜서 손목 나가게 무쳐봐야, 그저 사이드 디쉬이다. 반찬 귀한걸 이제서 알게 되었다.


백반집에 가도 밑반찬으로 깔리는 반찬들을 보는 것이 마음이 편하지 않다. 이 반찬을 하느라고, 흙 묻은 나물들을 사다가 다듬어서 씻어서 데치고 온갖 양념들로 조물조물 무쳐 내었을 이모님의 손이 생각난다. 다 먹고 싶은데 나는 위가 작아 그럴 수 없으니 아예 손도 대지 않고 주방으로 반납하고 싶지만, 그래봐야 어차피 반찬 재활용을 할 수 없어 쓰레기통으로 향하게 될 터. 그래서 최대한 많이 먹는다. 그 손의 정성이 이제 눈에 보인다.


나는 한 끼에 맛있는 음식 하나 정도는 해 줄 수 있는 엄마다. 우리 시어머니처럼 기본 김치 2종에 여러 종류의 밑반찬, 국 한 종류 (이상), 아이들을 위한 계란 후라이나 불고기, 아니면 생선구이에 김까지 내어 주시며 먹을 것이 없다고 하시는 엄마는 죽어도 될 수 없다. 계란밥에 갈치구이, 오뎅국을 내어 주며 이렇게 생색을 내는 나로서는 상다리 휘어지는 한 상은 이 번 생엔 불가능 하다.


시어머님의 밥상


반찬. 분명 요리인데 왜 반찬이라고 하는 지 모르겠다. 그것도 왜 밑 반찬이라고 하는지. 돈을 주고 주문 한 메인 메뉴가 아니니 남기도 엄청 남을 터. 신랑이랑 식당에 갈 때마다 말한다. 나는 이 남아서 버려지는 나물들이, 콩자반, 황태무침 이런 반찬들한테 너무 죄송하다고. 이거 만드느라 주방 이모님은 허리 아프고 손목 아팠을 텐데, 이렇게 대접도 못 받고 버려지는 게 너무 미안해서 진심으로 집에 싸 가서 한끼 더 먹고 싶다고 말이다. 아니면 외국처럼 돈을 주고 구입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기도 했는데, 신랑은 세상 차분한 어조로, 우리나라 정서에 맞지 않다며 그렇게 한다고 음식 단가를 낮춰야 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건 식당 사장님도 원하지 않는 일이 될거라고 나의 열불을 조금 가라앉혀 주었다.


말은 이렇게 해도 전라도 식당의 밥상 앞엔 만연의 미소가 떠오른다.  큰 아이 만삭 여행때 마지막으로 누려본 여유있는 식사들. 누가 알았나. 저게 마지막일줄. 적어도 지금까지는


반찬 했는데 (고작 갈치구이에 어묵국) 계란밥 먹은 것이 그렇게 억울한지, 그 한끼를 먹으며 반찬에 대한 사유를 한다. 반찬. 그것은 실력이 아니라 노력이고, 정성이 아니라 노동이다. 당연한 게 아니다. 식당에서든 엄마든 이모든, 한 상 가득 밥을 차려 주시면 남기지 말고 감사하게 먹자. 그게 도와주는 거다. 아니, 도와주는건 아닐 지도 모른다. 잘 먹어서 기뻐하시며 아무리 힘들어도 다음에 또 그렇게 차리게 될 테니 말이다.  


최선을 다한 한식 밥상인데 어째 다 거기서 거기다.



애들은 어묵국이라는데 나는 계속 오뎅국이라 한다. 습관을 바꾸기는 쉽지 않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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