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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Oct 26. 2023

뜨거운 것을 잡는 능력.

어느새 갖게 된 초능력들 (feat. 무빙)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의 주먹밥을 만든다. 맨 프라이팬에 꼬마김밥을 싸고 남은 김 몇 장을 올려 바삭하게 구워 부수기 쉽게 만드는 동안 냉장고에서 찬 밥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뜨겁게 데운다. 2-3분 후 바삭해진 김을 그릇에 넣고 장갑을 끼고 부수는데 전자레인지가 땡땡 울리고 샤워를 마친 신랑도 나와서 서성이길래 밥 좀 꺼내달라고 부탁했다. 선뜻 다가가더니 이내 앗뜨거! 하며 뒤로 물러서는 신랑, 밥그릇이 너무 뜨겁다며 귀를 만졌다가 찬물을 틀었다가 호들갑이다. 내가 밥그릇을 꺼내러 가니 뜨겁다고 손사래를 친다. 나는 손사래를 귓등으로 넘기며 맨손으로 밥그릇을 들어낸다. 그런 나를 보는 신랑의 눈빛은 흡사 기인을 바라보듯, 초능력자를 영접한 표정이었다. 안 뜨거워? 뜨겁긴 한데 그 정돈 아니야.


아줌마가 되고 나서 생긴 능력 중에 하나가 뜨거운 것 만지기이다. 이렇게 갓 데운 뜨거운 밥공기를 맨 손으로 든다던지, 갓 삶아낸 뜨거운 당면을 휘휘 저어가며 잡채를 무친다던지, 갓 구운 생선의 가시를 맨 손으로 바른다던지, 김이 폴폴 나는 치킨의 살을 발라낸다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예전에 우리 엄마가 그랬는데, 내가 뜨겁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맨 손으로 와서 만졌었는데 이젠 내가 그런다.


최근에 디즈니 드라마 무빙을 보면서 초능력에 대한 상상으로 한동안 즐거웠다.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초능력도 유전이 된다니, 같은 능력을 가진 조인성과 양동근의 조상의 조상의 조상이 어쩌면 같은 사람일까, 2000년대 초반의 논스톱에 나왔던 두 배우들까지 떠올리며 재미있게 보았다. 초능력, 아이들은 열광하는 슈퍼 히어로의 모습이지만 나는 나이가 들어 그런지 초능력을 갖고 싶지는 않다고 느낀다. 있어야 뭐 해, 귀찮기만 하지. 하늘을 나는 초능력이라면 교통체증이 있을 때 편하긴 하겠지만 기분에 따라 내 몸도 둥둥 떠야 한다고 생각하면 글쎄, 포커페이스로 절반 이상의 일상을 살아내는 나에게 너무 곤혹스러운 일일 것 같아 그 마저도 사양하고 싶다.


하늘을 날게 해 주는 초능력마저도 사양하고 싶은 나인데, 뜨거운 그릇을 들어내는 능력을 인정받으며 약간의 초능력자처럼 보이게 된 오늘 아침의 일이 영 마뜩잖다. 왜 이런 능력이 생겼을까.


아이를 낳고 아줌마가 되며 생긴 능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예전에는 어림도 없던 무거운 물건 드는 능력도 업 되었다. 수박 한 덩이를 어떻게 들고 가냐던 아가씨는 뱃속에 수박 한 덩이를 넣고 다니는 것과도 같은 임신 기간을 두 번 거쳐 애 엄마가 되더니, 간장, 우유, 세제등의  액체류가 가득 담긴 장바구니를 한쪽 어깨에 메고, 그 손으로 계란 두 판을 들고, 나머지 한 손으로 수박 한 덩이를 들고 계단을 걸어 올라올 수 있는 능력자가 되었다.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며칠씩 밤 잠, 낮잠을 모두 못 자도 멀쩡한 초능력이 잠시 나타나기도 하고, 잠이 들었다가도 콜록 기침하는 소리에 눈이 번쩍 뜨이기도 한다. 수많은 아이들 틈에서 내 아이를 발견하는 능력, 아이들의 흔한 울음소리 중에서 내 아이의 울음소리를 구별하는 능력도 생겼다. 비위 약하던 모습은 온 데 간데없고 똥, 토, 땀, 쉬, 침, 코가 너무 익숙한 슈퍼 비위를 장착하기도 하였다. 드라마 무빙을 보며 스토리 텔링에 감탄하긴 하였지만 초능력이 굳이 갖고 싶진 않았던 것은 어쩌면 내가 반은 초능력자가 되어서 그런 건 아닐까.

뜨거운 밥공기를 을 맨 손으로 들어내고 참기름과 소금, 통깨를 솔솔 뿌려 꾹꾹 눌러 주먹밥을 만든다. 안 뜨겁냐고 신랑은 계속 묻는다.


뜨겁긴 한데, 그 정도는 아니야, 당신 아내가 아줌마가 다 된 모양이지. 얼른 가, 늦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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