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금치가 제철을 맞았다. 한 단에 만원에 육박하던 추석 물가에서 제철을 맞아 커다란 한 봉지를 사도 부담이 없을 만큼 가격도 내려왔다. 시금치는 내 몸에 잘 맞는 음식이라 활용도가 아주 높다. 약간의 소금과 참기름으로 나물로 무쳐 먹어도 달큰한 맛이 일품이고 구수하게 시금치 된장국을 끓여도 좋고, 바나나와 함께 생 시금치를 갈아서 스무디로 마시기도 한다. 베이비 시금치라는 시금치 여린 잎을 구매해 샐러드로 먹기도 하는데 이 또한 맛이 좋다. 문제는 아이들, 시금치나물을 먹이려면 김밥을 싸야 하고, 시금치 된장국에도 국물만 호로록 먹는 숟가락 위에 시금치를 하나하나 올려주어야 먹을까 말까 하다. 바나나와 함께 간 시금치는 바나나 주스라는데 너무 초록초록하여 반신 반의 하며 한 입 맛보고는 그만이고, 생 시금치 샐러드는 언감생심 말도 꺼내지 못한다.
김밥 싸기는 귀찮고 싱싱한 여린 시금치가 있어 피자를 구워 보았다. 마르게리따 피자처럼? 마르게리따 피자는 싱싱한 바질 잎이 피자 위에 하얀 모차렐라 피자와 함께 올라가지만 이번 홈메이드 피자는 시금치를 철저히 감춰보기로 한다. 소스를 먼저 바르고, 시금치를 한 겹 올리고 그 위로 치즈 이불을 덮는다. 그래도 삐죽삐죽 보이는 시금치 위로는 다진 토마토를 덮고 그래도 나오는 곳에는 슬라이스 치즈를 뜯어서 감춰주었다. 소시지나 베이컨, 다진 고기류가 들어가지 않은 심플한 홈메이드 피자가 완성되었다. 항상 홈메이드 피자를 만들 때엔 이것저것 많이 넣고 싶은 마음에 무너질 듯 무거운 두꺼운 피자가 되었는데 이번에는 시금치 한 겹이 목적이다 보니 얇고 예쁘게 날씬한 피자 완성이다.
아이들은 치즈에 붙은 시금치를 골라내지 않고 (못했겠지) 잘 먹어주었다. 토마토는 원래 좋아하는 거라 접시에 떨어지는 것까지 포크로 콕콕 찍어 잘 먹는다. 피자 테두리에 스트링 치즈를 넣어 치즈 크러스트로 만들어준 부분도 바삭바삭 고소하고 맛있다며 잘 먹는다. 지난번에 막걸리가 남아서 이스트 약간과 함께 피자 도우 반죽을 만들어 남은 반죽을 냉동해 둔 덕에 하루 이틀 전 냉장고로 옮겨 자연 해동한 피자도우 반죽으로 맛있게 구웠다. 이 반죽에 막걸리가 들어갔다고 하니 아이들 눈이 동그래진다. 술을 먹어도 되는 거냐고, 반죽으로 만든 것은 발효되고 숙성되고 오븐에서 고온에 익으니 알코올이 날아가서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막걸리 냄새가 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풍미가 괜찮은 반죽이 되어 네 식구가 주말 아침 식사로 뚝딱, 맛있게 먹었다.
며칠 전엔 시금치 두 단을 사서 한꺼번에 데쳤다. 두 단이 많아 보여도 데치면 부피가 확 줄어드는데 꼭꼭 짜서 일부는 나물로 만들고 조금은 대파와 함께 된장국을 끓이고 나머지는 냉동실에 넣었다. 냉동 보관한 시금치는 다음에 시금치 된장국을 끓일 때에 간편하게 쓸 수 있어 시금치를 데칠 때에는 넉넉히 데친다. 나물을 꼭 짜는 손목이 하루이틀 시큰거리고 아프긴 하지만, 그래도 그게 편하다. 그렇게 손목 아프게 반찬을 해도 시금치 한 두줄 먹이기 힘든데, 피자로 만드니 거부감 없이 잘 먹어주어 기분이 좋다.
남은 피자를 만들고 남은 생 시금치는 바나나와 함께 갈아서 스무디로 마셔야겠다. 나는 체질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생 시금치를 갈아먹으면 입술 혈색과 눈꺼풀 밑이 빨갛게 돌아온다. 느낌적인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몸이 건강해지고 한결 개운해지는 느낌도 드니 겨울철이 되면 시금치를 자주 사는데, (여름 시금치는 제철이 아니라 왠지 영양소가 덜 할 것 같아 자주 구매하진 않는다) 집 냉장고에 시금치가 자주 떼로 출몰하는 것을 보며 다시 겨울이 왔음을 느낀다.
예전엔 시금치의 제철이 겨울인 줄도 몰랐다. 겨울의 한기를 온몸으로 받아내어 그 강인함을 영양소로 품고 있는 것일까, 유독 겨울이 되면 추워서 어쩔 줄을 몰라하는 나에게, 쭈구리 모드로 하루 종일 몸에 힘을 주고 있어서 그런지 담도 잘 오고 소화도 더 안 되는 나에게 시금치는 값싸고 훌륭한 보약이다.
애들도 잘 먹어주기를, 하지만 제철 시금치의 단 맛까지 알기엔 너희는 아직 어리지. 제철 시금치의 단 맛을 알게 될 즈음이면 아마 내가 시금치 한 입 먹이려 이렇게 저렇게 애를 쓰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 먹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할머니가 되어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