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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Sep 06. 2022

감사히 먹자. 미트볼.

소설 모란시장을 읽으며.

도서관에 갔다가 모란시장이라는 책을 홀린 듯이 빌렸다. 엄마 손잡고 인절미, 핫도그를 얻어먹으며 다니던 모란시장이 떠올라 이 책이 무슨 내용인지 살펴볼 겨를도 없었다. 최근에 본 우리들의 블루스처럼 사람 냄새나는 정겨운 시장 이야기 이겠거니, 생각하며 첫 장을 열었는데 삽교라는 개가 개고기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소설이었다. 나도 모란시장의 그 골목을 지나간 적이 있다. 개들이 고기가 되어 누워있던 그 골목. 그쪽을 지날 때면 그걸 보지 못하게 엄마는 자꾸 내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려고 했던 것 같은데, 나는 내 시야에 들어오는 그 개고기들을 굳이 피하진 않았다. 일부러 쳐다본 것도 아니지만. 그저 왜 소고기, 돼지고기와는 다르게 얼굴까지 그대로, 까맣게 그을린 채로 팔고 있는지, 왜 마트에서는 팔지 않고 여기서만 파는지가 궁금하긴 했는데 아무 에게도 물어보진 않았다. 그저 핫도그, 인절미에 신이 나 모란시장엘 잘 쫓아갔던걸 보면 나는 그렇게 섬세하고 마음 약한 어린이는 아니었나 보다.


우리 고기는 저어기 공장에서 막살다 온 애들이 아닙니다. 시골에서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던 애들이라 아주 건강해서 비계도 별로 없어요. 그들은 물건만 좋으면 죽을 때까지 고기를 먹으려고 할 것이다. 고기는 곧 돈이었다. 돈이 없으면 고기를 사 먹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고기를 사 먹기 위해 돈을 벌고, 돈을 벌면 고기를 사 먹으려고 아우성이었다.  - 본문 중-


단골들은 박사장네 개고기가 맛있는 걸 귀신같이 안다. 다소 속물 같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따지고 보면 나도 그들과 다를 바가 없다. 동물복지 유정란의 노른자가 확실히 탱탱하다고, 풀 먹으며 자란 방목 소의 우유가 훨씬 고소하다고, 1년 미만의 어린양 고기 아니면 냄새 나서 못 먹는다고 말하는 사람, 바로 나.  


10년전 유럽여행 때 며칠 고기 못 먹고 다녔더니 입이 불어나 스테이크를 사 먹었다. 몸이 소고기를 원한다.


아이들의 밥상에는 매일 한 종류 이상의 동물성 단백질을 챙긴다. 고기가 대부분이지만, 생선, 달걀, 아니면 치즈라도 먹이려 한다. 한창 자라는 아이들이고 활동량 많은 머시마들이며, 또래보다 한참 작고 마른 아이들이라 나는 매일 꼬기를 들이대며 밥을 먹인다. 생명 윤리나 동물 복지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툭하면 입이 불어나는 나도, 한참 자라나는 아이들도 채식을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다만, 감사하며 먹기로 생각하고 매일매일 고기를 챙겨 먹고 먹인다. 동물복지 유정란이나 동물복지 고기를 종종 구매한다. 내 몸을 생각해 좋은 고기를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기왕이면 사는 동안이라도 좋은 환경에서 사는 동물들을 소비하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달걀 값으로 만원을 더 써서 닭들이 행복할 수 있다면, 나의 부채감을 조금 덜 수 있다면, 커피 두 잔 안 마시고 좀 더 비싼 달걀을 구매할 의향이 충분히 있다. 지금도 앞으로도. 그것은 고기도 마찬가지긴 한데, 사실 빠듯한 가계부에 요즘처럼 물가가 치솟을 때면 항상 동물복지를 생각하며 장을 보긴 힘들다. 어느 쪽이든, 그래도 감사하게 생각하며 요리하고 음식 하는 것은 다름이 없다.


무거운 마음으로 만들고 맛있게 먹었다. 갈대와 같은 나의 마음.


장미꽃들의 생명을 담보로 먹고사는 나도 나쁜 년이지만, 적어도 그것들에 대해 모욕은 가하지 말자. 미안하게 생각하면서 처먹고 살자고. - 본문 중-


책을 다 읽고 저녁을 준비하는데 하필 미트볼을 만들어야 했다. 어쩐지 꼭 채식을 하고 싶은 날이었는데 주말에 사다둔 미트볼 재료를 오늘은 꼭 요리해야 했고, 아침에 애들한테도 저녁에 미트볼 해주겠다고 말을 해 놔서 어쩔 수가 없었다. 생명 윤리를 생각하며, 동물 복지를 생각하며 미트볼을 치댔다. 냉동식품으로도 잘 나오는 미트볼이지만 가끔은 굳이 만든다. 파는 것보다 소고기 비율을 더 높여서 만들 수 있고, 간도 덜 짜게 조절할 수 있으니 다른 소스와 섞어 요리하기가 좋다. 맛도 더 있고 푸짐하기도 하다. 그런데 하필 오늘이라니, 삽교의 이야기에 눈물짓고 나서 다진 생고기를 한가득 치대려니 마음이 영 좋지 않았다.   

치즈 까지 올린 미트볼 그라탕 완성.


 하지만 영 마음이 좋지 않았던 것도 잠시, 완성된 미트볼 요리엔 무겁던 마음도 스르륵 녹는 법이다. 맛있다. 미트볼 한 조각엔, 돼지고기, 소고기, 계란이 들어갔으니 오늘도 돼지, 소, 닭의 도움을 받아 하루를 살아낼 에너지를 얻은 셈. 고맙다. 동물친구들. 나는 너희에게 해 주는 것도 없이 매일 받기만 하는구나.


오즈의 마법사, 겁쟁이 사자. 성격은 케바케.



언젠가 큰아이가 물은 적이 있다. 엄마. 초식동물은 착해? 아니, 착하고 안 착한 건 동물마다 다른 거라 엄마도 알 수는 없지. 그럼 육식 동물은 나빠? 아니, 나쁘고 안 나쁜 것도 동물마다 달라서 몰라. 아이가 왜 묻는지는 빤히 알 수 있었다. 사냥하는 육식동물은 거의 사납고 나쁘게 등장하기 때문에 아마 어느 동화를 보고 물어본 것이리라. 그래서 묻지도 않은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육식동물이 사냥하는 건 나쁜 게 아니야. 육식동물은 사냥해서 먹는 동물로 태어나서 그런 거야. 사냥하는 동물들은 배가 고플 때 먹을 만큼만 사냥하지 마구 사냥하고 죽이진 않아. 그럼 누가 마구 죽여? (음.. 글쎄.. 사람? ) 마구 안 죽여. 호랑이도, 사자도 배가 안 고플 땐 안 죽인대, 그러니까 육식동물이 나쁜 건 아니야.


적당히, 감사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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