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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Sep 10. 2022

책 읽는 명절-하얼빈, 김훈

기억의 의무


아이들이 조금 더 자라서 그런 건지, 여느 명절 같지 않게 음식에 대한 부담이 적어서 그랬는지 책을 읽고 성당에 가서 한가위 미사를 참례할 시간도 허락된 추석이었다. 우당탕탕 하다 지나는 줄 도 모르게 지났던 명절들보다 훨씬 한가롭다.




기억.

엄마가 나 자는 동안 꼬치전을 다 만들어 버렸다고 울고 불고 난리를 치던 어느 유년의 추석. 녹두전만 두 다라이를 밤새 부치고, 꽃떡 이라고 하는 찹쌀떡전을 두어판 빚어 만들어 여기 저기 나눠주고, 우리는 송편이며 동태전, 꼬치 산적들을 얻어 먹었던 많은 추석들.  


추석 명절의 알파와 오메가는 먹고 마시는 것 같지만, 사실 그 중심에는 기억이 있다고 생각했다. 차례상을 차리려고 전을 부치는 이유도 조상님들을 기억하기 위해서이고, (다만 왜 일면식도 없는 시댁의 조상님들을 기억하려 여자들이 명절 음식 노농을 해야 해서 가정 불화의 씨앗이 되는지가 의문이지만.) 또한 이렇게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누리기까지 땀 흘린 모든 이들의 노고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날이고, 천주교인으로서는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총을 기억하며 혼자서 먹고 마시는 어리석은 부자가 아닌, 나눔을 실천하는 참 그리스도인이 되자고 다짐하는 날이다.  추석은 이 모든 것들을 기억하기 위한 날이다.


연휴 틈틈히 하얼빈을 읽었다. 안중근의 일대기 일거라 생각했는데 이토를 죽이기 전 가장 번민했을 일주일을 핵심으로 담고 있었다. 부끄럽지만 의사 안중근에 대한 기억은 상징적인 것밖에 없다. 조선의 독립운동가, 그의 손바닥, 그의 필체, 사진, 그리고 순국. 하얼빈 일대에 있다하는 안중근 기념관. 도마 안중근이라 해서 천주교 신자임은 알고 있었지만, 당시의 한국 천주교가 그의 거사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는 생각 해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아마도 빌렘이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서 공개적으로 한탄했을 수도 있겠다고 안중근은 생각했다.

저는 10월 26일에 이토를 쏘았는데 저의 처자식이 27일에 하얼빈에 도착했습니다. 저의 처자식이 미리 도착해서 저를 만났다면 저의 마음이 크게 흔들렸을 것입니다. 저는 이 하루 차이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토를 쏘아서 쓰러뜨린 후에 총알이 정확히 들어간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저것이 이토가 아닐 수도 있겠다 싶어서 그 옆에 있는 세 명을 쏘았습니다. 세 명 모두 총에 맞았으나 죽지는 않았습니다. 그 후에 다들 회복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감사할 일입니다. -본문 중-


안중근은 분명하지만 무미건조한 말투로 이야기한다. 장황한 수사를 사용하지 않고, 묻고 싶은 것이 있어도 묻지 않는다. 어떤 사료에서는 그의 성격이 매우 급했으며, 그랬기에 이토를 저격하는 일을 일사천리로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을 거라 하지만 성격이 급한 것이 아니라 판단에 주저함이 없고 신념 앞에서 앞뒤를 가리는 성정이 아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일제 치하의 당시 한국 교회를 대표하던 어른들이 안중군 의사의 의거에 대해 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그릇된 판단을 내림으로써 여러 가지 과오를 범한 데 대해 저를 비롯한 우리 모두가 연대적인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 김수환 추기경의 최초의 안중근 추모미사 강론 1993년


한국 천주교는 살인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그를 교인이 아니라 하고 죄인으로 단정한다. 그리고 1993년이 되어서야 그 거사가 정당방위였음을 인정하고 안중근을 추모하는 미사를 열었다. 그 가족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미루어 짐작조차 힘들다. 일본 제국주의를 지나 친일파가 정권을 이어 쥔 세상을 이토를 죽인 사람의 가족으로 살아 낸다는 건, 남은 가족들은 안중근을, 아버지를, 남편을, 아들을, 형제를 어떻게 기억하며 살아가야 했을까.


추석을 보내며 “기억”이란 단어를 오래도록 곱씹는다. 2022년을 살아가는 나는 1910년에 세상을 떠난 안중근에게, 삶도 죽음도 아닌 삶을 살았을 그 가족들에게 이미 많은 빚을 졌지만, 그 빚을 갚을 길은 그를, 그의 가족들의 삶을, 우리들의 불찰을, 오래도록 기억하는 일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2022년 추석에는 소설 하얼빈을 통해 안중근을 만난 것이 나의 기억이 될 것이다. 추석이 쇨 때마다, 하느님의 은총을, 수확한 이들의 노고를, 복음에 나오는 오늘 죽을 줄도 모르고 당장 자기 배만 채울 생각을 하는 어리석은 부자를 기억하며, 더불어 의사 안중근을 기억하게 되었다는 위로로 지금 책을 읽은 후의 공허함을 조금은 채우려 한다.


https://artsandculture.google.com/asset/%EC%88%9C%EC%A2%85-%EC%84%9C%EB%B6%81%EC%88%9C%ED%96%89-%EC%82%AC%EC%A7%84/NAEyQW4ZMmMjjw

책에 등장하는 사진들을 검색해 보았다. 무능한 통치자를 가진 백성의 설움. 왜 백 년 전 일 같지 않은 건지.



곧 10월, 안중근의 거사를 기억해야겠다.

안중근이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전보를 받고, 뮈텔은 백 년 전 에 처형당한 천주교인 황사영의 죽음을 생각했다.

안중근은 자신에게 영세를 베푼 사제를 향해서 ‘국가 앞에서는 종교도 없다’는 황잡한 말을 하고 교회 밖으로 나가서 이토를 죽였는데, 황사영은 서양 군함을 몰고 와서 국가를 징벌해달라고 북경의 주교에게 빌고 있었다.

두 젊은이는 양극단에서 마주 서서, 각자의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었다. 황사영은 국가를 제거하려다가 죽임을 당했고 안중근은 국가를 회복하려고 남을 죽이고 저도 죽게 되었는데, 뮈텔은 이 젊은이들의 운명을 가로막고 있는 ‘국가’를 가엾이 여겼다. 황사영에서 안중근에 이르는 백 년 동안 두 젊은이의 국가는 돌이킬 수 없이 무너져갔다.
본문중.


시국이 시국이니 만큼.

우리의 나라는 어디에 있는가.  뮈텔이 가엾이 여기던 두 젊은이의 국가가 아직도 가엾은 운명으로 무너져 가고 있음에 슬프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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