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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Oct 21. 2022

할로윈 쿠키- 청출어람 청어람.

너희의 시월은 무슨 색이니.

할로윈 쿠키 꾸미기를 했다. 지난번 미라 파이 만들기로 올해 할로윈 베이킹을 퉁치려고 했는데 아이들의 친구들이 놀러 오기로 했고, 조카에게도 선물 주기로 하여 겸사겸사 또 한판 일을 벌였다. 할로윈 쿠키 꾸미기를 한다 하니 아이들은 대번에 유령 쿠키?라고 기억을 한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유령 쿠키 틀이 올봄에 이사 오면서 사라져 버렸다. 유령처럼. 도대체 어디 갔을까. 분명히 안 버렸는데.


https://brunch.co.kr/@niedlich-na/58



내가 만든 샘플 쿠키

동그라미 쿠키 틀과 하트 쿠키만 있어도 사실 충분하다. 올해 아이들이 미라에 꽂히는 바람에 칭칭 붕대 감은 모양에 눈알만 표현할 수 있으면 그저 기뻐 환호한다. 외눈, 두 눈, 세눈을 박으며 깔깔 웃는 아이들. 엄마는 너희의 반짝이는 네 개의 눈동자를 본다. 장난기가 데글데글한, 몰입도 백 퍼센트의 눈빛. 사진으로 다 담을 수 없는 그 눈빛을 꽁꽁 싸매 마음에 저장을 한다.  



쿠키를 구우며 끝에 남은 반죽 조금을 동글동글 하게 빚어 몰티져스 초코볼처럼 만들어 주었는데 아이들이 갖고 놀기엔 적은 양이었는지 거미를 만들겠다고, 띠용띠용 눈알을 만들겠다고 초코볼을 더 찾는다. 애초에 조금만 만들었던 거라 이제 더는 없다 하니 어제 먹다 남은 뻥튀기 앵두콘을 갖고 와 그 위에 붙이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검은색 초코볼보다 앵두콘의 알록달록함이 더 예쁘다. 종이 호일 위에서는 초콜릿이 예쁘게 굳는다는 것을 알고는 초코펜으로 쿠키 옆에 날개도 표현한다. 초코펜을 쿠키 위에다 해야지 왜 종이 위에 하느냐 물으니 이 상태로 굳으면 날개가 될 거라고 대답하는데 이놈들, 청출어람이나 청어람이라더니, 정말 그렇다. 몇 번 해봤다고 척척이다.


2021 할로윈 쿠킹

둘째는 작년에 할로윈 쿠키를 처음 만들었는데, 그때만 해도 힘 조절이 안 되어 쿠키 하나에 초코펜 하나를 다 짜서 부어 놓기도 하고, 한두 개 만들고는 힘들다며 그저 먹기만 하기도 하고 그랬다. 그러던 녀석이 눈알 하나하나 정성껏 붙이는 모습이 놀라울 따름이다. 손끝이 많이 여물었고 집중력도 좋아졌으며 먹기 말고 꾸미기의 재미를 알아서 이젠 제법 만든다. 물론 집어먹기도 하지만 말이다.


2020년, 쿠킹은 못 하고 얻어 먹기만 한 둘째, 2019 안줘서 못먹는 고래밥. 11개월 아기가 있어서 19년도엔 엄마표 쿠킹은 생각도 못했다.

첫째는 만들고 안 먹기의 선두주자였다. 태어나면서부터 작고 마르고 입이 짧았는데 어찌 된 애가 머핀, 마들렌, 초코케이크, 이런 것들도 다 싫어했다. 함께 만들면 잘 먹는다기에 아이가 서너 살 때부터 이것저것 요리활동을 함께 했는데 정말 만들기만 하고 먹질 않았다. 정말 요리를 놀이로 끝내는 아이. 그러던 아이가 쿠키를 한 두 개 먹기도 한다. 장족의 발전이다. 한 놈은 비로소 만들게 된 것으로, 한 놈은 드디어 먹게 된 것으로 아이들의 성장을 실감하는 엄마, 나는 그저 조금 늙었을 뿐이겠지.   


할로윈 데이에는 죽은 영혼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나쁜 귀신들이 내 몸에 들어올까 봐 무서운 귀신으로 분장을 하고 나도 귀신이니까 나한테 오지마! 하고 표시하는 거라고 말해주었다. 영혼이 뭐야? 유령이 정말 있어? 귀신은 근데 뭐야?라는 질문공세가 지겨워 원래는 아일랜드, 미국에서 지내는 명절이라 엄마 어릴 때만 해도 할로윈 데이를 이렇게 지내지 않았다고 말을 돌리니 아이들은 귀신보다 그게 더 신기하고 궁금한 모양이었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사람을 보는 듯한 눈빛에 나는 그만 기가 죽는다.


할로윈 데이가 없었어? 아니 이런 게 있는 줄 몰랐다니까. 왜 몰라?


2020,2021의 빨간 나무. 같은 시기인데 나무의 색과 모습이 이렇게 다르다.


동네에 우리가 빨간 나무라고 부르는 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그 단풍 색깔이 매년 다르다. 뉴스에서, 혹은 어른들이 올해 단풍은, 올해 단풍은 하는 소리를 여러 번 들으면서도 단풍이 해마다 그 단풍이지 생각했는데 정말 그게 아니었다. 단풍이 드는 색깔이 해마다 다르다. 아마 그 해의 햇빛, 비, 바람에 따라 시월의 색깔이 다른 것 같다. 첫째의 일곱 번째 시월, 둘째의 네 번째 시월이다. 시월마다 애들도 모습이 다 다르다. 나는 애들에게 어떤 햇빛과 비와 바람을 주었을까. 아이들의 시월은 색으로 따지면 무슨 색일까. 시월마다 모두 모습을 바꾸는 틈바구니에서 나만 그대로인 것 같은, 아니 그냥 조금씩 늙기만 하는 것 같은 쓸쓸함은 그저 기분 탓일까. 내년 시월은 어떨까. 아이들은 더 똘똘해지고, 나만 또 그대로일까. 아님 그냥 조금 늙어있을까.


우리의 빨간 나무, 2022




결론. 오늘의 할로윈 쿠킹은 청출어람 청어람이었다.  


이런 결과물은 상상도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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