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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현 Nov 11. 2023

[단편소설] 사랑과 흔적(4)

  휴대전화 플래시로 빌라 주차장 화단을 비추며 흙을 파냈다. 전날 그랬듯 국그릇으로 삽을 대신했다. 흙 알갱이와 국그릇 표면이 서로를 긁는 소리, 마른 나뭇잎과 나뭇가지가 곳곳에 비벼지는 소리, 의식적으로 코를 사용하지 않으려 애쓰는 숨소리 등이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는 플래시 불빛에 의해 증폭되었다. 나는 좁은 화단에서 춤을 추는지 몸부림을 치는지 혹은 그저 쪼그려 앉아 격렬하게 고개를 흔들어대고 있는지 분간할 수 없는 움직임으로 여기저기의 흙을 계속 파냈다. 그때 발치로 무언가 다급히 지나갔다. 급작스러운 재난에서 탈출하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려가던 지네였다. 나는 지네가 화단 밖으로 벗어나기 전에 국그릇으로 퍼 올렸다. 넷째 손가락 크기의 지네는 매끈한 그릇 표면을 딛고 빠져나가려 했으나 내가 살짝 건드는 것만으로 주르륵 미끄러졌다. 나는 지네의 탈출을 방해하면서 플래시를 비추었다. 더듬이부터 꼬리까지 무사한 지네였다. 정신없이 점막을 붙든 채 떨어지지 않도록 버티던 콧속 지네의 흥분이 전해져왔다. 모공에서 더듬이를 뽑아내지 않은 지네가 오열하듯 떨었다. 내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휴대전화로 지네에 대해 검색했을 때, 야생성이라는 습성만 확인하면 되었던 나의 눈길을 끄는 속설 하나가 있었다. 바로 암수 한 쌍이 때때로 잉꼬부부처럼 붙어 다닌다는 이야기였다. 공인된 사실은 아닌 듯했지만 많은 사람이 그렇게 믿었다. 근거가 없음에도 믿고 싶게끔 하는 낭만적인 힘을 가진 이야기였다. 지네의 춤과 격양된 슬픔 사이를 헤매던 내게 쏟아지는 빛이 그 속설의 낭만과 만났을 때, 둘은 필연을 만들어냈다. 콧속 지네가 끊임없이 주입한 춤의 기억이란, 짝꿍 지네와의 사랑이었다. 그게 슬픔의 정체였고, 내가 무심결에 저지른 잘못이었다. 어제 나는 알콩달콩 지냈던 지네 한 쌍을 강제로 뜯어낸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짝꿍 지네를 찾아냈다.


  콧속 지네는 준비되었다는 듯 더듬이를 모공에서 뽑았다. 나의 울먹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실수를 만회할 기회 앞에서 몰려드는 경이로움에 감정이 벅찼다. 손가락을 코 아래쪽에 두자 지네가 조심스럽게 구멍 밖으로 빠져나왔다. 손가락에 올라탄 지네. 내 콧속에 들어가 얼굴만 내밀고 있던 지네의 온전한 모습은 그제야 처음 마주한 셈이었다. 미안하게도 콧물로 젖어 축축히 젖은 상태였다. 청결한 만남을 위해 내가 입은 티셔츠로 살며시 두드려 닦아주면 어떨까도 싶었으나 연인의 상봉은 다급한 문제였다. 나는 지체 없이 손가락을 국그릇 끝에 두어 지네가 타고 넘어갈 수 있도록 했다. 감동적인, 그리고 조금은 지저분한, 그래서 더욱 사랑스러울 두 지네의 모습을 상상하자 흐뭇해졌다.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짝꿍 지네는 국그릇을 넘어가려는 데에만 몰두하는 중이었다. 내 코에서 나온 지네는, 이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다소 망설이며 거듭된 실패에 몸부림치는 짝꿍 지네를 바라보다가 걸음을 내디뎠다. 콧속 지네의 발걸음 뒤로 진득한 액체가 남아 민망했다. 배설물의 불쾌감을 상상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콧속 지네는 짝꿍 지네의 꼬리에 다다랐다. 짝꿍 지네는 여전히 허둥지둥한 모습이었다. 콧속 지네가 조심스레 짝꿍 지네의 꼬리를 더듬이로 두드렸다. 드디어 두 지네가 서로를 바라보게 되었다. 아름다운 순간. 두 마리의 지네가 더듬이로 서로를 두드리며 그간의 안부를 주고받는 순간이 펼쳐졌다. 감동의 물결이 한차례 지나면 짝꿍 지네가 온몸에 묻은 콧물에 대해 질문하는 유쾌한 순간도 찾아올 수 있었다. 둘의 포옹 앞에서 잠시 고개를 돌린 나는 화단 옆에 버려진 스티로폼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곧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두 지네 모두에게 칭찬받아 마땅한 생각임을 당장 증명해 보이고 싶은 마음이 들끓었다. 나는 언제쯤 의견을 전달하면 좋을지 고민하면서 국그릇으로 시선을 옮겼다. 국그릇 한가운데에서 짝꿍 지네가 콧속 지네를 휘감은 채 물어뜯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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