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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현 Nov 11. 2023

[단편소설] 사랑과 흔적(5)

  정말 물어뜯고 있는 것일까? 입맞춤 같은 게 아니라? 믿을 수 없어서 둘을 바로 떼어내지 못했다. 플래시를 받은 지네는 빛과 그림자의 대비로 선명했다. 콧속 지네, 한때나마 더듬이와 모공으로 연결되었던 그 지네가 허공을 휘저으며 움찔거리는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의식을 잃어 근육의 발작으로만 움직이는 것 같았다. 뒤늦게 손가락으로 둘을 떨어뜨린 나는 몸에 구멍이 난 채 전력이 바닥난 기계처럼 느린 움직임을 반복하는 지네를 괴로운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다시 더듬이를 코에 연결하여 유언이라도 알아내면 어떨지 상상했지만, 너무도 불경한 행위로 느껴져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죽어가는 지네의 몸을 이리저리 누르고 당기고 꺾어대는 과정은 온전히 나를 위한 행위에 불과할 것이었다. 어쩌면 지네는 마지막에 자신이 품은 여러 감정을, 이해할 수 없는 이 상황에 직면한 마음을, 그 엉망진창을 누구와도 나누고 싶지 않을지도 몰랐다. 나는 손바닥 위에 죽어가는 지네를 올려둔 채, 반대쪽 손으로 국그릇에서 여전히 발광하는 짝꿍 지네를 붙잡았다. 비좁은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려는 지네가 다급히 발을 놀렸다. 구부린 검지와 손바닥 사이의 틈으로 지네가 머리를 내밀었다. 나는 빠져나가기는커녕 발버둥조차 칠 수 없도록 손아귀를 조였다. 붙잡힌 지네가 머리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이대로 지네를 으스러뜨리는 상상을 했다. 엄지로 튀어나온 머리를 꾹 누를 수도 있었고 손가락을 조물조물 움직여 붙잡힌 지네의 몸 마디마디를 하나하나 떨어뜨리는 것도 간단했다. 미친 듯 머리를 흔들던 지네가 독니를 내 손에 박아넣기 시작했다. 작은 몸에서 느껴지는 힘이 놀라웠다. 타는 듯한 통증이 퍼지며 피부가 부어올랐다. 예민해진 피부에서 심장박동에 맞춰 꿀렁이는 핏줄의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물린 부위 전부가 그렇게 되며 아우성을 쳤다. 나는 개의치 않고 손아귀에 붙들린 벌레를 노려보았다. 너를 잃어 슬퍼했던 네 짝에게 이딴 짓을 한 것이냐……? 아무것도 아닌 주제에…… 지네는 힘이 빠졌는지 겁에 질렸는지 아니면 내뿜을 독이 바닥났는지 더는 버둥거리지도 내 손을 물지도 않은 채 몸을 뒤로 젖히며 축 늘어졌다.


  한 손에는 미약한 움직임까지 사라진 빈 껍데기의 죽은 지네가 있었고, 반대쪽 손에는 산 채로 늘어진 지네가 있었다. 나는 발견했던 스티로폼 상자에 짝꿍 지네를 담았다. 손아귀에서 벗어났음에도 지네는 어찌할 바를 모르는 듯 희고 푹신한 스티로폼 위에서 가만하게 있었다. 울분을 느끼며 지네를 내려다보던 나는 주차장 화단에서 벗어나 거리로 향했다. 어둡고 고요한 거리는 정지된 내면세계를 보는 듯했다. 어떤 표면도 붙잡지 못하는 죽은 지네가 손바닥 위에서 내 걸음걸이에 따라 데굴데굴 굴렀다. 슬픔이 나를 새벽보다 어두컴컴하게 색칠했는데, 마주치지 않을 수 없는 편의점 간판과 내부의 불빛, 심지어는 그 앞을 지날 때 확인할 수 있는 눈 뜬 직원과 매장 음악 소리가 시간을 순환시키면서 슬픔을 한낱 먼지 다루듯 후, 하고 불어 날렸다. 불빛이 사그라든 골목에 들어서자 다시 나타난 슬픔이 나를 거리의 어둠으로 칠했지만 부지런하게도 운동을 나온 노인이 주먹만 한 기기로 뽕짝을 틀고 지나가는 통에 다시 흩어졌고, 횡단보도 앞에 섰을 때는 적지 않은 자동차들이 어둠에 빗금을 그으며 지나다녔다. 나는 온갖 방식으로 훼손된 슬픔을 안고서 계속 걸었다. 스티로폼의 지네가 다시 기운을 차렸는지 벽면 이곳저곳을 기어오르며 탈출을 도모했다. 상자 외벽을 두드려 지네를 떨어뜨렸다. 와중에 타악기의 박자가 느껴졌고, 지네가 스티로폼을 오르고 떨어지는 과정에서 발생한 소리가 박자를 쪼개며 나쁘지 않은 합주를 이뤘다. 합주는 동네 야산으로 들어선 직후에 절정이었다. 상자에서 퍼져나간 소리가 허공으로 사라지는 게 아니라 사방에 깔린 나무들과 부딪치며 풍성해져서 되돌아온 것이었다. 그쯤 되자 지네는 생각보다 나와 궁합이 맞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티로폼 지네에게까지 정이 붙어, 불과 십 분 전에 벌인 만행조차도 운명의 완급 조절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다 한쪽 손에 들려 있어야 할 죽은 지네가 떠올랐다. 손에서 떨어진 건 아닐까 싶던 우려와는 달리, 지네는 여전히 손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중이었다. 턱마다 통나무를 눕혀 만든 계단을 오르며 낡은 전등 아래를 지나자 흐린 빛이 손바닥에서 뒹구는 여러 가닥의 다리를 비추었다. 합주의 박자와 정감 모두가 그 다리처럼 무참히 흩어졌다. 이제부터는 지네가 탈출을 도모하더라도 일부러 엇나가는 박자를 구사하기로 다짐했다. 지네가 상자를 오르기 전에 미리 두드리거나 아슬아슬한 탈출 직전에 두드리는 식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고요를 맞이했다. 상자의 진동에 멀미라도 느꼈는지, 지네가 탈출 시도를 그만둔 채 다시 가만해져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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