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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현 Nov 11. 2023

[단편소설] 사랑과 흔적(6)

  깊게 들어갈 필요는 없었다. 지네가 다시 아스팔트를 밟지 않을 정도면 되었다. 야산은 산이라기엔 작았다. 차라리 인근 축구장으로 향하는 진입로에 가까웠다. 운동 기구와 벤치도 즐비하여 아이와 노인이 간편하게 오가는 공원 역할도 도맡은 곳이었다. 그래도 주차장 화단에 비하자면 흙도 나무도 벌레도 가득한 대자연이었다. 정다운 지네 한 쌍이 흙 위에서 헤엄치듯 움직이는 모습을 기대했건만, 내게 남은 건 기가 팍 죽어버린 볼품없는 지네와 다리까지 떨어져 나간 지네 시체였다. 나는 죽은 지네와 함께했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나방파리를 꼭꼭 씹어먹던 움직임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스티로폼 상자를 내려놓고서는 지네를 상자와 함께 짓밟는 건 어떨까 생각했다가 그만두었다. 콧속 지네의 감격을 함께 느꼈던 내가 이 못된 지네를 직접 처단하는 건 못 할 짓 같았다. 차라리 평생을 두고 후회할 기회를 만드는 편이 좋았다. 죽은 지네까지 스티로폼 상자에 넣은 나는 그것을 뒤집으며 흙 위에 놓았다. 다소 오염된 흰색의 상자는 용도를 모를 작은 건축물 같았다. 손가락이나 나뭇가지로 구멍을 뚫어 창문을 만들려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네는 땅을 파고 들어가 원하는 곳을 찾아 나설 테니까. 지네는 자신을 사랑하던 죽은 지네를 먹고 기력을 회복할 수도, 외면하고서는 바깥으로 빠져나올 수도 있을 거였다. 지네가 이 야산 밖으로 나가는 일이 없기를, 또 야산에 머무는 동안 못 되거나 둔한 사람을 만나 이른 죽음을 겪지 않기를, 주어진 수명을 무사히 누리기를 빌었다. 그러면서도 오늘의 경험은 단말마의 순간까지 선명하기를. 나는 뒤집은 상자 내부에서 벌어질 움직임을 지켜보고픈 궁금증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도착하자마자 화장실에서 손을 씻었다. 비누칠에 앞서 손을 헹구었는데, 손금 틈에 끼워져 있던 한 가닥의 지네 다리가 수도꼭지에서 나온 물살에 떨어져 나왔다. 아차, 하며 건져내려 했지만, 한 가닥의 다리는 세면대에서 물의 흐름과 함께 빙빙 돌다 꼬로록, 소리와 함께 배수구 아래로 쏙 들어갔다. 이어지는 배수관의 목 넘김 소리가 작별 인사를 대신했다. 거기서부터 잠기운이 덮쳐왔다. 자리에 누워 눈을 감자 기억들이 소용돌이 형태의 미끄럼틀을 빙빙 돌며 어질러졌다. 나 역시 빙빙 돌았다. 온갖 생김새의 기억들로 포화 상태가 된 공간이었다. 기억들이 멋대로 몸을 비집으며 지나갔다. 나는 저마다의 모양으로 배와 등, 엉덩이 혹은 얼굴까지 누르며 지나가는 기억에게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빙빙 돌며 감지했다. 어딘가 턱 막힌 호흡을, 그걸 뚫어내려 애쓰는 소리를, 그리고 간지러움…… 눈을 뜬 뒤에야 그새 코를 골았음을 깨달았다. 잠기운에 젖은 상태로 코를 만지작거렸다. 손끝에 무언가가 닿자, 잠이 확 달아났다. 비틀거리며 화장실로 향해서는 불을 켜고 거울에다 얼굴을 내밀었다. 불길함이라곤 전혀 감지할 수 없는 어중간한 길이의 코털이 있었다. 손톱 끝으로 그걸 잡았다. 바로 뽑으려던 찰나, 선반에 놓인 코털 가위가 보였다. 코털을 뽑지 않고 잘라야 하는 이유와 뒤이어 따라붙는 핀잔이 연달아 떠올랐다. 


  가위질을 마쳤다. 잘린 코털들이 날에 달라붙은 게 보였다. 가볍게 코를 파낸 손가락에도 코털은 잔뜩 붙어 나왔다. 휴지로 코를 여러 번 파냈다. 드디어 코털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마지막으로 헹구어 내듯 물 묻힌 휴지를 콧구멍 깊숙이 넣어서 돌돌 돌렸다. 휴지를 빼자 끝에 붙은 작은 점 하나가 보였다. 점의 정체는 단단하고 울퉁불퉁한 촉감만으로도 파악할 수 있었다. 바로 한 톨의 흙 알갱이였다. 엄지와 검지로 집은 알갱이를 데굴데굴 굴리던 나는 집안의 불을 켜고 화분 앞으로 향했다. 촉촉한 고동색과 건조한 갈색의 두 흙이 제대로 뒤섞이지 못한 화분 표면에 어떤 흔적이 남아 있었다. 바깥을 향해 벌어진 모양이 마치 안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간 듯한 흔적처럼 보였다. 어느새 엄지와 검지의 움직임을 멈추었던 나는, 그 흔적에다 알갱이를 굴려 넣었다. 그러고서는 그 주변을 잘 두드려 메웠다. 평평하게 정리된 흙의 표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흔적의 위치가 점점 불확실해지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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