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동현 Nov 15. 2023

[단편소설] 순례(2)

  부끄럽게도 나는 그를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 그럴 체력도 여유도 없었다. 국비지원을 받아 학원에 다니는 중이었고, 나머지 일과 대부분은 식당 아르바이트로 보내고 있었으니까. 거기엔 오래 알고 지낸 식당 사장의 도움이 있었다. 지원이 끊기지 않도록 근로계약을 줄여 신고한 뒤 나머지 급여는 현금으로 따로 받았다. 며칠 늦게 받을 때가 있었어도 감사한 선의였다. 덕분에 부모에게 자주 손을 벌리지 않을 수 있었다. 이런 와중에, 시간과 돈을 그에게 쏟아부을 자신이 없었다. 나는 멀리서 최소한의 방식으로 그를 좋아했다. 그의 모습이 담긴 여러 사진과 영상을 바라볼 때는 행복했지만, 동시에 진실됨이 부족하다는 자책에 자주 빠지기도 했다. 꾸준히 나오는 컨텐츠를 제대로 쫓아가지도 못했고, 그의 세밀한 심경 역시 포착해내지 못했다. 내게 큰 충격이던 모 배우와의 열애설이 팬들에게는 이미 쉬쉬하던 사실이었음을 뒤늦게 알았을 때, 거리감은 더욱 선명해졌다. 그는 나와 남이지만, 나는 그를 마냥 남으로 여기고 싶지 않았다. 그가 겪은 여러 경험을 뒤따라서라도 함께하고 싶었다. 직접 느끼고 판단한 나만의 그를 만들고 싶었다. 어영부영 교육 하나를 수료한 나는 약간의 해방감을 누릴 겸, 다음 학원에 등록하기 전에 짧은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그가 맛있게 먹었다는 식당, 브이앱 혹은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했던 장소, 묵었던 숙소, 추천해 준 명소, 뮤직비디오 혹은 예능 프로그램 촬영지 등을 경유하는 동선은 이미 팬들 사이에서 공유되고 있었다. 저마다 그 동선을 알맞게 변형했다. 이때 ㅁ산은 필수 코스였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ㅁ산만 오르내리는 팬들도 있을 정도로. 제가 거기서 많은 용기를 얻었거든요, 멤버들, 친구, 가족 모두에게 꼭 가 보라고 하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도, 꼭 갔으면 해. 응? 꼭이야. 꼭.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보았던 경치를 보기 위해서는 정상까지 오르지 않아도 됐다. 그 역시 정상까지 오른 적 없었다. 사람들이 곳곳에 쌓은 작은 돌탑과 중턱에서 본 경치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잠시 쉬면서 본 경치가요, 정말 좋았어요. 진짜. 거기서 시골 마을도 내려다보이고, 맞은편에는 돌산이 있거든요? 제가 흐린 날 간 건데도 잘 보였고, 오히려 흐려서 더 좋았던 것 같아. 팬들은 그가 바라본 경치를 바라보고자, 느낀 것을 느끼고자 ㅁ산에 올랐다. 다들 정말로 무언가를 느꼈다고들 했다. 얼마나 팬들이 오갔는지, 중턱에서 그의 이름이나 낯부끄러운 팬덤 이름을 귀띔하면 등산객 몰래 값을 깎아 주는 노점상인이 있을 정도였다. 팬들에 의해 우후죽순으로 늘어난 돌탑의 모습은 기묘한 소속감을 안겨주기까지 했다. 심지어 느닷없이 그가 다시 ㅁ산 중턱에 올라 돌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올린 날 이후, 팬들 사이에서 ㅁ산의 위상은 더욱 공고해졌다. 나는 그의 발걸음이 닿았던 곳곳을 돌아다니다 마지막으로 ㅁ산을 오르내리는 동선을 짰다. 이박 삼 일이었다.   

  

  기차에서 내린다. 본격적으로 하루를 시작하겠다는 듯 햇빛이 세상을 내리쬔다. 쌀쌀하지만 맑은 하늘. 모든 게 바싹 마를 것 같다. 감정까지도. 승객들이 우르르 하차한다. 그들은 햇빛과 조화롭다. 나는 미리 찾아놓은 장칼국수 가게로 향한다. 원래는 삼일 차에 향할 곳이었다. 나름 알려진 곳이었는데 그가 들르면서 더욱 손님이 많아져 자칫하다간 긴 대기를 겪을 수 있다고 했다. 내 경우엔 너무 일찍 도착한 바람에 오히려 가게를 열기까지 기다릴 수도 있었다. 그냥 걷기로 한다.

  이어폰을 낀다. 그가 며칠 전 켰던 브이앱 라이브를 떠올린다. 다시보기를 틀지는 않는다. LTE 표시도 안테나 그림의 와이파이 표시도 싫다. 문자까지 막을 순 없겠지만 누구도 굳이 문자를 보내진 않는다. 그는 브이앱 서비스가 곧 종료되는 김에 켰다고 했다. 인스타 라이브와는 다른 감성이 있었는데 아쉽다고. 가장 큰 차이는 채팅이라고 했다. 브이앱은 좀 더 우리끼리의 느낌이 있잖아요. 그쵸. 얼굴이 조금 부었고 머리도 부스스하게 뻗친 모습이었다. 나중에 방의 불을 끈 그는 음악을 틀고 말수를 줄였다. 팬들이 채팅으로 음악을 추천했다. 나는 근사한 음악 취향이 없어 잠자코 화면을 바라보다 채팅을 쳤다. '오늘 새벽감성ㅋㅋㅋㅋㅋㅋㅋ청승' 불을 끄고 액정 혹은 모니터 화면의 빛만 받고 있던 그가 삐쭉 발끈했다. 청승 누구야. 그래, 나 청승 떤다. 어쩔래. 그러자 모두가 웃었다. 나는 믿을 수 없어서 채팅창의 스크롤을 올렸다. ‘청승’이라는 단어를 쓴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감격에 빠진 와중에도 내 채팅이 정중앙에 오도록 스크롤을 조절하여 화면캡처를 했다. 혹여나 실수로 지울까 봐 사본 파일까지 만들어 잠금 처리했다. 횡단보도를 기다리다 무심결에 스마트폰을 꺼내 갤러리로 들어가 캡처한 사진 파일을 연다. 밝기를 최대로 올려도 내리쬐는 햇살 때문에 화면이 잘 보이지 않는다. 신호등 기둥이 만든 한 줄의 그림자 아래로 화면을 옮긴다. 방송 중이던 그의 뻗친 머리와 내 채팅이 드러난다. 신호가 바뀐다.

작가의 이전글 [단편소설]순례(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