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영업을 시작한 장칼국수 가게는 조용하다. 놀랍게도 내부에는 젊은 손님 하나가 이미 앉아 음식을 기다리고 있다. 그의 화려하고 낯익은 사인과 가장 가까운 구석 자리가 비어 있다. 어떤 팬은 굳이 그 자리에 앉기 위해 자신보다 늦게 온 손님을 먼저 앉히면서까지 기다렸다고 했다. 가게 내부를 보니 이해가 간다. 좁고 다닥다닥 붙은 테이블 사이를 오가는 자체가 민폐가 될 거였다. 나는 망설이다 그쪽 자리에 앉지 않는다. 가게의 한가운데 테이블, 그 어중간한 자리에 앉은 손님 때문만은 아니다. 주문한 메뉴는 당연히 그가 먹었던 장칼국수다. 거기는 이미 김치부터 맛있거든요? 찐 맛집. 찐 맛집 김치맛. 테이블 위 작은 옹기에 담긴 김치를 그릇에 던다. 모양이 무너지지 않도록 맨 위의 작은 김치를 먼저 맛본다. 찐 맛집…… 찐 맛집…… 김치를 씹으며 목소리를 떠올렸다. 머지않아 장칼국수가 나온다. 먹기 전에 사진을 찍는다. 찰칵, 하는 촬영음이 민망하다. 그렇게 바로 젓가락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는다. 가방을 뒤져 그를 본떠 만든 인형을 조심스레 꺼낸다. 한가운데에 앉은 손님이 내 행동을 바라볼 것 같다. 잠시 실수인 척 전면 카메라로 전환하여 등 뒤를 살핀다. 나를 바라보지 않는다. 하기야 나를 바라보는 건 나일 것이다. 후면 카메라로 인형까지 한 프레임에 담는다. 찰칵. 드디어 장칼국수를 먹는다. 적당히 씹은 면발이 목을 타고 넘어간다. 맵고 칼칼하다. 계속 먹으니 더 맵다. 일어나자마자 마신 두유 때문인지 배가 금방 찬다. 아니다. 애초에 몸이 음식을 거부하고 있다. 기어이 면을 모두 씹어 넘긴다. 국물은 몇 숟가락만 뜨고 남긴다. 사람들이 하나둘 가게 내부를 채운다. 나는 그들의 대화가 구분되어 들리기 전에 밖으로 나선다. 좋은 날씨. 입김이 천천히 흩어진다.
ㅁ산 진입로로 향하는 버스 정류장까지 걷는다. 도착하자마자 멀리서 버스 한 대가 느긋하게 다가온다. 승객은 얼마 없다. 버스가 너무 덜컹거린다. 열두 정류장을 지나야 하는데 세 번째 정류장에서 내린다. 밀려드는 구토감에 주저앉는다. 이런 것조차 못 견디는 몸뚱이라니. 나는 눈을 감거나 먼 곳으로 시선을 보내며 견뎌내려 한다. 입에서 침이 줄줄 새어 나온다. 몸이 고장이라도 난 것일까. 시간이 지나며 구토감은 가라앉는다. 그가 장칼국수를 먹으며 느꼈을 행복은 내게 닿지 않았다. 닿지 않은 게 그것뿐이라면 나름 유쾌한 추억이었을 텐데.
의자에 앉아 다음 버스를 기다린다. 주변에 펼쳐진 건 마른 밭뿐이다. 드문드문 차 몇 대만 지나간다. 누군가 지나가는 모습도, 말소리도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세상의 한구석 같다. 콘크리트 지붕에 막힌 햇볕은 정류장 안쪽까지 다다르지 못한다. 오래된 쓰레기만 바싹 말리고 있다. 그늘진 의자가 싸늘하다. 웅크려지는 몸을 굳이 펴지 않는다. 이대로 버려지고 싶다. 잊히고 싶다. 죽고 싶은 것 같기도 하다. 차갑게 언 손으로 스마트폰을 꺼낸다. 갤러리에 들어가 여행 내내 찍었던 사진들을 꾹 눌러 삭제한다. 브이앱 화면을 캡처했던 사진도. 그것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휴지통 폴더로 이동한다. 거기서 한 번 더 지워야 사진은 영구적으로 삭제된다. 망설인다. 어떤 사진에는 복사본까지 있는데도.
전부 복원한다.
춥다. 추워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추위로는 닿을 수 있을까.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이 거짓말 같다.
버스가 앞에 선다. 버스에 탄다. 바깥보다 아주 조금 따뜻하다.
평일 겨울의 ㅁ산은 한적하다. 단단하게 언 흙바닥에 발이 가끔 미끄러진다. 앙상한 나뭇가지 끝이 어딘가를 날카롭게 겨눈다. 걸음마다 차갑게 마른 이파리가 바스러지는 소리를 낸다. 산 안쪽의 공기는 바깥보다 더 차다. 험악한 등산로는 아니다. 오히려 친절하다. 경사가 조금만 가팔라지면 나무 계단이 나타나고 양옆으로는 밧줄로 만든 손잡이가 있다. 올이 자잘하게 풀어진 밧줄은 까끌까끌해 보인다. 막상 붙잡으면 신뢰할 수 있는 단단함이 느껴진다. 밧줄을 잡고 오른다. 손바닥을 보면 체온에 부드러워진 갈색 올이 가닥가닥 달라붙어 있다. 숨은 차고 입김은 더욱 선명하다. 몸은 뻣뻣하게 움직인다. 발끝이 얼어 감각이 더디다. 손의 움직임도 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