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제주 올레길 (10코스)

홀로 걷는 제주 섬(島) 437km, 27개 코스

by 밤안개

부치지 못한 마음

사진으로 표현 못한 바다

소리, 빛, 공기, 섬의 고요함

어떻게 너에게 담아 보낼까?

글을 써보면 될까?

영상을 만들어 보면 될까?

구름은 잠시 멈춰 말하네.

바람은 깃발을 나부끼며 말하네.

잊어라. 떠나보내라.

지금처럼 그때에도

부치지 못한 마음이었으니.

(2025.8. 21)



2025년 8월 21일 목요일

휴가철이 끝나가면서 협재는 외국 사람만 남았다는 말을 아내한테서 들었습니다. 다른 어느 곳보다 사람들로 복작되던 협재가 '비어있겠다'는 생각에 아쉽기도 하고, 한적한 바다를 볼 수 있어서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다시 섬(島)에 태양이 떠올랐습니다. 도보자는 올레 10코스를 걷기 위해 화순으로 달려갑니다. 10코스는 눈요기만 했던 산방산과 올레길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진 송악산둘레길을 걸으면서 일제의 유적들과 4.3의 흔적들을 돼 집어 보는 역사기행을 동반하게 됩니다. 다른 어느 때보다 기대가 되는 올레코스입니다. “이 길 위에 축복이 있기를”


08시 정각, 올레 10코스를 화순제주올레안내소에서 시작합니다. 태양이 뜨겁게 온몸을 달구네요. 도보자는 썩은 다리전망대로 향해 갑니다.


화순금빛해수욕장의 모래는 금빛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검은색에 가깝습니다. 아마도 햇빛에 모래가 반사되면 금빛이 표현돼서 그렇게 불리나 봅니다. 전망대에서 해변을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썩은 다리전망대는 서귀포시 대정읍 화순리에 있는 야트막한 전망대로 '바위가 바람에 돌려 깎기 한 듯 빗살무늬 모양이 나 있어 마치 썩은 것처럼 보인다.'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썩 잘 지어진 이름 같아 보이진 않습니다. 전망대에서는 바다가 나뭇잎에 가려 안 보이네요. 정비가 필요한 곳으로 생각됩니다. 도보자는 산방연대로 향합니다. 화순에서 이어진 해변은 산방산을 오른쪽에 끼고 연결되어 있었네요. 숲길을 통과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용머리해안입니다.


똑같은 해변도 원근에 따라 다르게 보이네요. 가까이 다가와 봐야 좀 더 명확히 존재가 보입니다. 기운 센 파도가 귀를 통해 온몸에 시원한 냉수를 선사합니다. 비스킷 하나와 나트륨으로 힘을 보충하고 계속 걸어갑니다.


산방연대

연대(煙臺)는 조선시대 외곽지역에 설치한 대(臺)로 둘레에는 참호를 파고, 대의 위에는 가건물을 지어 각종 병기와 생필품을 간수하게 했습니다. 산방연대에는 별장 6명과 봉군 12명이 배치되었습니다.


산방산

산방산은 제주도의 3 무(無)중 하나인 무악(無岳)으로 산 정상에 봉우리가 없다고 해서 정해진 이름입니다. 이 산은 1억 년 전 화산활동으로 생겨났습니다. 이 산 아래에는 해식동굴이 있어서 산방굴사라고 불리 웁니다. 굴천장의 암벽사이에서 떨어지는 물은 산방산을 지키는 여신의 눈물이라는 전설이 있습니다. 산방산과 얽힌 많은 흥미진진한 전설들은 나중에 한번 정리를 해봐야겠습니다.


하멜기념비

1653년 네덜란드 선박 스페르베르(Sperwer)호가 표류하게 되었고, 이 배에 탔던 핸드릭 하멜(Hendrick Hamel)은 이 땅에 처음 발을 디디게 되었습니다. 그는 13년 동안 조선에 머물렀고, 고국으로 돌아가 책을 펴내 우리나라를 전 세계에 널리 알렸습니다.


용머리해안, 익숙한 유원지 앞에 앉아 있습니다. 매미가 시끄러이 울어대고, 새는 질세라 또 본인의 화음으로 화답합니다. 이 유원지에는 이제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 떠난 유원지, 비어있는 공원은 숲이나 산속에 있을 때 보다 오히려 더 외롭습니다. 사람 체취가 아직 지워지지 않아서 그런가 봅니다.


나는 어떤 향취로 세상을 떠나왔을까요? 내게 아직 사랑의 향기가 남아 있을까요? 죽을 때까지 나는 신선한 향을 내고 싶습니다. 죽을 때까지 나는 누군가에게 사랑향기로 남아있고 싶습니다.


용머리공원을 뒤로하고 길은 순식간에 사계포구에 이르렀습니다. 재미있는 조형물 앞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1991년 4월 20일 당시 러시아 대통령 고르바초프의 영부인 라이샤여사와 노태우대통령 부인 김옥숙여사가 여기에 들러 해녀 분들이 직접 잡은 수산물을 시식했다고 하네요. 이 조형물은 아마 그때를 기념해서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사계포구, 코발트빛 바다와 기암절벽의 현무암 바위, 섬 안에 섬, 이 모든 것이 한 폭의 그림에 담겨 있습니다. 사계포구에는 멋진 작품을 찍기 위해 포토그래퍼(Photographer)들이 땡볕에 서서 시간의 변화에 따라 바뀌는 바다 풍경을 프레임에 담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그들을 사진에 담습니다.


이제 길은 오늘의 메인코스인 송악산으로 향해 갑니다.


제주 송악산 일제 해안 동굴진지

이 시설물은 일제강점기 말 패전에 직면한 일본군이 해상으로 들어온 연합군 함대를 소형 선박을 이용한 자살 폭파 공격을 하기 위해 구축한 군사시설입니다. 그 형태는. 'ㅡ'자형, 'H'자형, 'ㄷ'자형 등으로 되어있으며, 제주도의 남동쪽에 있는 송악산 해안절벽을 따라 17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제주도 주민을 강제 동원해 해안 절벽을 뚫어 만든 이 시설물은 일제 침략의 현장을 생생하게 증언함과 더불어 전쟁의 참혹함과 죽음이 강요되는 전쟁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형제섬

송악산에서 1.8km 떨어져 있는 무인도인 형제섬은 크고 작은 섬이 형제처럼 마주하고 있습니다. 길고 큰 섬을 본섬, 작은 섬을 옷 섬이라 부르며 본섬에는 작은 모래사장이 있고, 옷 섬에는 주상절리 층이 일품입니다.

송악산들레길을 거의 1시간 걸었습니다. 2.8km 정도의 거리입니다. 이 길이 최고의 코스로 대접받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해안의 기암절벽을 아주 가까이 볼 수 있고, 섬 주변과 중앙에는 소나무(해송)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방목한 말, 산방산, 형제섬, 지나가는 유람선까지 어울린 이 앙상블은 걷는 이를 마냥 즐겁게 합니다. 다만, 데크길 경사가 심하고, 8km를 쉬지 않고 걸어온 도보자에게는 힘겹고, 지치게 만드는 1시간이었습니다. 하산 길 끝에 있는 체력장에서 어깨를 풀고, 잠시 땀을 식히며 글을 정리합니다.

이제 숨을 돌리고 제주 모슬포 알뜨르비행장 일제고사포진지로 내려갑니다.

1. 제주 셋 알오름 일제고사포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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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셋 알 오름 예비검속 희생자 학살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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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알뜨르비행장 일제전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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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다크투어리즘 길을 걸으며 감정의 뜨거워짐을 느껴졌습니다. 셋 알 오름일제고사포 진지까지 가는 숲길을 걷는데 갑자기 숨이 막혀 왔습니다. 내가 밟고 있는 땅이 누군가 전쟁노예가 되어 끌려간 길이기도 하고, 일제의 핍박으로 무고한 양민이 짓밟혔던 땅이기도 합니다. 그분들의 영혼이 어디선가 슬픈 울음을 내는 것 같았습니다. 특히 예비검속 희생자학살터에서는 숨쉬기조차 힘들었습니다. 파놓은 구덩이에는 물이 담겨 있었습니다. 여기서 양민들은 학살을 당했습니다. 이 웅덩이는 그들의 눈물과 피란 말인가요! 왜 터는 습할 수밖에 없고, 왜 이 길을 들어섰을 때 숨이 막혀왔는지 200여 명의 의문 없이 총살당한 혼령들 앞에 섰을 때 저는 알았습니다. 마지막 가족들에게 남긴 검정고무신을 보고 저는 참았던 눈물이 솟구쳤습니다. 다시는 이 땅에 이런 비극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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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투어리즘

전쟁, 학상 등 비극적 역사의 현장이나 엄청난 재난과 재해가 일어났던 곳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기 위하여 떠나는 여행을 일컫는 말.


길은 13.9km 지점 하모해수욕장에 이르렀습니다. 여기가 바로 네덜란드인 하멜이 표류했던 곳입니다. 도보자는 상당히 지쳐 있는 상태입니다. 물이 떨어졌고, 어깨가 계속 아프네요. 발바닥은 뜨겁고, 다리에 힘은 다 빠진 상태입니다. 종점까지 1.8km 남았습니다.


14시 30분, 모슬포항에 도착했습니다. 8시 정각 화순에서 출발했으니까 총 6시간 30분이 걸렸습니다. 여태까지 걸어온 코스 중 단연코 최고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사계포구의 아름다움에 빠져서, 송악산둘레길의 절묘함, *다크투어리즘의 슬픔이 도보자의 걸음을 더디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지치고 힘들었지만 역사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다시는 이 땅에 이념적 분쟁, 살육의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레 길을 걷는 이들이 선정한 최고로 멋진 길, 슬픈 역사의 뒷모습이 오래 가슴을 울리게 하는 올레 10코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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